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비용부담, 정부 책임이냐 지자체 책임이냐
'표 잃을라' 정치적 계산도 제도 방치에 한몫…급속한 고령화 감안하면 현행 제도 존속 힘들어
학계선 할인폭 축소나 할인 연령대 상향, 출퇴근 시간대 할인 제외 등 대안 제시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서울시의 대중교통 요금 인상 발표와 맞물려 노인들의 지하철 무료이용을 둘러싼 해묵은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서울시가 4월 버스·지하철 요금을 300∼400원 인상한다고 예고한 뒤 지난주 오세훈 서울시장이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로 생기는 운영 손실을 정부가 보전해준다면 교통요금 인상 폭을 낮출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다.
그동안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해온 무임승차 비용을 중앙정부에서 분담해 달라는 건데, 과거처럼 지원을 거절하면 부득이 시민들에게 부담을 지울 수밖에 없다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정부 재정 배분의 열쇠를 쥔 기획재정부는 기존의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주 원내대책회의에서 "사실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는 중앙정부가 결정하고 부담은 지자체가 져야 하는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근본적 해결 방안을 논의해봐야 할 것"이라며 중재하고 나선 모습이다.
여당의 개입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듯하지만 결과를 장담하긴 이르다. 과거에도 해법을 모색하다 무위에 그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해법을 찾으려면 관련 논의가 지난 20년간 평행선을 달려온 이유부터 차근차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노인 지하철 운임 감면 제도가 처음 시행된 건 제5공화국이 출범한 1980년 정부가 70세 이상 노인들(당시 80만5천명)에게 경로우대증을 발급한 뒤 공공요금 50% 할인 혜택을 주면서다.
뒤이어 노인복지법(1981년)과 시행령(1982년)을 제정해 이를 법제화하면서 혜택 연령을 '65세 이상'으로 확대했고, 1984년엔 전두환 대통령 지시로 시행령을 개정해 할인율을 지금과 같이 100%로 높였다. 하지만 재원 대책은 마련하지 않아 무임승차로 생기는 비용은 이때부터 지하철 운영사와 지자체가 부담하게 됐다.
그러나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갈수록 늘고 무임승차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과거 언론 보도를 보면 서울지하철공사(현 서울교통공사)는 이미 1995년 무임승차에 따른 전년도 운임손실액 148억원(4천247만명분)에 대해 국고보조를 요청했음을 알 수 있다.
수도권 지역 지하철 무임승차 인원은 2000년 9천392만명(운임손실 694억원)에서 2019년 2억9천192만명(3천866억원)까지 늘었다가 코로나19 사태로 승객이 줄면서 2021년 2억2천22만명(2천965억원)으로 주춤해졌다.
철도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경기 등 전국 7개 광역자치단체에서 운영 중인 도시철도(지하철)의 무임승차 인원은 2021년 기준 총 3억7천795만명, 운임손실액은 5천74억원에 달하는데, 무임승차자의 83%가 노인인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 도시철도 무임승차의 55%를 부담하는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지난해 무임승차자가 전체 탑승객의 16%를 차지하면서 무임승차 비용(2천784억원)이 영업손실(9천385억원)의 30%에 달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서 지하철 무임승차 비용을 정부가 보전해야 한다는 지자체의 요구가 커졌으나, 정부가 이를 수용한 적은 없다.
국회 차원의 해결 시도가 있었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20대 국회(2017년)에서 지하철 무임승차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는 도시철도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21대 국회(2020년)에서도 유사한 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심의가 보류된 상태다. 지난해 말엔 국회에서 올해 정부 예산안에 도시철도 무임수송 손실 보전분 3천585억원을 반영하려다 기재부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표] 서울교통공사(도시철도) 무임승차 인원 및 무임비용 현황
[※자료=철도통계연보]
서울시가 국고 지원 요구의 주요 근거로 거론하는 건 지하철 무임승차제도가 1984년 대통령 지시로 처음 도입됐다는 것이다. 제도를 처음 도입한 주체가 중앙정부이니 결과에 대한 책임도 회피해선 안 된다는 논리다.
제도 도입과 관련한 사실관계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정부의 도의적 책임을 물을 순 있어도 국고 지원에 대한 규정이 법령에 마련되지 않는 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부의 지원을 끌어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의 법적 근거는 노인복지법과 시행령인데, 지자체와 정부가 오랫동안 평행선을 달려온 일차적인 이유는 해당 법령에 대한 해석차에 있다.
노인복지법 26조 1항에는 '국가 또는 지자체는 65세 이상에 대해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 또는 지자체의 수송시설 및 고궁·능원·박물관·공원 등의 공공시설을 무료로 또는 이용요금을 할인해 이용하게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를 문언대로 풀어보면 '지자체의 수송시설을 무료로 이용하게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혀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의무 규정'(강행 규정)이 아니라 재량권을 부여한 '임의 규정'으로 해석된다. 기재부는 이 같은 해석을 근거로 현행 지하철 무임승차제도가 도시철도 운영 주체인 서울시 등 지자체의 판단에 따라 유지되고 있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비용 보전 책임도 지자체에 있고, 중앙정부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울러 기재부는 도시철도법(31조)이 도시철도 운임의 결정·변경 승인 권한이 시·도지사에게 있다고 규정한 점도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본다.
