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현의 ‘옛 신문 속 강원도 읽기’] 48. 1923년, 그들은 왜 단체를 만들었나? (하)

박미현 2023. 2. 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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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향한 울분 … 틈새를 비집고 나와 뭉쳐야 했다
평창소년회 아침 구보·저녁 토론회 열어
화천 금주단연회 조직 연죽·연초 폐기
양양 3·1운동 영향 민중단체 결성 활발
북선해원공제회 설립 지역넘어 상부상조
노동야학 개설·부업 장려 등 활동 전개
횡성, 신분혁파 단체 형평사 분사 운영
강릉 조선소작인상조회 창립 인파 몰려
원주우리구락부 ‘불온하다’ 회보 압수도

원주에서는 기독교단체인 원주엡웟청년회에 이어 1922년들어 문막청년회, 원주청년구락부(원주청년회) 순으로 창립됐다. 1924년엔 원주형평지부, 원주우리구락부 설립으로 이어진다. 구락부는 클럽의 한자식 표현이다. 특히 원주우리구락부는 회보를 발행할 정도로 활동이 커졌는데, 창립총회를 알리는 기사가 1924년 12월 17일자 시대일보에 실렸다.

부장 권면수, 부부장 서병인, 간사 이선기와 고봉윤, 회계 조하만, 서기 김룡화를 선출했다. 1926년 2월 5일엔 등사판으로 발행한 회보에 불온한 내용이 실렸다는 이유로 전부 압수당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2월 16일자 ‘원주 우리구락부 위원 3명 검거’제목의 기사에서 원주경찰서에서 간부 정동호, 이선기, 김세원 3명을 검거해 취조중이며 사무실과 가택 수색을 실시하고 단체 서류도 모두 압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인접한 횡성군 역시 청년회 설립이 빨랐다. 1920년 4월 4일 횡성청년구락부(횡성청년회)가 창립된 것을 시작으로 1922년엔 2개 단체가 설립됐는데 7월 5일 횡성소년회, 7월 23일 안흥청년회였다. 횡성청년구락부는 1921년 6월 12일 오후9시 천도교당에서 특별강연회를 열어 이동구씨가 ‘우리 청년의 사명’이란 연제로 3시간 동안 열변을 토했다는 기사가 6월 19일자 동아일보에 실렸다. 이전부터 준비해오던 신분 혁파 인권 옹호 형평사운동을 담당할 횡성형평분사는 1924년 1월 4일 임시분사장을 선출하며 결실을 보았다. 1924년 1월 10일자 동아일보는 ‘횡성형평분사’ 제목 기사에서 횡성읍 하리 형평분사 사무실에서 임시총회를 열어 임시분사장 길만학의 취지설명과 함께 임원 선정과 기본금 모집에 대해 의논했다고 전하고 있다. 원주와 횡성의 형평사는 1927년 ‘형평학우회’를 공동 창립하는 등 긴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1923년 8월 25일 횡성청년회 지육부에서 노동야학을 개강했다. 교사로 이동수, 한명수, 백영도, 윤태현, 최혁현, 방희세, 윤태연, 방기범, 조철구, 박순붕, 유대진, 윤창호가 맡고있다고 9월 4일자 동아일보는 명단을 실었다. 횡성노농회는 1924년 8월 18일 제1회 임시총회가 이동수 위원장 사회로 회원 정리 및 자금 적립, 청년회와 소년회 후원을 통한 야학 개최, 부업 장려, 두량요금 폐지 등을 안건으로 회의한 것으로 8월 23일자 동아일보에 나타난다. 정확한 창립연도는 알수 없으나 1923년 또는 1924년에 창립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강릉에서는 1921년 강릉청년회, 1922년 강릉노동조합이 창립된 데 이어 1923년에는 초당마을에서 창동회가 설립됐다. 조선일보 1925년 4월 13일자 기사에 따르면 초당리 노동자로 조직된 창동회 회원은 경비를 거둬 2년 전부터 초당리 노동야학원을 창립한 이래 무산 아동을 열심히 교수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학원은 창동회 회원의 성심과 마을 인사의 찬조로 학생이 50여명에 달하며, 어느 목동이든지 국문과 산술, 한문을 대강 다 알게됐다고. 재학생들이 매우 열심히 공부할 뿐만 아니라 교사 이동수, 최경규는 수고로움을 불사하고 열심히 가르쳐 칭송이 자자하다고 전하고 있다. 또 1923년 8월 18일 조선소작인상조회 강릉지회가 창립된 기사가 9월 4일자 조선일보에 실렸다. 날씨가 매우 뜨거웠는데도 오후2시 강릉구락부에서 열린 창립총회에 오륙백명의 인파가 몰렸는데 이상주씨 사회로 조선소작인상조회 이계호 이사의 취지 설명에 청중들이 열광적으로 경청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1923년 창립되지는 않았으나 그 해부터 활동을 시작한 단체가 있다. 1923년 1월 1일자 동아일보는 ‘성덕청년회 창립총회’ 기사를 실었다. 당시 강릉군 성덕면의 여러 청년들이 1922년 12월 18일 성덕청년회를 창립했다는 뉴스이다. 60여명이 참석한 창립총회는 김춘경 임시회장 사회로 규칙 통과와 임원 선거를 가졌는데 회장 최양선, 부회장 조규상, 총무 심상준, 서기 최선재 최서규, 회계 최돈신 최병길과 간사 13인 이라고 실렸다.

