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품은 ‘환대의 도시’ 광주, 포용이 빚어낸 기적을 만나다

조봉권 기자 2023. 2. 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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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투어

-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역사 가진 고려인
- ‘코리안 드림’ 이루려 정착, 집성촌 꾸려

- 역사문화탐방·1인극 관람 패키지 편리
- 러시아식 식사·마트료시카 체험은 선택
- 고려인종합지원센터 찾는 이마다 ‘찰칵’

‘환대의 마을로 떠나는 여행’을 다녀왔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을 떠올릴 때마다 ‘월곡(月谷)’이라는, 부드럽게 찰랑대는 느낌이 따라와 푸근해지는데 그곳에 ‘광주 고려인마을’이 있다. 이런 말을 하면 이 마을을 일군 당사자들은 쑥스러워할 테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 마을을 세 번째 찾아간 부산의 나그네로서는 이렇게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환대가 빚은 기적이 숨 쉬는 마을’. 고속버스를 타자 부산에서 광주 유스퀘어(종합버스터미널)까지는 딱 세 시간 걸렸다.

지난달 28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을 찾았다. 이 마을에 소복이 눈이 내린 뒤였다. ‘월곡고려인문화관 결’은 고려인 동포의 역사와 문화를 알차고 소담스럽게 전시해둔 중요한 공간이다.


광주 고려인마을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고려인마을 관광 안내’가 있다. 여기 들어가면 고려인마을 역사문화탐방을 안내하는 마을 여행사 ‘동행투어’(061-951-1937)가 올린 알찬 안내장을 볼 수 있다. 월곡고려인문화관 결 탐방(30분)으로 시작해 ▷고려인마을 투어(1시간) 식사 패키지(1시간) ▷체험 프로그램 (1시간)이 있다. 고려인마을 투어(1만 원·1인극 공연 관람 포함)는 ‘기본·필수’이고, 식사 패키지(1만 원)와 체험 프로그램 (1만 원)은 ‘선택’이다.

식사 패키지에는 고려인 동포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즐겨 먹는 리뾰시카(담백하고 맛난 러시아 빵), 샤슬릭(큼직하고 ‘이 사람들 고기 참 잘 만진다’는 생각이 드는 정통 중앙아시아식 꼬지구이), 닭고기시저샐러드(부드럽다. 자꾸 손이 간다), 국시(고려인 동포들이 중앙아시아에서 만들어 먹던 고향음식)로 이뤄졌다. 어머머! 이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체험이다. 맛보는 기쁨 없인 여행의 기쁨도 없다.

체험 프로그램은 러시아 전통 인형 마트료시카 색칠하기나 마트료시카 보석 십자수, 고려인마을 포토존에서 찍은 사진으로 머그컵 만들기, 추억의 먹거리 쿠킹 클래스, 함평 임시정부청사 또는 윤상원 열사 생가 탐방 등 5가지 가운데 하나를 택할 수 있다. 각 체험 프로그램 당 1만 원. 주저 없이 ‘동행투어’의 ‘고려인마을 역사문화탐방’을 예약했다(최소 출발 인원 8명). 세 가지 모두 택하니 1인당 3만 원.

▮잊어선 안 될 ‘강제이주’

‘고려인마을 가족카페’에서 탐방객을 위해 내놓는 음식 가운데 하나인 ‘국시’.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고국을 생각하며 해 먹은 음식이다.


광주 고려인마을을 탐방하려면, 이 마을의 역사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마을 역사를 살피려면, ‘고려인 동포’를 만나야 한다. 그렇게 하자면, 1937년 소련 스탈린 정권의 연해주 한민족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라는 슬프고 아픈 역사를 되짚어야 한다. 간단한 일은 아니다. 고려인마을의 자랑거리인 ‘월곡고려인문화관 결’(관장 김병학)에 가면 그 내용이 잘 간직돼 있으니 여기선 간략히 짚어보자.

1937년 소련의 절대 권력자 스탈린은 연해주를 비롯해 이른바 극동(極東)·원동(遠東)에서 운명을 개척하며 잘 살아가던 한민족 17만2000여 명을 일시에 강제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이주시킨다. 소련은 군국주의 일본과 적대 관계였는데, 연해주 등지의 한민족이 일제의 간첩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게 명분이었다. 파도 파도 나오는 한민족과 제국주의 일본의 악연은 과연 그 끝이 어디인가.

잔인한 정책이었다.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한 달 넘게 쉬지 않고 달린 열차 안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소련 당국은 강제 이주에 들어가기 전, 한민족 지식인·지도자·명망가 2500명을 아무런 죄도 없이 체포해 ‘미리’ 처형했다. 강제 이주 첫해 겨울을 못 넘기고 어린이와 노약자 2만 명이 죽었다. 그런 독한 어려움을 뚫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지에서 끝내 살아남아 번영을 일군 한민족 동포가 고려인이다.

▮월곡고려인문화관 결

고려인마을 다모아 공원에 세운 독립투사 홍범도 장군 동상.


