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추모공간을 대하는 서울시의 ‘견지망월’[기자메모]

윤기은 기자 2023. 2. 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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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제안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추모 공간 중 한 곳인 서울 용산구 반지층 건물 뒷편의 7일 모습. /한수빈 기자

“취재하신 곳은 예전에 서울시가 제안했던 곳이지, 이번에 제안한 곳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난 7일 기자는 서울시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측에 제안한 추모공간 후보지 세 곳을 다녀온 후 작성한 기사를 출고했다. 기사가 나가고 얼마 후 서울시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기사가 ‘반지하·담배존·공사판 등 미관상 좋지 않은 곳을 유독 강조했다’는 항변이었다.

하지만 기사의 내용은 대부분 ‘팩트’였다. 기자가 ‘유독 강조’한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서울시가 이태원 참사 추모공간으로 제안한 곳은 반지하거나, 공사장 건너편이거나, 도로 앞 배수구가 담배꽁초로 가득 차 있거나, 지하철역 지하 35m에 있었다. 쇠창살이 세워진 반지하 공간의 유일한 창문은 미관상·채광상 좋아보이지 않았다. 반지하와 공사장, 지하 35m는 추모공간 후보지에 가려면 모두 지나가야하는 곳에 있었다. 보지 않을래야 보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지난해 10월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후 유가족들이 추모공간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하자 서울시는 나름의 기준으로 그에 부합하는 장소를 물색해왔다. 추모공간 후보지 3곳에 이르기 위해 기자가 다녀온 길은 서울시 담당자가 먼저 다녀왔을 길이다. 공교롭게도 3곳 모두 인적이 드물거나, 접근이 어렵거나, 야외에서 직접 볼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담당자는 그 길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서울시가 추모공간 후보지를 정할 때, 유가족과 함께 갔더라면 어땠을까. 적어도 ‘하수구에 담배꽁초가 수십개씩 떨어져 있는 반지하’, ‘2027년까지 공사가 예정된 부지 건너편 건물’, ‘에스컬레이터를 3개 타고 내려가야하는 지하’는 배제되지 않았을까.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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