서울시도 노인복지법 26조가 임의 규정이란 점은 인정한다. 서울시는 그러나 관련 시행령이 '강행 규정'으로 돼 있기 때문에 법령 전체를 통합적으로 해석하면 강행 규정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법령 개정 없이는 지자체가 자체 판단에 따라 지하철 무임승차를 중단하거나 할인율 등을 변경할 수 없기 때문에 비용 부담을 지자체에만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표] 노인복지법·시행령 경로우대 조항
노인복지법 시행령 19조는 65세 이상에 대해 요금을 할인할 수 있는 공공시설의 종류와 할인율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데, 세부 항목표(별표1)에 도시철도의 할인율을 100%로 못 박아두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회 공청회 자료를 보면 대한교통학회는 지하철 무임승차를 지자체장의 재량 사항으로 판단하면서도 노인복지법 시행령에 할인율이 100%로 명시돼 있는 점을 지적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경로우대는 시혜적인 조치여서 노인복지법에 임의 규정 형식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할인 대상과 할인율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시행령까지 합쳐서 보면 사실상 규범력이 있는 강행 규정으로 볼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지하철 무임승차 비용 보상 문제를 난항에 빠트린 원인은 이처럼 국가기관 간에도 이견을 좁힐 수 없게 하는 법제도 자체의 모호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적 이유에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노인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보편복지로 자리 잡은 지하철 운임 감면 제도의 취지는 유효하지만 재정적 한계로 현상 유지가 어렵다면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실제론 정부와 지자체 모두 수년째 결론이 나지 않는 비용 보전 책임 문제로만 씨름할 뿐 제도 개선에는 소극적이다. 자칫 노인층의 반발을 사 정치적 비용을 치르게 될 수도 있는 제도 개선에 누구도 먼저 나서기를 꺼리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15년 '노인의 이동성 지원과 지하철 무료이용제도 개선방안' 논문에서 "노인복지법의 규정은 의무 규정은 아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철공사가 무료 이용을 유지하는 것은 과거의 관행을 유지하는 차원이며 재정 부담에도 불구하고 변경하지 못하는 것은 정치적인 이유가 크다"고 지적했다.
정부(기재부)는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무임승차제도를 없애거나 할인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노인 무임승차 비용 문제를 해결하는 건 무방하기 때문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주 도시철도 무임승차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하자, 국민의힘 당권주자인 윤상현 의원이 나서 "우리 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자멸적인 스모킹 건(결정적 단서)이 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가 도입된 1984년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연령은 27.1세였으며 65세 이상은 167만명으로 전체 인구(4천41만명)의 4.1%에 불과했다. 그러나 38년이 흐른 2022년 현재 평균 연령은 43.9세며 65세 이상은 902만명으로 전체 인구(5천163만명)의 17.5%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2027년이 되면 65세 이상의 비중이 22.7%(평균연령 46.7세), 2035년 30.1%(50.1세), 2040년 34.4%(51.9세), 2050년 40.1%(54.8세)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비춰보면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긴 어려워 보인다. 해외 사례를 살펴봐도 우리나라처럼 65세 이상에게 일률적인 지하철 무료이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는 게 학계의 일치된 견해로 보인다.
2017년 한국철도학회 추계학술대회 논문집에 실린 논문 '도시철도교통 무임수송 제도에 관한 연구'는 상당수 유럽 국가들이 노인에게 대중교통 할인 및 무료이용을 제공하지만, 일부를 할인하거나 조건부로 할인 혹은 무임을 적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한교통학회의 해외사례 분석 결과도 대동소이하다.
노인의 이동성 보장을 위해 지하철 운임 감면 제도가 필요하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의 누적된 영업손실과 노인 인구의 증가세로 봤을 때 제도 개선을 더 늦추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학계에선 이미 수년 전부터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고 있다.
일례로 석재은 교수의 연구 논문에는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제도를 개선할 대안과 비용 절감 효과까지 제시돼 있다. 석 교수는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무임승차 비용이 2060년 2조8천700억원으로 불어나는 반면 할인율을 현행 100%에서 30% 또는 50%로 낮출 경우 각각 70%와 50%의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봤다. 또 할인 연령을 70세로 단계적으로 상향조정하는 경우 20%, 출퇴근 시간에 할인을 제외할 경우 13% 비용 절감 효과가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정부와 서울시가 무임승차 비용 보전을 둘러싼 책임 공방을 답습하는 데 머무른다면, 근원적 문제는 놔둔 채 다시 지하철 요금만 올리고 넘어갈 공산이 크다.
[표]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추계
[※자료=통계청 장래인구추계 발췌]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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