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을 오가는 소비 문화, 새로운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한 전략

이주영(외부기고자) 2023. 2. 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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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을, 혹자는 IMF 시절보다 더 혹독한 불황이라고도 한다. 한때 자동차를 사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던 이들이 구입 시점에 다다르자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금리가 하늘 높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비자들이 불경기라서 지갑을 꽁꽁 닫아만 두는 건 아니다. 아낄 때는 아끼고, 쓸 때는 과감하게 지갑을 여는 게 요즘 소비자들의 행태다. 그런 새로운 소비자들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패션 산업을 예로 들어 새로운 소비자를 유혹할 수 있는 4가지 요인을 짚어보기로 한다.
(사진 픽사베이)


첫째, 소비의 양극화

(사진 픽사베이)

소비자들이 변했다. 아니 변했다기보다는 ‘모 아니면 도’의 양극화 현상을 띈다. 패션 산업을 들여다보면 캐주얼 브랜드는 청소년 및 대학생 정도의 계층을 타깃으로 삼았고, 로컬 여성 및 남성 브랜드는 직장인을, 명품 하우스 브랜드는 경제적 부유층, 즉 VIP 소비자 군에 집중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졌다. 그러니까 어중간한 입지를 점한 브랜드는 점차 고전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실례로 가성비와 가심비 모두를 추구하는 소비자에게 유니클로는 여전히 호황을 맞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유니클로를 소비하는 이들이 디올, 루이 비통, 구찌 등 하우스 브랜드 소비자와 겹쳐지고,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새로운 소비자들은 이렇게 위와 아래를 자유롭게 오간다. 정작 필요한 건 어떻게든 싸게 구매하려 노력하고, 그렇게 적립된 기타 비용은 ‘플렉스’라는 명제 하에 명품 구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 경제 불황이 점차 현실화되면서 이 같은 극단화 현상은 더욱 명징하게 도출되고 있다.
그러니까 새로운 소비자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브랜드들은 이 양극화 현상을 꿰뚫고 그에 맞는 전략을 구사해야만 한다. 캐시미어 소재로 만든 니트 제품 하나를 사례로 들어보자. 유니클로 매장에 가면 10만 원 중 후반의 돈으로 꽤 품질 좋은 캐시미어 니트를 구매할 수 있다. 그런데 명품 브랜드 매장에서는 캐시미어 니트를 200만 원 전후의 가격으로 구매해야만 한다. 원단의 차이를 손끝으로 명확하게 구분하는 전문가가 아니고선 이 두 브랜드의 제품을 육안으로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두 제품 모두 브랜드 로고가 큼직하게 외부로 노출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는 이렇게 할 것 같다. 일단 유니클로의 제품을 구매한다. 그리고 나머지 돈으로 명품 브랜드에서 욕망했던 스니커즈나 가방을 하나 산다. 모두 명품으로 치장하기엔 역부족이기에, 가성비를 따진 제품을 하나 구매하고 동시에 극단에 위치한 제품을 하나 더 플렉스하는 것. 이와 같은 이들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소비자 유형이다.
일본 유니클로(사진 픽사베이)


둘째, 자연적 낡음과 의도적 훼손 사이

프라이탁(사진 프라이탁 홈페이지) (매경DB)

오래 전부터 트럭 방수 포장재와 버려진 안전벨트 끈을 활용해 가방을 선보인 브랜드가 있다. 바로 ‘프라이탁(FREITAG)’이다. 패션 아이템으로 프라이탁의 가방 및 액세서리들은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소비자의 유형이 정착되면서 이 브랜드의 제품들은 없어서 못사는 아이템이 됐다. 굉장히 낡아 보이는데, 동시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제품이라는 의미가 긍정적으로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해외 브랜드 중 직접적 리사이클링은 아니지만 의도적으로 낡아 보이는 변용을 통해 주목받는 브랜드도 있다. 명품 중에서는 발렌시아가가 대표적이다. 발렌시아가는 꽤나 파격적 행보로 소비자들을 열광케 한다. 쓰레기통에서 주운 듯 더러운 스니커즈, 포장 테이프를 칭칭 동여맨 가방, 심지어 감자칩 비닐 봉투를 연상케 하는 클러치 등. 새로운 소비자의 가장 큰 특징은 ‘취향’이다. 이들은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는 것이면 아무리 비싸도 손에 넣고야 마는 습성이 있다. 발렌시아가는 그런 취향에 꽤 부합한 모양새다. 사실 업계에서는 ‘뜯어지고 헤진 것’이 더 비쌀 수밖에 없다고 한다. 새롭게 제품을 만들고 가공 과정을 통해 의도적으로 그리 만들어야 하는 절차가 개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골든구스 볼스타(사진 goldengoose 공식 홈페이지 캡쳐)

또 다른 사례로 새로운 소비자에게 각광받는 스니커즈 브랜드 ‘골든구스’가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시작된 브랜드로 인기 있는 슈퍼스타나 볼스타 같은 제품들은 60~80만 원대를 오간다. 심지어 의도적으로 빈티지를 구사해 제품들이 무척이나 낡아 보인다. 그럼에도 굉장히 잘 팔린다. 브랜드 매장 한편에는 그 낡음을 소비자가 직접 참여해 실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브랜드에서는 이 실행 직원을 ‘아티잔’이라 부른다. 그들에게 요청하면 새 스니커즈를 그라인더에 갖다 대 의도적 훼손을 가해준다. 또 소비자가 원하는 그림이나 문구를 직접 운동화에 그리거나 써주기도 한다. 새로운 소비자들은 취향을 중시한다. 골든구스의 의도적 훼손은 그 취향 중시에 부합하는 행위다. 굉장히 낡아 보이는데, 동시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제품이라는 의미가 긍정적으로 투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 의도적 훼손과 자연적 낡음이라는 경계 사이에서 새로운 시대의 소비자들은 취향의 잣대를 들이밀며 호의적 반응을 내비친다.

