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에 발만 동동···애태우는 한국의 튀르키예 사람들
서울 강남구 한 케밥 식당에서 일하는 튀르키예인 타네르 켈리쉬(35)는 7일 멍한 눈으로 빙빙 돌고 있는 고깃덩어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있던 그는 휴대폰 벨소리가 들리자 부리나케 전화를 받았다. 고국의 가족으로부터 걸려 온 영상전화였다. “마마!” 차 조수석에 앉아 있는 어머니가 화면 속에 비쳤다. 튀르키예에 있는 그의 가족은 지진으로 집이 무너져 차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켈리쉬는 고국에 있는 가족 한 명 한 명을 찾으며 말을 건넸다. 얼굴을 직접 봐야 불안을 떨칠 수 있었다. 가족 모두의 생존을 확인하며 목소리가 밝아지는가 싶던 그의 속눈썹은 금세 눈물로 젖었다. 입으론 손님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손으론 거칠게 눈물을 닦았다. 통화를 마친 그가 서툰 한국말로 말했다. “이웃집은 6명이 다 죽었대요.” 내 집, 네 집 없이 드나들던 이들의 부고에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켈리쉬의 집은 두 번째 강진에 무너졌다. 하타이주에 있는 그의 집은 전날 오전 4시17분쯤(현지시간) 발생한 7.8 규모의 강진에 휘청대다 오후 1시24분 연이어 발생한 7.5 규모의 여진에 폭삭 내려앉았다. 이 집엔 켈리쉬의 부모와 동생, 작은형, 큰형수가 살고 있었다.
켈리쉬가 가족의 집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전날 오후 10시30분쯤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게로 향하던 그는 인스타그램으로 폐허가 된 동네를 확인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7400㎞ 떨어진 타국에서 가족의 생존을 기도하는 시간이 지옥 같았다고 했다. 켈리쉬는 세 시간이 지난 이날 오전 1시에야 동생으로부터 “가족이 무사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진의 공포 다음에 찾아온 건 추위와의 싸움이라고 했다. 켈리쉬는 “밖이 너무 추워 가족들이 차 안에서 지내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튀르키예는 이날까지 영하의 온도가 이어질 예정이고, 진원지 인근인 가지안테프의 경우 최저 영하 6도까지 떨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이들은 피가 마르는 심정이라고 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음식점에서 일하는 세너 피크레(31)는 아직도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는 “아무것도 연락이 안 되고 있다”며 “인터넷도, 전화도 안 된다. 물도 없다고 들었다”고 했다. 일이 손에 잡힐 리 없다. 피크레는 이날 오전 4시부터 스마트폰으로 현지 뉴스만 보고 있었다.
옆 가게에서 일하는 튀르키예인 A씨는 친구와 친척을 잃었다. A씨는 “사촌이 죽고 친구들은 연락이 안 된다”면서 “우리는 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내 친구들이 많이 다친 것 같다”고 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A씨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한국 체류 튀르키예인들은 커뮤니티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 성수동에서 공방과 와인바를 운영하는 카디르 보족(33)은 8일 수익금 전부를 튀르키예 재난위기관리청(AFAD)에 기부할 예정이다. 보족은 “따로 함께하고 싶은 분들은 인스타그램 메시지(DM)로 연락을 달라”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렸다.
같은 이름을 쓰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가 대한민국에 묻혀 있는 것을 보고 한국 거주를 결정했다는 보족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제가 운영하는 가게 수익금을 기부하려고 한다”면서 “고맙게도 주변 한국인 친구들도 도울 방법을 물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거주 튀르키예인들끼리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같이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며 “주한 튀르키예 대사관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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