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수의 삼라만상 100] 26년 전 봉천동 '심포니아' 고전음악감상실

박명기 기자 2023. 2. 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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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서 클래식 보급 자부심... 예술의 전당의 베르디 ‘레퀴엠’ 추억 방울방울

 

1997년 서울 관악구 봉천동 현대시장 부근에 '심포니아'라는 클래식 고전음악 감상실이 있었다. 교직에서 은퇴한 주인장은 건물주로 자금을 털어 고전음악 감상실을 만들었다. 

나는 당시 클래식 동호회 멤버들 사이에 끼어 한 달에 한두 번 방문해서 좋아하는 레퍼토리를 골라 음악을 청음했다.

베토벤 3번, 6번, 9번, 쇼팽 2번, 말러 2번, 쇼스타코비치 11번, 베버의 '마탄의 사수' 등 비교적 대편성이나 오페라곡 위주로 즐겨 들었다.

카페 내 설치된 모든 오디오의 기억은 안 나지만 프리앰프 마크 26과 스피커는 클립쉬를 썼다. 공간에 비해 클립쉬가 조금 아쉬웠지만 기기 매칭과 비교하면 주인장의 고전음악에 대한 사랑은 정말 대단했다.

그렇게 60대인 그는 농담이라도 "봉천동 시장통 서민들에게 클래식 고전음악을 보급하는데 앞장을 선다"며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런 변두리 동네에 고전음악감상실이 성공할까? 하며 은근 걱정이 되었다.  

내가 살던 서울 방배동 전철역 근처 자주 가던 시설 좋은 '바흐'라는 고전음악감상실과 자주 비교를 하곤했다.

더욱이 일반 카페와는 달리 손님이 거의 없어 고전을 면치 못했던 상황이라 더더욱 이런 지역은 영업이 어렵다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모임이나 술자리에서 음악 이야기와 공연 이야기 또는 감상실에서 아마추어 첼리스트나 바이얼리스트를 초청해서 바흐나 파가니니의 소품곡을 듣곤 했다. 하지만 내가 중국으로 떠나며 그 이후 몇 년을 그곳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지워내고 말았다. 

그 이후 10년 만에 다시 찾으니 약국이 있는 지하건물에서 울려대던 클래식 음악의 향염(香鹽)은 사라지고, 교회로 바뀌었다가 보습학원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피아노 학원이 되었다.  

전문 음악감상실에서 미래의 연주자들을 키우는 그나마 어설픈 모차르트라도 흘러나오니,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는 듯 왠지 주인장의 서글픈 흔적이 읽혀진다.

주인장은 그 이후 월간 클래식의 대표 윤석화씨의 도움으로 장영주까지 동원해서 공연도 하며 감상실을 살리려 애를 썼으나 버티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았다고 한다.

몇 년을 운영하다가 파산한 후 설악산 근처로 거처를 옮겼다고 들었는데, 암자로 들어갔다는 소문도 있고 누구 말대로 자연인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기억은 KBS교향악단에 회원권으로 예술의 전당에서 정명훈이 지휘한 KBS 교향악단 베르디의 '레퀴엠'을 관람 후 뒤풀이가 마지막이었다.

그는 서글서글한 인상에 안경을 쓴 교수 출신답게 학식도 풍부했다. 그가 고전 작곡가의 곡을 해설할 때면 풍부한 지식으로 즐거움을 발산하는 매력이 넘쳤다. 

지금 살아 계시다면 아마 80대가 넘은 중반의 노인일 것이다. 당시 음악, 오디오 이야기와 공연장을 돌던 친구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또 다시 시절만큼 가버린 내 미래와 교차해서 삶을 재조명해 보았다. 

살아가며 생각대로 되는 삶과 생각대로 되지 않는 삶...우리네 삶과 미래는 운명이라는 것도 있고 때로는 타인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기 싫은 길을 누군가에게 끌려가다가 행운의 동전을 줍기도 하고, 스스로 판 우물에 빠져 허우적거린 경험이 있을것이다. 

26년 전 그 시간이 주는 삶의 바람은 400년 전 바흐의 연주 소리나 1997년 사라진 심포니아에서 듣던 80년 전 파블로 카잘스가 연주하는 소리나 다를 바 없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 매달려 시름시름 앓다가 세월 속에 나오면 그 때 있던 이유를 나증에 알게된다.

아무튼 시간 속에 장소를 보니 서막과 장막에 당시 눈물을 흘리며 들었던 한 편의 레퀴엠을 본 느낌이다.

글쓴이=주홍수 애니메이션 감독-만화가 sisi9000@naver.com

주홍수 감독은?

30년 넘게 애니메이터로 만화가로 활동을 해왔다. 현재 자신의 원작 OTT 애니메이션 '알래스카'를 영화사 '수작'과 공동으로 제작 중이며 여러 작품을 기획 중이다. 그림과 글과 엮어낸 산문집 '토닥토닥 쓰담쓰담'을 2022년 1월 출간했다.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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