[언어 저널리즘] 끝나지 않는 '여사vs씨' 논쟁, 언론이 만든 호칭서열 때문

장슬기 기자 2023. 2. 1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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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저널리즘 (02)] 이희호·권양숙·김정숙 등 25년 전부터 이어진 여사·씨 논쟁
언론·학자, '씨'도 존칭이란 설명에 독자들 공감 안해…언론이 권력층과 시민 간 호칭서열 매겨온 탓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한국어는 서열을 전제한다. 상대와 나의 위치를 파악해 높임말과 낮춤말을 적절히 골라야 한다. 비민주적인 표현도 많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지 한 세대밖에 지나지 않아 여전히 독재의 유산이 언어를 통해 계승되고 있다. 언어에도 신분이 있다. 표준어는 나머지 지역어(방언)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 언론은 그동안 이러한 한국어의 특징을 비판적으로 해석하지 못했고 오히려 널리 유포해온 책임이 있다. 미디어오늘은 저널리즘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2023년 한국 사회에 어울리는지 살펴보는 과정을 '언어 저널리즘'으로 규정하고, 앞으로 언론이 말하지 않은 '언어 저널리즘'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 편집자주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뒤에는 '여사'가 와야 할까? '씨'가 와야 할까?

지금도 끝나지 않은 여사·씨 논쟁은 약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언론사 중에서 대통령 배우자를 '여사'가 아닌 '씨'로 표기했던 곳은 한겨레였기 때문에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중심, 즉 민주진보진영 내부에서 주로 이어진 논쟁이다. 독자들은 더불어민주당 계열이 집권했을 때 한겨레가 대통령 배우자에게 '씨'라는 호칭을 붙이며 예우하지 않는 점을 꾸준히 지적해왔다.

1999년 12월7일자 한겨레 지면에 한 독자 의견이 실렸다. 독자는 “현직 대통령 부인에게 이런 호칭은 예의에 벗어난 것 같아 보기 좋지 않다”며 “현 정권에 나쁜 감정이 있기 때문인지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희호씨'는 대통령 부인에 대한 걸맞는 호칭이 아니라 본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때도 마찬가지였다. 2007년 10월8일 한겨레 <“권양숙씨가 뭡니까?”>라는 칼럼을 보면 독자들은 “아무리 노무현 정부가 힘이 없어도 그렇지, 대통령 부인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거 아니냐”라고 항의했고, “심지어 8명의 독자는 표기 문제 때문에 한겨레를 끊겠다고 통보해 왔다”고 했다.

▲ 1999년 12월7일 한겨레 여론면
▲ 2007년 10월8일 한겨레 오피니언면

두 번 모두 한겨레는 창간 당시 결정한 표기법이라면서, 권위주의 문화와 성별 구분을 두지 않기 위해 '씨'로 표기하기로 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함께 실었다. 일부 '여사'로 썼던 기사는 내부에서 거르지 못한 실수라고 해명했다.

2007년 10월10일 미디어오늘에도 여성단체 활동가의 칼럼 <아직도 '여사'라는 호칭을 사용하십니까?>가 실렸다. “한겨레가 '영부인'도 '여사'도 아닌 '권양숙씨'를 사용한 이유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인 위계적 질서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라고 했다.

[관련기사 : 아직도 '여사'라는 호칭을 사용하십니까?]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독자들이 대통령 배우자를 왜 '김정숙씨'라고 표기하는지 강하게 항의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와 항의의 정도는 비교할 수 없이 강했다.

이는 노무현의 죽음과 관련이 크다. 2008년 5월 막 임기를 마친 대통령 노무현이 사망했고, 상당수 시민은 이명박 정부 검찰과 다수 언론이 이른바 '노무현 죽이기'에 동참했다고 봤다. 한겨레 등 진보언론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노무현 측 입장을 충분히 담으며 객관적으로 보도했어야 할 진보언론에게 오히려 더 큰 배신감을 느꼈다.

▲ 기사와 무관한 사진. 사진=pixabay

이에 2017년 한겨레는 여사·씨 논란에 대해 언론운동가 출신 전직 의원, 국어학자, 전직 한겨레 교열부장, 여성단체 대표 등 4명을 초대해 대담을 진행했다. '여사'를 쓰지 않아야 할 당위, 독자들이 김정숙씨보다 김정숙 여사를 원한다는 현실적 이유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대담자들은 한겨레가 자신들 표기법이라며 독자 요구를 외면한 태도를 강하게 지적했다.

