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빅 피쉬’ 1만송이 수선화 vs 거문도 금잔옥대 수선화

김민철 논설위원 2023. 2. 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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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이 근사한 프러포즈를 고민하느라 스트레스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감동적인 장소 또는 방법으로 프러포즈를 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절차 중 하나가 됐다는 것이다. 살 집 마련 등 다른 결혼 준비도 만만치 않을텐데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생겼다니 좀 안쓰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가장 유명한 프러포즈 중 하나는 영화 ‘빅 피쉬(Big Fish)’에 나오는 프러포즈일 것이다. 이 영화(2004년 개봉)는 허풍쟁이 아버지 에드워드와 그런 아버지 이야기의 진실을 찾는 아들 윌의 모습을 그렸다. 영화에 에드워드가 수선화로 가득한 노란 꽃밭에서 산드라에게 포러포즈하는 장면이 있다. 화면 가득한 수선화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영화 '빅 피쉬'에서 주인공 에드워드가 수선화밭에서 프러포즈하는 장면. /네이버 영화

이 장면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제작진은 수선화 1만 송이를 직접 심어 촬영했다고 한다. 감독(팀 버튼) 등 제작진의 열정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 탄생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에드워드가 프러포즈한 곳 못지않게 수선화를 심어놓은 명소들이 적지 않다. 서산 유기방가옥, 수선화축제가 열리는 태안의 네이처월드와 신안군 선도, 거제 공곶이 등이 대표적이다. 수선화축제는 대개 3~4월에 열린다.

봄에는 꽃을 즐긴다. 그리고 가을에 열매를 거둔다 - 서산 유기방가옥 수선화. /박종인

우리가 흔히 수선화라고 하면 수선화속(Narcissus) 식물을 말하는데, 수선화속에는 수십개의 종이 있고 수만개의 품종이 있다. 부화관의 크기와 꽃잎(화피열편)의 길이 등을 기준으로 나눈다는데 다음 5가지 종류가 대표적인 것 같다.

-나팔수선화(N. Pseudonarcissus) 종류 : 꽃대 하나에 한 송이. 부화관 길이가 꽃잎 길이보다 길거나 같다. 우리나라 화단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수선화 종류다.

-황수선화(N. jonquilla) 종류 : 또는 노랑수선화, 존퀼라수선화. 꽃대 하나에 1~5개 송이. 꽃이 작고 향기가 강하다. 부화관이 넓은 편이고 꽃잎은 활짝 펼쳐지거나 뒤로 젖혀진다. 영화 ‘빅 피쉬’에 나오는 수선화가 이 꽃이라고 한다.

-타제타수선화(N. tazetta) 종류 : 또는 방울수선화. 꽃대 하나에 여러 송이. 부화관이 짧고 향기가 매우 좋다. 거문도 금잔옥대, 제주 수선화는 이 수선화의 아종(N. tazetta subsp. chinensis)으로 분류되고 있다.

-연지수선화(N. poeticus) 종류 : 또는 입술연지수선화, 포에티쿠스수선화. 꽃대 하나에 한 송이. 6장의 꽃잎은 순백색이고, 매우 짧은 부화관은 보통 중심이 노란색이고 테두리에 붉은 장식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수선화가 이 수선화라고 한다.

-벌보코디움(N. bulbocodium) 종류 : 꽃대 하나에 한 송이. 꽃이 대개 노랑색이고 부화관이 꽃잎보다 크다. 골든벨수선화가 대표적이다.

연지수선화(포에티쿠스수선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수선화가 이 수선화라고 한다. /박원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수선화는 나팔수선화 종류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수선화들은 씨앗을 맺지못해 구근으로 번식시켜주는데, 매년 300만개 안팎의 수선화 구근을 네덜란드에서 수입해 사용한다는 것이 관계기관의 전언이다.

서울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선화.

영화 ‘빅 피쉬’에 나오는 수선화는 황수선화 종류라고 한다. 부화관이 넓은 편이고 길이가 꽃잎 길이의 3분의2 이하다. 꽃잎은 활짝 펼쳐지거나 뒤로 젖혀진다. 남유럽과 알제리 원산으로 4월쯤 꽃이 피는데 향기가 강하고 화단용으로 많이 심는다고 한다.

제주도와 남해안 거문도에서는 야생화해서 자라는 수선화가 있다. 거문도 수선화와 제주 수선화는 타제타수선화의 아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먼저 거문도 수선화는 흰색 꽃잎에 컵 모양의 노란색 부화관(덧꽃부리)이 조화를 이룬 금잔옥대다. 금 술잔을 옥대에 받쳐놓은 모양이라는 뜻이다.

몇년 전 2월말 이 수선화를 보러 버스 타고 배 타고 거문도에 간 적이 있다. 거문도 수선화는 꽃지름이 3㎝ 정도로, 사진을 보면서 생각한 것보다 약간 작았다. 그러나 흰 꽃잎에 노란 부화관을 단 자태가 단정하면서도 기품 있어 보였다. 향기가 맑고도 신선했다.

거문도 수선화.

제주 수선화는 꽃잎이 꽃 가운데에 오글오글 모여 있는 형태다. 요즘엔 제주도에도 금잔옥대 수선화를 많이 심어 놓았다. 제주도 수선화는 요즘 한창이다. 이르면 12월부터 피는 꽃이라 지난달부터 이 수선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그래서 제주 수선화는 겨울꽃인지 봄꽃인지 헷갈리는 꽃이다.

제주 수선화. 빠르면 12월부터 피는 꽃이다.

수선화는 조선시대 후기에 문인들의 사랑을 받은 꽃이다. 제주도에는 수선화가 널려 있어서 제주도에 유배 간 추사 김정희가 ‘(귀한 수선화를) 소와 말에게 먹이거나 보리밭에 나면 원수 보듯 파낸다’고 안타까워할 정도였다.

수선화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이라고 나와 있다. 그런 수선화가 언제 어떻게 거문도, 제주도에 전해졌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다만 거문도 수선화의 경우 영국 해군이 러시아 남하를 막는다는 구실로 1885년부터 2년 가까이 거문도를 무단 점령했을 때 가져와 심은 것 아닌가 추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게 맞다면 영화 ‘빅 피쉬’ 1만송이 수선화, 거문도 금잔옥대 수선화는 둘 다 사람들이 심은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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