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정보가 넘쳐나는데 믿고 갈 만한 식당은 찾기 어렵습니다. 낯선 지역이나 여행길에선 더 그렇지요. 그 지역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물어서라도 갈 텐데요. 열심히 검색을 해보지만 좀처럼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말 신뢰할 만한 맛집을 건져보기로 했습니다. 주간경향이 각계각층의 명사를 찾아 이름을 걸고 추천해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누구나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는 ‘인생 맛집’ 공개, 지금 시작합니다.
알천비빔국수집에서 동치미국수를 먹고 있는 강원국 작가의 모습 / 강원국 작가 제공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오랫동안 병을 앓았다. 유년시절 엄마에 대한 기억은 병상에 누운 모습이 대부분이다. 엄마는 당시 전북 전주에서 장학사를 할 정도로 활동적인 분이었지만, 와병으로 그 시절이 길지 못했다. 이후 나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외할머니는 전주에서 손맛 좋기로 유명한 분이었다. 빼어난 음식 솜씨로 사람들을 불러다 음식 해먹이는 걸 즐기셨고, 사람들도 할머니 음식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마을에서 내로라하는 병원장, 변호사, 교장선생님 댁에 불려 다니며 폐백음식이며 이바지음식을 해주고 돈과 음식을 받아오셨다. 그 시절엔 그런 음식 장만이 집안 대사여서 할머니는 후한 대접을 받곤 했다.
할머니가 환갑을 맞았을 때 동네 사람과 일가친척들이 그랬다. “저 양반이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이 요리 솜씨 아까워서 어이 할꼬. 글로 남기든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죽을 날이 낼모레인데, 무신 그런 일을…” 하며 겸연쩍어했다. 하지만 늦은 게 아니었다. 그때라도 그렇게 해야 했다.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은 다 맛났지만, 그중에서도 심심한 동치미 국물 맛을 잊을 수가 없다. 할머니는 사시사철 갓 담근 김치와 동치미를 상에 올렸다. 뜨거운 여름날 아이스박스에 고이고이 쟁여뒀다 꺼내주는 동치미의 아삭한 맛은 더위를 저만치 물러나게 했고, 한겨울 살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의 곰삭은 맛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곤 했다.
기나긴 겨울밤 입이 심심했던 삼 남매는 할머니에게 먹을 것 좀 없냐고 보채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동치미 국물에 후다닥 말아 내놓은 국수는 우리의 입을 막기에 충분했다. 특히 겨울철 장작불에 구운 고구마에 곁들이는 동치미 국물은 답답한 속을 뻥 뚫어주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내가 결혼하고 할머니의 동치미 맛을 본 장모님은 ‘어떻게 이런 맛을 낼 수 있는지… 담그는 법을 꼭 좀 알려주셨으면 좋겠다’고 했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그 비법을 못 배운 걸 두고두고 안타까워하셨다.
나는 식탐이 많은 편이 아니다. 외식을 선호하지도 않는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게 마뜩잖다. 언제부턴가 TV에 먹방이나 맛집 탐방 같은 프로그램이 많아진 것도 달갑지 않다. 먹는 걸 강요하는 것 같아서다. 그러니 단골 맛집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이런 내가 추천 제안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있다. 경기도 포천 소흘읍 고모리에 있는 ‘알천비빔국수집’이다. 어느 날, 국립수목원을 가다가 아내가 폭풍 검색해 찾았다. ‘알천’은 음식 가운데 가장 맛있는 음식이란 뜻의 순우리말이다.
아내는 포털사이트 지도에 맛집 1000개를 저장해 놓은 미식가인 데다, 국수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애호가다. 나는 밀가루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거기다 맛집으로 소문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식당은 질색이다. 직장 생활할 때도 맛집을 줄줄 꿰고 있는 사람이 주위 사람들을 몰고 다니고 상사에게 인정도 받았지만, 정작 나는 밥 먹는 것까지 줄 서야 하는가 싶어 거부감이 컸다.
다행히 그날은 평일이고, 점심시간을 한참 넘긴 때문인지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알천비빔국수집’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메뉴는 단출했다. 비빔국수와 열무국수, 잔치국수, 동치미국수에 만두까지. 으레 그렇듯 아내는 비빔국수 곱빼기를 시켰다. 국수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나마 담백한 동치미국수를 택했다.
상에 차려진 동치미국수는 뽀얀 육수에 무와 배추 몇 점, 삶은 달걀 반쪽이 전부였다. 흔한 지단 몇 조각도 보이지 않았다. 소박하다 못해 볼품없어 보였다. 그저 아내 기분에 맞춰 한 끼 때운다는 심정으로 한 젓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달착지근하면서도 시금시금 톡 쏘는 맛, 할머니의 동치미 국물 맛 그대로였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탱탱한 면발이 어우러진 그 맛은 어릴 적 추억과 함께 오래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손맛을 고스란히 소환해냈다.
그 집을 처음 찾은 게 3년 전의 일이니,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십수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할머니 손맛이라니. 동치미국수뿐 아니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비빔국수 맛이 최고라며 흡족해했다. 그후 우리는 그쪽에 볼일이 없는데도 몇 번이나 더 그곳을 찾았다. 가장 먼저 장모님을 모시고 갔다. 아니나 다를까 장모님은 한술 뜨더니 엄지손가락을 척 드셨다.
화살표를 따라가면 시원한 동치미국수를 맛볼 수 있다. / 강원국 작가 제공
그다음은 형이었다. 형의 반응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바로 이 맛이야!’ 하며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었다. 그 뒤로 투덜대는 아들을 데리고 두 번은 더 갔다. 처음으로 나에게 진정한 의미의 단골 맛집이 생긴 것이다. 단골이 횟수만을 의미한다면 네댓 번은 적을지 모르겠지만,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나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원고 청탁을 받고 설 다음 날 그곳을 다시 찾았다. 거의 1년 만에 찾은 식당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일단 같은 소흘읍이지만 송우리에서 고모리로 자리를 옮겼다. 가게도 평범한 1층 상가에서 넓은 주차장을 갖춘 가정집 분위기의 단독건물로 모습이 바뀌었다. 알천비빔국수의 동치미국수 맛은 처음 그대로였다. 윤영수 사장님(48)의 설명대로라면 알천동치미국수의 원조 손맛은 전북 정읍 출신인 장모님에게서 시작됐다고 하니, 내가 이 집 동치미국수에서 동향인 할머니 손맛을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격도 착해 동치미국수와 비빔국수가 7000원이니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몇 년 전 한 방송에 소개되며 사람이 부쩍 는 것은 다소 불편했지만, 앞으로도 할머니가, 유년시절이 그리울 때마다 아껴가며 이 집을 찾을 것이다. 할머니를 대신해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동치미국수를 팔았으면 한다.
할머니는 그때라도 음식 만드는 법을 영상이나 글로 남기셨어야 했다. 할머니는 다 사셨다고 했지만, 30여년을 더 살다가 92세에 돌아가셨다.
필자는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인 강원국 작가가 1편을 맡아주었습니다. 그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연설 담당 행정관 및 비서관을 역임했습니다. 글쓰기 관련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낸 저자로, 특급강사로 맹활약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