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0조 ‘7광구 油田’ 독식 노리는 일본…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최인준 기자 2023. 2.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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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한일 정상회담 앞두고
다시 주목받는 ‘7광구’

대한민국에는 잊힌 영토가 있다. 제주도에서 남쪽으로 200㎞ 떨어진 바다 밑에 있는 남한 면적 80%(약 8만2000㎢) 크기의 대륙붕, 일명 ‘7광구’다. 한때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많은 석유가 묻혀 있다’는 장밋빛 전망에 온 국민을 산유국의 꿈에 부풀게 했던 바로 그곳. 1970년대 가수 정난이의 히트곡(’제7광구 검은진주’)으로도 잘 알려진 기회의 땅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십년간 석유 한 방울 얻지 못한 채 버려진 비운의 땅이다.

그런 7광구가 다시 소환되고 있다. 다음 달 중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관측되면서 강제징용·위안부와 더불어 한일 양국의 에너지·안보 현안이 걸린 7광구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7광구는 한국과 일본이 지난 1978년 한일 공동개발구역(JDZ) 협정을 맺고 함께 석유 개발을 추진했다가 1980년대 중반 일본의 일방적 개발 중단으로 지금까지 방치돼 있다. 미국 정책연구소인 우드로윌슨센터에 따르면 7광구 일대에는 천연가스가 사우디아라비아의 10배, 석유는 미국 매장량의 4.5배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유가(배럴당 70~80달러)로 계산하면 매장 석유의 잠재적 가치만 9000조원에 달한다.

7광구 공동 개발 협정은 발효된 지 50년이 되는 오는 2028년 6월에 종료되는데, 종료 3년 전인 2025년 6월부터 어느 쪽에서든 조약 종료를 통고할 수 있다. 사실상 윤 대통령 임기 내에 협정의 존폐가 정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 취임 후 정식으로 처음 열리는 이번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오랫동안 끊겼던 7광구 개발을 재개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래픽=송윤혜

◇7광구, 5년 뒤 일본으로 넘어간다?

7광구는 원래 한국이 단독으로 개발하려 선점했던 지역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 일본·중국보다 먼저 7광구에 대한 영유권(일정 영토에 대한 관할권)을 선포했다. 1968년 유엔에서 일대 대륙붕에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 매장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가 나오자 발 빠르게 움직인 것. 대륙붕은 해저 200m 깊이에 있는 완만한 경사의 해저지형을 말한다. 대륙붕이 어떤 국가의 영토에서 이어졌는지 여부를 따져 개발권을 인정했던 당시 국제법 판례에 따라 한국의 독점 영유권은 대체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7광구와 지리적으로 더 가까웠던 일본이 거세게 반발하며 공동 개발을 요구했다. 해저에서 석유를 파낼 시추 기술이 없었던 한국으로선 시추 기술 강국인 일본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한일 양국은 1980년대 초까지 7광구에서 소량의 천연가스를 발견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7광구 개발 사업은 1986년 일본이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며 돌연 개발을 중단하면서 제동이 걸린다.

일본이 개발 사업에서 발을 뺀 이후 한국은 지금까지 7광구 내에서 시추 작업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협정 당시 ‘양국이 공동으로 시추·탐사를 수행해야 한다’는 독소 조항에 걸려 조사선 파견조차 어려웠기 때문. 일각에선 ‘담당 부처인 외교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우리 정부는 다양한 접촉 경로를 통해 일본에 (7광구 공동개발) 협정 이행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구체적 협의 내용은 외교 사안이기 때문에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만 밝히고 있다.

◇정상회담서 7광구 매듭 풀어야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일본보다 한국이 불리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협정이 만료될 경우 일본은 과거 한일 어업협정을 통해 양국 사이 바다에 그은 중간선을 근거로 7광구 대부분을 차지하려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단순히 한일 해양 중간선만 놓고 보면 7광구 지역 대부분이 일본 영해에 해당한다. 협정이 만료된다고 7광구 지역이 바로 일본으로 넘어가거나 한국이 권리를 빼앗기는 것은 아니지만, 한일 간 협정 종료를 기다리고 있는 중국이 개발하겠다고 나설 수 있다.

안세현 서울시립대 교수(국제관계학과)는 “국제재판소로 갈 경우 치열한 영유권 다툼을 벌이게 될 텐데 동중국해 지역 탐사 데이터가 많고 국제 기구에서 우리보다 영향력이 큰 일본을 상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이 7광구 법정 다툼에 독도 문제까지 끌어들이면 사안은 더 복잡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제 법정으로 가기 전에 한일 지도자가 외교적으로 7광구 문제 매듭을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금이라도 일본과 실무급·고위급 회담을 가져 이번 정상회담에서 ‘향후 한일 양국이 7광구 공동개발 협정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는 합의라도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7광구와 관련해 우리 정부의 자문역을 맡고 있는 한 대학 교수는 “국가안보실에서도 (7광구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무엇보다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지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78년 한일 공동개발협정은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한일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화해를 위한 모멘텀(동력) 차원에서 체결됐다”며 “이후 40여 년 만에 7광구 문제에서 일본과 합의를 이끌어낸다면 강제 징용, 수출 규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장기간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에도 큰 외교 성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설득할 한국의 카드는?

일본이 그동안 7광구 사안에서 보여온 태도를 감안하면 한일 양국이 단번에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일본은 한국 정부의 공동 개발 재개 요청을 줄곧 묵살해왔기 때문이다. 채굴에 따른 경제적 이득이 없다고 주장하는 일본을 향해 자원을 개발하자고 찔러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

이 때문에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일본을 상대로 경제적인 명분보다 중국 팽창 저지를 위한 안보 동맹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협정을 연장하면 7광구는 한일 양국이 나눠 갖지만, 협정을 파기할 경우 중국까지 상대해야 한다는 점을 어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7광구 바로 옆 바다에서 천연가스 채굴을 하며 호시탐탐 동중국해 유전을 노리고 있다. 지금까지는 한일 협정 때문에 중국이 7광구에는 진입하지 못했지만, 2028년 한일 조약이 종료될 경우 바로 군사력을 앞세워 7광구 일대 영해권을 행사하려 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동아시아에서 중국 세력 견제를 위해 한·미·일 공조가 필요한 미국을 설득해 일본이 협정 이행에 나서도록 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은 “과거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사태에서 보듯 중국은 동중국해에서 일본 안보의 최대 위협국”이라며 “현재 동중국해에서는 지하자원 못지않게 안보도 중요하기 때문에 일본을 향해 ‘중국 저지’를 위한 한일 동맹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줘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협정 파기’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대비해야 한다. 일본 정부에 ‘일본이 공동 개발 협정을 위반하고 있다’는 내용의 항의 문서를 보내는 등 일본이 협정 이행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증거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지현 교수는 “국제 무대에서 ‘한국은 열심히 7광구 개발을 위해 노력했지만 일본이 무시했다’는 여론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며 “계속 국제적으로 시끄럽게 해서 일본이 주판알을 튕기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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