“원칙을 지킨다는 한겨레의 태도가 고루하다. 수용적 태도로 넘어가야 하는 게 맞지 않는가 생각한다. 세상이 바뀌었고 엘리트주의가 다 깨졌다. 권위는 시민에게 있을 수밖에 없는 시대다. 독자와 소통하는 방식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 (최민희)

“대통령 부인에 대해 '여사'를 안 붙여주냐 하는 항의에는, 한겨레가 오만한 거 아니냐, 대통령 위에 서서 시대의 심판자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어 있다.” (김하수)

물론 남편의 위치에 따라 아내의 호칭이 결정되는 '여사'가 권위주의·성차별 표현이란 지적도 있었다. '씨' 대신 '님'을 쓰자는 대안도 언급됐다. 그럼에도 이 대담은 과거 있었던 논쟁 이상의 담론을 끌어내지 못했다. 한겨레는 대담 이후 창간 이래 유지하던 대통령 배우자 표기법을 '씨'에서 '여사'로 바꾸겠다고 2017년 8월25일 공지했다. 한겨레는 “독자들과 대립하고 불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결정의 첫째 이유라고 밝혔다. 물론 “언어의 탈권위화, 성차별적 표현의 배격, 위계질서를 강화하는 언어의 추방 등은 여전히 저희의 의무이자 숙제”라고 덧붙였다. 해결책이 아닌 미봉책이었다.

▲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배우자에는 김정숙 여사라 부르고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에는 김건희씨라고 부르는 모습. 김어준씨는 김건희씨가 스스로 대통령 배우자라고 불러달라고 했다는 입장. 사진출처=김어준의 뉴스공장 화면 갈무리.

당시 논란은 잠잠해졌지만, 대통령이 바뀌자 다시 논쟁이 시작됐다. 방송인 김어준이 현 대통령 배우자를 '김건희씨'로 부르자 한 보수단체가 인격권 침해라며 김어준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전직 대통령 배우자에겐 '김정숙 여사'라고 불렀으면서 현재는 '김건희씨'라고 했다는 이유에서다. 김어준은 아내를 높이는 '부인'과 존칭인 '씨'를 합해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라고 불렀다는 입장이다. 최근 논쟁에서도 '여사'는 '씨'보다 대통령 배우자를 존중하는 호칭이란 점을 전제하고 있다.

[관련기사 : 김어준 '김정숙 여사, 김건희씨'…반복되는 대통령 배우자 호칭 논란]

진보진영 내부에서 진행되던 논쟁은 이제 진영 간 다툼으로 확대됐다. 여사·씨 논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긴커녕 정쟁의 도구가 됐다.

▲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중요한 건 독자들이 왜 대통령 배우자에게 '씨'라는 호칭을 불편해하는지, 그 이유다. 언론이 그동안 호칭에 서열을 정해 차별해왔던 탓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기사 <<a href="http://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8236">뉴스 호칭에 녹아있는 전관예우를 없앨 수 있을까>에서 그동안 언론계가 호칭으로 사람들의 등급을 정하고 높낮이를 구분한 관행에 대해 지적했다.

뉴스에서 권력층에겐 '윤석열 대통령'과 같이 이름 뒤에 직책이나 직업명을 붙이고 있다. 의원님, 원장님, 변호사님, 박사님 등에게 '님'을 붙여 예의를 차리듯, 언론에서도 이들을 예우한다. 퇴직하더라도 '전 의원'이라며 한번 의원에겐 영원히 '의원'으로 불러준다. 반면 일반 시민들에겐 이름 뒤에 '씨'를 붙여왔다. 학살자로 비판받는 전두환의 경우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다는 이유로 '전 대통령'이 아닌 '씨'로 부르는 사례 등을 볼 때 '씨'는 격하의 의미를 포함한다. 유영철, 강호순 등 범죄자에겐 '씨'조차 붙이지 않는다.

한겨레 등 모든 언론은 직책이나 직업명을 불러주는 계층과 '씨'만 붙이는 계층을 구분짓고 우열을 나눴기 때문에 전자는 특권층으로 인식됐다. 이런 상황에서 독자들은 대통령 배우자에 대해서만 '여사' 대신 '씨'를 쓰겠다는 주장을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특히 여사·씨 논쟁이 정치권 진영논리와 결부됐기 때문에 국민의힘 정치인에게는 꼬박꼬박 예우하면서 대통령 배우자에겐 당연히 붙여야 할 호칭으로 인식된 '여사' 대신 '씨'라고 표기한 한겨레가 이중적이라 느낄 여지가 있다.