셋째, 고가의 스트리트 웨어

제리 로렌조라는 디자이너가 이끄는 ‘피어 오브 갓(Fear of God)’이란 브랜드가 있다. 스웨트 팬츠 한 벌에 100만 원 정도 한다. 뮤지션 출신의 마이크 아미리가 선보이는 브랜드 ‘아미리(AMIRI)’는 로큰롤 스피릿을 주창하며 MZ세대 소비자에게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다. 아미리의 제품 역시 범접하기 쉽지 않은 가격대다. 디자이너 루이지 빌라세뇨르가 키를 잡고 있는 브랜드 ‘루드(Rhude)’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LA 기반의 브랜드 ‘갤러리 디파트먼트(GALLERY DEPT.)’도 각광받고 있다. 이들의 첫 출발은 스트리트 브랜드들이 주로 내놓는 티셔츠, 스웨트 티셔츠, 스웨트 팬츠, 점퍼 등이었다. 그러니까 슈프림, 팔라스 스케이트보드 등과 별다를 바 없는 스트리트 패션이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차원이 다른 건 가격에서다.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표출하면서 기존 명품, 즉 하우스 브랜드에 버금가는 가격대를 책정했다. 불티나게 팔렸다. 이른바 스트리트 기반 브랜드들의 환골탈태다.
피어오브갓(사진 fearofgod 공식 홈페이지 캡쳐)

사실 이와 같은 스트리트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명품 브랜드들이 새로운 세대의 소비자 층을 확장하기 위해 스트리트 브랜드의 전략을 포용한 것에서 기인한다. 앞서 버질 아블로가 이끌던 루이 비통과 슈프림의 협업을 말하지 않았던가! 이 시점부터 ‘명품’ 스트리트 브랜드들에 대한 주목도가 더 높아졌다. 고가 스트리트 브랜드들이 MZ세대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기존 (가격대가 적절한) 스트리트 브랜드들의 위상도 더 높아졌다. 여기에서도 소비의 양극화 현상이 발생한다. 온라인 커머스 ‘무신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국내 브랜드들, 그러니까 ‘디스 이즈 네버 댓’, ‘커버낫’, ‘널디’ 등과 같은 (해외 스트리트 브랜드에 비해 비교적 가격이 낮은) 브랜드들도 굉장히 잘 팔린다. 심지어 해외 유수 브랜드들이 디스 이즈 네버 댓과의 협업을 원하기까지 한다. 이제 스트리트 패션은 단순한 청소년들의 길거리 스타일이 아니다. 셀린느, 디올, 루이 비통, 구찌 등의 해외 명품 브랜드의 제품들 중 품절 사태를 일으키는 제품들 대다수가 스트리트 스타일을 내세웠다.

넷째, 협업이라는 또 다른 브랜드

(사진 픽사베이)

시쳇말로 ‘콜라보’라는 명목하에 소개되는 제품들은 새로운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스포츠 브랜드들이 있었다. 나이키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떠오르는 디자이너 및 아트스트들과 협업한다. 아디다스도 마찬가지다. 칸예 웨스트, 빌리 아일리시, 트래비스 스캇 등과 같은 뮤지션은 물론 웨일스 보너, 앰부시, 크레이그 그린 등과 같은, 혜성같이 떠오르는 (그리고 자신들의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는) 디자이너들과도 협업한다. 이 협업의 장점은 그들의 브랜드 네임을 조금이나마 저렴하게 획득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위에서 언급한 유니클로도 마찬가지다. 크리스토퍼 르메르라는 유명 디자이너와 손잡고 꾸준히 협업 제품을 내놓는 유니클로는 때로는 질 샌더, JW 앤더슨 등과도 손을 잡는다. 이와 반대 현상도 있는데, 루이 비통이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과 협업한 경우였다. 이와 같은 협업은 슈프림 가격이 아니라 명품 가격으로 책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렸다. 최근 슈프림만큼 명성을 가진 팔라스 스케이트 보드가 구찌와의 협업을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구찌 가격으로 구매해야 한다. 그래도 분명 순식간에 품절될 게 자명하다. 아디다스와 손잡은 구찌, 발렌시아가의 협업 역시 세간에 화제를 모으고 있으니, 바야흐로 극과 극의 협업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단 패션 산업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이 협업은 영역을 허물며 다양한 소비재 산업 전체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발렌시아가 아디다스 협업(사진 발렌시아가 제공)


위와 같은 네 가지 요소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소비자에 대한 마케팅 인사이트가 도출될 것이라 믿는다. 이제 새 시대의 소비자는 과거처럼 극단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양극을 자유롭게 오간다는 점. 이런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의외의 협업을 과감하고 다양하게 시도해야 한다. 또, 패션 산업에서 스트리트 컬쳐가 주류 산업으로 끌어올려진 것에서 착안하여 다양한 하위문화적 시선을 견지해보는 것. 또, 획일화된 전략보다는 조금 더 취향과 개성을 부각시켜 줄 수 있는 시도를 해보는 것. 이처럼 조금은 차별화되고, 의도적인 전술을 펼친다면 새로운 소비자들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볼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이 변했으니 그들에 대응하는 전략도 필수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말이다.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각 브랜드 홈페이지 갈무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66호(23.2.1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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