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35년짜리 소설집…이 욕망, 버리지 않되 갖지 않으리

임인택 2023. 2. 1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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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경, ‘숲속의 방’ 이후 단편집
관습·제도에 배태된 욕망 성찰
35년에 걸친 8편의 과작으로
강석경 작가(72). 작가의 말에서 “장편소설에 대한 꿈은 아직 놓지 못하지만 소설집은 이로써 마지막 출간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강 제공

툰드라
강석경 지음 l 강 l 1만5000원

작가 강석경이 이번에 펴낸 소설집 <툰드라>로 들어가기 위해선 1986년 출간된 소설집 <숲속의 방>을 지나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 청춘의 고통스러운 자아 탐색을 세공하여 신드롬을 일으킨 작품. 

인물마다 처지에 따라 체감하는 일기는 다르겠으나, <숲속의 방>의 기후는 고온다습한 집단의 윤리, 신념, 관습이고, 소설의 계절은 낙뢰와 호우에 잠식된 ‘개인’일 것이다. 결국 자살한 여대생 ‘소양’에 대한 강석경의 문학적 부검은 집단과 개인, 제도와 반체제의 90년대적 길항을 구현하는 한편의 징후적 일기예보가 되었다. (<숲속의 방>은 이후 배우 최진실이 주연을 맡은 영화로도 소개됐는데, 1980년대 소설 속 소양도, 2000년대 현실 속 최진실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점에서 광포한 집단성의 집요한 관성을 상기할 만하다.)

<툰드라>는 <숲속의 방> 이후 37년 만에 내놓은, 작가의 말대로라면 단편집으로선 이제 “마지막 출간”일 작품이다. 1987년 발표한 ‘석양꽃’부터 2001년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 2013년 ‘발 없는 새’, 2018년 ‘가멸사’, 그리고 최신의 ‘툰드라’(2022)까지 모두 여덟 편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 전반에서 아무렴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소양의 자살과 같은 피동적 절멸, 염세적 초탈을 일관되게 배제하려는 데 있다. 광막한 대자연의 몽골로, 신의 나라 인도와 티베트로, 천년고도 경주로, 지리산으로 끊임없이 인물들은 도피하되, 결코 이 세계로부터 도피하지 않는다는 점. 특히 여성의 주체적 의지는 이 30여년 여정에서 더 부드럽게 더 단단해지는데, 마치 <숲속의 방>을 지배한 ‘위계적 기후’를 거둬내고 ‘소양’의 땅을 다져내는 제의 내지 구도의 길로도 보인다.

‘석양꽃’을 제외하면 다른 단편은 죄다 2000년대 들어 쓰였다. 지금 시대 감각으론 익숙할지언정, 당시로선 실로 예민하게 포착된 21세기의 날씨랄까. 그 시작이었을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를 보자.

30대 후반 성공하지 못한 영화감독 정관은 과 후배와 우연히 잠자리를 가졌다가 임신을 시키게 된다. 관은 중절을, 여자 후배는 결혼을 원한다. 그즈음 미국에 사는 게이 닥터 박의 구애를 국제전화로 받는다. 5년 전 가장 사랑했던 조카가 사고로 죽은 미국을 방문했다 절망감에 몸을 섞었던 자다. 하지만 관계에 대한 환멸과 자기혐오가 커질수록 그가 그리워하는 이는 1년 전 헤어진 이혼녀 재연이다. 급기야 재연이 터 잡은 경주를 예고 없이 찾아–홍상수 감독의 영화처럼–만나고 마침내 사랑을 확신하게 되지만, 재연은 “머뭇거리면서 얽히고 공허를 확인하면서 매듭을 끊고, 다시 그렇게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말한다. 함께 구경하던 정월 보름 바닷가 굿판에서 아예 제 목도리를 불길에 던져 사른다. 관은 자신의 남성성이 거세되는 듯한 착시를 ‘관(觀, 바라봄)’하며 이야기는 마침표를 찍는다.