여사·씨 논쟁이 발생할 때마다 언론에선 '씨'도 존칭이라는 언어학자 등의 발언을 함께 전했다. '씨'가 존칭이라는 사회적 약속을 희석시킨 건 언론이다. 언론이 현재 같은 호칭서열을 유지하는 한 앞으로도 여사·씨 논쟁은 진영논리와 분리되지 않은 채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기사에서 모든 사람의 호칭을 '이름'으로만 표기하거나 '이름+씨'로 통일하자고 제안한 이유다.

'김건희씨', '김정숙씨' 등 누구에게나 같은 호칭을 쓰면 된다. 그의 직책이나 직업이 기사 내용상 필요하면 '대통령 윤석열씨', '전직 국회의원 나경원' 등으로 표기하면 된다. 전체 언론이 모든 등장인물을 차별 없이 표기한다면, 반복되는 여사·씨 논란이 해소될 여지가 있지 않을까.

독자들은 언론이 권력 눈치를 본다고 생각한다

여사·씨 논쟁을 보면, 독자들은 언론이 취재원의 권력 등을 봐가면서 그때그때 다르게 대우한다고 생각하고, 언론은 스스로가 정해진 기준에 따라 똑같이 대한다고 생각한다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 경우에 언론은 기준에 따라 호칭을 표기하지만 독자들은 여러 매체의 기사를 보다가 튀는 부분을 기억하기 마련이다. 그 사례들이 쌓이면 언론이 권력자 눈치를 본다고 확신한다.

'당선자'와 '당선인'도 주목할 만한 표기법이다. 고려대 교수 신지영의 저서 <언어의 높이뛰기>를 보면 언어가 사회적 약속이라고 하는데 실제 그 약속을 누가 만드는지 꼬집는 대목이 나온다. 2007년 12월 말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이명박에게 '당선자' 대신 '당선인'으로 써달라고 요청했다. 놈 자(者) 대신 사람 인(人)으로 써달라는 주문이다.

'자'가 낮추는 말이라면 놈 자(者)를 쓰는 과학자, 철학자, 기자 등 다른 직업도 하대하는 말이 된다. 즉, 논리적으로 합당하지 않은 주장을 대통령 측에서 요구한 것이다. 헌법에 대통령 '당선자'라는 표현이 있고, 헌법재판소에서 당시 '당선자'로 써줄 것을 언론에 요청했지만 언론은 최고권력자 요구에 응했다.

11개 신문사와 5개 방송사를 빅카인즈를 통해 '당선자'와 '당선인' 사용 빈도 비율을 분석한 결과, 2007년 12월 '당선자'와 '당선인' 비율은 98.3%, 1.7%로 당선자로 써왔던 언론이 인수위의 연말 요청 이후 2008년 1월 당선자 15.5%, 당선인 84.5%, 2008년 2월 당선자 11.1%, 당선인 88.9%를 각각 썼다.

▲ 청와대. ⓒ연합뉴스

그렇다면 언론은 이후 '당선자'라는 표현을 버리고 '당선인'을 썼을까. 이명박이 대통령에 취임한 2008년에는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와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당선인'을 사용한 비율은 2008년에 56.5%로 나타났다. 다른 선거 관련해선 '당선자'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뜻이다. 대선이 없던 2009년(20%)과 2010년 (6.2%)에 '당선인' 사용 비율은 2008년에 비해 줄었다.

그러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한 2013년에 '당선인' 사용 비율은 92%까지 증가했다. 2014년에는 다시 26.6%로 감소했다. '당선인' 사용 비율은 미국 대선이 있었고 문재인이 취임한 2017년에는 49.1%, 윤석열이 대통령에 취임한 2022년에 87.6%로 각각 나타났다. 권력의 크기가 저널리즘 언어에 영향을 줬다는 뜻이다.

유권자(者)가 뽑았는데 후보자(者)일 때는 별말 없다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는 당선인(人)이란 예외를 요구하고, 언론이 이에 협조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 기준이라면 다른 선거에서 당선된 이들에게도 '당선인'으로 써야 하는데 언론은 '당선자'로 적고 있다. 취재원이 요구한다고 언론이 꼭 따르는 것도 아니다. 민주노총이 '민주노총'을 요구하는데도 '민노총'이라고 쓰거나 성별을 표기하지 말라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는데도 굳이 '여배우', '여직원' 등을 쓰는 현상과 대조된다. 언론이 모두에게 동등하게 대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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