홍천에서는 1920년 10월 26일 홍천상업조합 설립을 시작으로 1921년 7월 5일 홍천청년회, 1922년 서석서광농무회가 창립됐다. 이어 1923년 4월 1일 동창의숙 설립과 1924년 3월 홍천소년회, 혁신소년회 결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선에서는 1924년 정선소년회가 조직되고 이후에 정선노동회가 결성된다. 평창에서는 1923년 평창소년회가 조직된데 이어 대화소년회가 조직됐다. 평창소년회 활동을 알려주는 기사가 1925년 11월 11일자와 11월 29일자 조선일보에 ’평창소년 조기’ ‘평창소년 토론’이라는 제목으로 잇달아 실렸다. 1925년 11월 7일부터 조기회를 조직해 매일 오전 5시 학교 운동장에 모여 읍내를 일주하고 해산한다는 내용이 실렸다. 7일 첫날엔 회원 28명이 참석했다고 알리고 있다. 또 11월 20일 금요일 저녁 토론회를 개최했는데 향후 금요일마다 마련한다는 소식이다.

1923년 3월 화천군 구운리에서는 주민들이 금주단연회를 조직하고 금연과 단주 결심을 알리기 위해 연죽과 연초를 모두 불태웠다는 기사가 1923년 4월 18일자 동아일보에 실렸다. 임병국이 회장을 맡고 조사부장이라는 부서장을 두었다. 양구청년회 활동은 1921년 12월 25일자 매일신보에 세금납부 홍보 활동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경로회, 운동회 등을 개최했다. 정기총회 때 양구군수의 훈화를 듣는 것으로 폐회하고 있어 관변임을 보여준다. 3·1운동이 치열했던 양양군 역시 민중적인 성격의 단체 결성이 활발했다.

양양군은 일제 강제 병탄 이전인 1909년 무렵에도 현남면 등 각처에서 노동야학이 개설될 정도로 활발했는데, 1920년 단체 결성이 가능하게 되면서 1921년 노동공제회 지부를 설치했다. 1921년 5월 30일자 조선일보 ‘양양노동공제지부’ 기사에 장지환 등 100여명의 발기로 설립됐다는 소식이 실렸다. 동시에 양양엡웟청년회, 양양청년회, 호산청년회, 동성청년회 등과 같은 청년단체도 경쟁적으로 결성됐다. 1923년 8월 28일 양양군 물치지역 노동자들이 망라된 물치노동동맹회가 조선노동연맹회에 가맹한 사실이 동아일보 1923년 9월 1일자에 보도됐다. 물치노동동맹회는 무산자동맹회 간부 이준태씨를 초청해 강연회를 개최했다가 양양경찰서에서 일부 발언을 문제삼아 구류 10일을 처분해 압박을 받았다.

도 경계를 넘나드는 단체 설립도 있었다. 강원도와 함경도 연안 어업인들이 상부상조하는 ‘북선해원(北鮮海員)공제회’가 설립된 사실이 1923년 4월 6일자 조선일보, 4월 27일자 동아일보에 나왔다. 함남 원산에서 창립된 이 단체는 해상 노동자를 구제하기 위해 기존에 설립된 원산선인(船人)공제조합을 개칭한 것. 일반 해원 및 동지의 단결과 친목을 도모하고, 해원의 생명과 재산 보호 및 선박 기술 발달 등과 동시에 사회 혁신에 기여함을 목적하고 있다. 장문의 단체 설립 취지서가 신문에 실렸는데 ‘창파만경에 일위의 생명을 위하고 어업운송에 심혈을 당하야 풍랑 노도로써 싸우는 해원이야말로 그 위험의 절박함과 노고의 간난함이 과연있더하리요. 인간생활을 영하는 천하의 모든 인사는 반다시 그들의 공로를 위하치 아니치못하며 혜택을 감사치아니치못할거시라. 그러나 종래의 사회는 그들을 위하도 감사도 아니하였스며 도리혀 노예 대하였고 천대시하였도다. 더욱이 자본가는 금력으로써 유식자는 지방으로써 그들을 정복하며 착취하였나니’라며 울분을 토하는 문장으로 빼곡하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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