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번 주소로 열람하면 사라지는 세입자…정부 시스템 허점이 불러온 사기

조윤하 기자 2023. 2. 6. 09:0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빌라왕-국] ⑩ 빌라 한 채로 두 번 사기 친 수법은?


'빌라왕', '빌라의 신' 등 여러 전세 사기범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몇몇은 이미 숨졌고, 몇몇은 구속돼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들이 잡혀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법망을 피해 가는, 수사기관의 눈을 피해 가는 전세 사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변종 전세 사기'가 출몰한 겁니다.

예전엔 한 명이 수백, 수천 채를 소유했다면, 이제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수백, 수천 명이 1~2채를 나눠 갖고 있습니다. 모두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이 없는 바지 사장들입니다. 무주택자인 척하는 바지 사장을 구해서 많게는 2채까지만 명의를 넘겨주고, 이들을 관리하며 모집책들은 리베이트를 받는 겁니다. 지금까지 연루된 바지 사장만 93명, 피해 주택은 전국에 152채입니다. (변종 전세 사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빌라왕-국] 9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같은 빌라로 두 번 사기 치는 '변종 전세 사기범'


'변종 전세 사기' 바지 사장들은 전국에 빌라 152채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전세 사기에 이용된 빌라입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확인해보니, 이 중 32채는 또 다른 사기에도 쓰였습니다. 전세 사기 일당이 빌라 한 채로 사기를 두 번이나 친 겁니다


일당은 한 번 전세 사기를 벌인 깡통 빌라를 담보로 제3자에게 돈을 빌렸습니다. 하지만 바지 사장이 임대인으로 돼 있는 집에는 대부분 세입자가 직접 살고 있습니다. 세입자로부터 받은 전세금이 곧 빌라 매매대금이 되는 구조니, 빈집으로 놔둘 수 없는 거죠. 그런데 일당은 세입자가 살고 있는데도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속였습니다. '세입자가 없다'면서 빌라를 담보로 돈을 빌린 겁니다. 세대주가 없으니 1순위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말이죠.

일당은 주로 노인을 노렸습니다. 갖고 있는 현금이 많은 노인들에게 접근해서 '더 많은 이자를 줄 테니 돈을 빌려 달라'고 속였습니다. 취재진은 일당에게 돈을 빌려준 사기 피해자를 한 명 만났습니다. 서울 강북구에 살고 있는 70대 할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는 2년 전, 지인의 소개로 건너 건너 일당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빌라를 담보로 월 2%의 이자를 주겠다는 일당의 제안에 1억 2천만 원을 빌려줬습니다. 빌라에 누군가 살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합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일당이 할아버지에게 보여준 전입세대 열람 내역서에는 '세대주가 없다'고 나옵니다.
 

'구주소 열람하면 세입자 안 나와'…정부 시스템 허점 노린 일당


전입신고까지 한 세입자가 버젓이 살고 있는데, 어떻게 '세대주가 없다'고 속인 걸까요? 이들은 정부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들었습니다. 같은 집이라도 도로명 주소인 신주소와 지번 주소인 구주소로 전입세대를 열람할 때 결과가 다르다는 점을 악용했습니다. 신주소로 열람하면 전입 신고한 세입자가 나오지만, 구주소로 열람하면 세입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걸 노린 겁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의 전입세대를 확인해 봤습니다. (저도 전입신고를 하고 살고 있습니다.) 우선 주민센터 직원에게 전입세대를 열람하겠다고 하니, 직원이 '구주소와 신주소로 모두 주겠다'고 했습니다. A4용지 두 장을 받았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로>로 돼 있는 신주소 열람 내역서에는 제 이름이 나오는데, <서울 서대문구 합동> 구주소 열람 내역서에는 '세대주가 없다'고 나옵니다. 제가 멀쩡히 살고 있는데도 말이죠.

일당은 구주소, 신주소로 세대주를 열람한 뒤 돈을 빌릴 땐 '세대주가 없다'고 뜨는 구주소 열람 내역서만 보여줬습니다. 피해자가 받아본 서류도 바로 이겁니다. 두 장의 서류를 따로 주니, 한 장(도로명주소)을 감추고 한 장(지번 주소)만 사기에 활용했습니다.
 

허술한 관리가 키운 사기 범죄


지난 2011년, 정부는 도로명주소를 도입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동, 리, 지번을 활용했다면 2011년부터는 도로에 이름을, 건물에 번호를 부여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전입신고도 신주소, 즉 도로명주소로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어떤 주소를 입력하느냐에 따라 세대주가 있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겁니다. 실제로 2011년 이후 지어진 주택은 구주소로 입력하면 전입세대가 없다고 나옵니다.

**'보러가기' 버튼이 눌리지 않으면 해당 주소를 주소창에 옮겨 붙여서 보세요.
[ https://premium.sbs.co.kr/article/9gAggSMbIr ]
 

🎧 아래 주소로 접속하시면 음성으로 기사를 들을 수 있습니다.
[ https://news.sbs.co.kr/d/?id=N1007067290 ]

조윤하 기자haha@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