한국 경제가 발전하고 중앙아시아 나라들의 문호도 열리면서 많은 고려인 동포가 한국으로 일하러 왔다. 초창기에 온 많은 고려인 후손이 돈을 떼이거나 일터를 잃거나 사기를 당하는 등 고통을 겪고 손해를 봤다. 2001년 우즈베키스탄에서 광주 월곡동으로 온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가 이천영 목사와 만나 고려인 동포를 돕는 일을 2000년대 초 시작했다. 입소문이 나고 도움을 받는 사람이 늘면서 더 많은 고려인 동포가 이곳에 깃들었다. 2023년 현재 광주 고려인마을에 사는 고려인 동포는 약 7000명이다.

동행투어를 운영하는 임용기 이사와 송주영 이사의 안내로 탐방을 시작했다. “여기가 고려인종합지원센터입니다. 우리 마을의 중심입니다. 이 건물에 GBS 고려방송(라디오)이 있습니다.” 고려인종합지원센터는 이 마을 찾는 이들이 반드시 사진을 찍는 유명한 포토존이기도 하다. 여행객에게는 ‘월곡고려인문화관 결’이 역사문화 탐방의 출발지였고 심장부였다. 카자흐스탄에서 오랜 세월 살며 고려인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가꾼 김병학 시인이 관장으로 있는 결의 1층에서는 고려인이 역사·문화·정체성·염원을 담은 상설 전시가 1년 내내 열린다.

탁월한 고려인 음악가 고(故) 한 야꼬브(1943~2021) 선생이 작곡하고 김병학 관장이 작사한 ‘고려 아리랑’ 영상도 멋지다. 2층에는 기획전시가 열린다. 현재는 음악가 한 야꼬브 선생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박스 참조).

▮우크라 고려인 난민을 품다

고려인커뮤니티센터, 고려인진료소, 고려인 지역아동센터와 청소년문화센터 등을 두루 둘러보았다. 수많은 기업과 개인이 고려인마을을 위한 기부와 봉사에 동참해 이런 시설과 공간이 차곡차곡 생겼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고려인 음식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식당도 많다. 그중 ‘고려인 마을 가족카페’에서 맛본 ‘식사 패키지’는 훌륭했다. 보드카를 ‘100g’ 단위로도 파는 점이 신기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이 전쟁을 계기로 전 세계에 ‘환대의 마을’로 이름을 알렸고 광주를 평화의 도시로 각인했다.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살다 전쟁을 피해 탈출한 고려인 동포들을 신조야 대표와 이천영 목사가 중심이 돼 온 힘을 다해 도왔기 때문이다. 위기에 처한 현지 고려인 동포를 위해 항공권을 제공하는 활동을 펼쳐 지난해 2월 남 아니따(11) 양과 최 마르크(14) 군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875명이 한국으로 피란 올 수 있게 도왔다. 이 가운데 700여 명이 광주에 안착했다.

수많은 국내 언론매체뿐만 아니라 CNN BBC NHK 같은 해외 매체도 ‘그런 용감한 환대가 어떻게 가능한지’ 알아보려고 이를 취재했다. 최근 다모아 공원에 독립투사 홍범도 장군 동상을 세웠다. 인생 만년에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고려극장에서도 일했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2021년 한국으로 봉환된 것을 기념해 고려인마을은 이 공원 이름을 ‘홍범도 공원’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 중앙아시아에 재즈 소개한 ‘한 야꼬브’…고려인 민족음악 집대성도

▮ ‘월곡고려인문화관 결’ 특별전

‘월곡고려인문화관 결’의 음악가 한 야꼬브 선생 특별전 모습.


월곡고려인문화관 결(관장 김병학)에서는 현재 위대한 고려인 음악가 한 야꼬브(1943~2021) 선생을 기리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천재형 음악가’였던 한 야꼬브 선생은 2000년대 초 녹음기 하나 들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러시아를 샅샅이 돌면서 고려인 어르신들을 만나 그분들이 부르는 노래 1000여 곡을 수집했다. 이를 바탕으로 김병학 관장과 힘을 모아 2011년 ‘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라는 두 권짜리 기념비 같은 저서를 남겼다. 고려극장 활성화와 고려인 음악문화 발전에도 한 야꼬브 선생은 크게 이바지했다.

그가 중앙아시아에 재즈를 소개한 주역이라는 점은 우리 민족 음악사에서 기억돼야 한다. 김병학 관장의 설명이다. “한 야꼬브 선생은 1960년대에 군대 생활을 투르크메니스탄 남쪽, 이란과 접경한 사막에서 했습니다. 그때 친미 국가였던 이란에서는 투르크메니스탄을 향해 줄창 재즈를 틀었지요. 이 음악 뭐지? 이 음악 좋다며 배워 재즈를 중앙아시아에 처음 소개한 분이 한 야꼬브 선생입니다.”

한 야꼬브 선생은 당시 소련 치하에서 재즈를 ‘자본주의 음악’이라며 배척하고 연주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재즈를 수호했다. 그렇게 재즈가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퍼지게 한 주역이라고 김병학 관장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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