“생은 인연의 허무가
대기하는 정류장 노선”

그렇게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의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후편이 2022년작 ‘툰드라’이겠다. 49살 주영(30대에 직장을 그만두고 인도로 떠난 뒤 티베트 남자와 결혼해 두고 온 딸이 이제 16살이 됐다)은 제 가정을 가진 치과의사 승민과 몽골로 여행을 간다. 둘은 어렸을 때 친구 사이로 승민이 “구름 위에 있는 아이”라며 동경했던 주영과 만나온 지 2년째다. 외견상 불륜인 이 관계를 명목상 정리하고자 떠난 여행에서 둘은 드넓은 초원에서 이뤄지는 소소한 유목민의 일상을 경험한다. 이후 승민은 “널 영원히 못 만난다면 자유를 박탈당한 삶 같을 거”라며, 1년에 한 번씩이라도 몽골에서 만나자 제안한 채 먼저 돌아가고, 주영은 대답 없이 “생은 인연의 허무가 대기하고 있는 정류장들의 노선”이란 말만 삼키고 더 인적 드문 고원으로 들어간다.

이런 개략은 여성과 남성의 대결로 소설을 내몰 여지가 있다. 게이의 구혼, 여성해방을 외치며 자유분방한 연애 관계를 지속했던 여성이 우연한 섹스 뒤 임신하자 남자에게 책임지라며 요구한 결혼 등에서 보듯 되레 성의 표식은 눙치는 쪽이다. 대신 제도와 관습, 그 상부로부터 배태된 욕망, 집착을 극명히 대비시키는 데 의도가 있다. 욕망은 두 가지 양태를 보인다. 제 안에서 깊어져 착종된 욕망. 주영은 제 갱년기조차 ‘해방’으로 고대하지만, 새삼 다르질링에 두고 온 딸을 찾아가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실로 널리 드리워진 외연의 욕망. 가령 책(정신의 표상, ‘발 없는 새’)으로부터 집에 대한 소유욕(물질의 표상, ‘오백 마일’)까지 “존재의 발판이 필요한 인간”이 탐하려는 층위는 두텁고, 결결이 공허하다.

그 구조에서 자유가 어떻게 구해지는지, 어디서부터 자유가 되는지 한 해 한 해 추적해온 경로가 지난 30여년의 과작인 것으로 보아야 옳겠다. 인연이 업을 짓고 고통을 초래하는 불교적 세계관이 작품에 사뭇 개입하는 까닭이기도 할 텐데, 그 함의가 거듭 종교적 각타 내지 속세로부터의 파양을 뜻하지 않는다. 그 선언은 이미 1987년작 ‘석양꽃’에서 이뤄진 바대로다.

번뇌하는 여인 의선에게 스님이 말한다.

“…내 몸을 숙주로 살아가는 쾌락 집착 슬픔이여,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으로 인한 번뇌여, 늙고 병들고 죽는 두려움이여, 여기서 해방되면 그 자유가 바로 구원이 아닌가… 되풀이되는 업의 윤회를 끊으려면 먼저 자신을 관(觀)해야지, 자기를 통하지 않고는 진정한 구원이란 없어요.”

의선은 의연히 답한다.

“전 어리석게 피 흘리더라도 세속에서 부대끼고 살고 죄일지라도 사랑하고 그 대가로 고통도 삼킬 겁니다. 전 가진 자가 못 되고 앞으로도 가진 자가 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 그런 인생도 사랑하게 될 겁니다.”

갖지 않되 버리지 않는다는 의연의 세계관은 마치 먼지 속에 살되 먼지를 떠나 있다는 거진이진(居塵離塵)의 지경이며, 이는 2022년 비로소 툰드라가 품은 영겁의 시간 아래 자잘한 인간을 바라보는 자연 앞에서 “해탈이 거기 있었다”란 고백으로 가닿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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