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간 나를 따라온 댕댕이...추운 산에서 잘 지낼까

서흥교 서울시 마포구 중동 2023. 2. 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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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산행기]
산행에 함께한 노란 개

오늘은 진해에서 산을 타고 창원중앙역까지 가서 서울행 KTX를 타야 한다. 지도를 펼쳐보니 창원으로 연결되는 산은 불모산이다. 안민고개로 올라가면 되지만, 지도상으로 짧은 코스인 웅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자은동에서 출발해 편백 숲이 있는 진해 드림로드에서 청룡사로 향했다. 청룡사에 가니 보더콜리 개 2마리가 있었다. 사람을 무척 좋아했다. 스님이 기르는 개 같았다. 와중에 노란 개 한마리가 주변을 맴도는 게 보였다. 절에서 기르는 개인지는 모르겠지만 보더콜리와 친해 보였다.

등산로를 찾지 못해 스님에게 물어보니 화장실 옆 조그만 길을 알려주신다. 네이버 지도에 표시된 길이라고 하기엔 좀 비좁다. 아마 인적이 드물기 때문이 아닐까. 화장실 옆길로 가려는 순간, 보더콜리 한 마리와 노란 개가 앞장서고 있었다. 스님이 개를 부르자 보더콜리는 망설이다 돌아갔고, 노란 개는 등산로 쪽으로 빠져나갔다.

노란 개를 따라 걷자 빽빽한 편백숲이 나왔다. 낙엽으로 지워진 길을 녀석이 계속 안내해 줬다. 개를 따라 능선까지 올라갔다. 능선에서 잠시 쉬며 삼각김밥과 물을 나눠 먹었다. 그러고선 멍멍이는 오른쪽 시루봉 방향으로 갔다. 개는 등산객과 동행한 경험이 많아 보였다. 대부분의 등산객은 시루봉을 목적지로 산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왼쪽 불모산 방향으로 이동했다. 안녕 고마웠어!

웅산 방향으로 가는데 떠난 개가 돌아왔다. 그러고선 나와 동행한다. 앞서가다 내가 오고 있는지 뒤돌아 확인하고, 안 보이면 다른 길로 나를 찾아온다. 이걸 반복한다.

웅산에 이르러 작은 출렁다리가 나타났다. 개가 보이지 않아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거니 생각했는데 건너편 봉우리에서 다시 만났다.

끝까지 함께 간다

불모산 정상에 이르러 잠시 숨을 돌린다. 노란 개는 내가 준 김밥을 먹지 않는다. 뭘 줄지 고민하다 물을 주니 잘 마신다. 처음엔 손에 따라 줬지만 나중엔 물병으로 마시게 했다. 목에 목줄이 있는 걸 보니 누군가 키우던 개라는 생각이 든다. 진해와 창원의 경계를 넘어왔기에 걱정이 된다. 돌아가야 할 텐데. 너무 멀리 왔어 너.

그렇게 용지봉, 신정봉을 지나 대암산까지 왔다. 4시간 정도 걸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은 없고 추웠다. 대암산엔 등산객이 몇 분 있었다. 개를 보고선 내게 어떻게 올라온 건지, 내가 주인인지 물었다. 나는 "주인이 아니고, 개가 말없이 나를 따라왔다"고 답했다. 부부로 보이는 등산객들은 개를 데리고 내려가려 했다. 하지만, 하산하면서도 개는 계속 뒤를 돌아봤고, 나를 기다린다고 생각한 부부는 결국 내게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개와 다시 걸었다. 아주머니는 떠나기 전 우리에게 물을 채워 주셨다.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너무 멀리 왔다. 개가 돌아갈 수 있을까. 하산할 때까지 따라오면 중앙역에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시간의 산행으로 조금씩 치쳐가는 내게 개는 큰 힘이 되었다. 날씨 때문인지 등산로에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갈림길에서 다른 길로 앞서간 개는 내가 시야에 안 보이자 나를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다시 앞질러 간다. 후각으로 나를 찾아오는 것이 아닐지 생각했다. 개의 본능적인 감각이지 않을까 싶은데, 거기다 이렇게 개가 등산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울 따름이다. 해발 600~700m 정도의 산을 6시간이나 등산하는 것은 쉽지 않을 텐데.

비음산 정상에 다다르니 해가 지고 있어 둘레길로 하산한다. 어두워지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재촉한다. 하산하던 개는 발걸음을 멈춰 자꾸만 도심을 바라본다. 처음엔 왜 그런지 몰랐다. 하산지점에 도착할 즈음 개가 멈췄다. 내가 앞질러 가도 따라오지 않는다. 멍하니 지나쳐간 나를 바라만 봤다. 그렇게 우리는 작별 인사를 했다.

도시가 싫은 거구나. 물이라도 줘야 했는데, 물도 다 떨어졌다. 밤엔 어디서 자는 걸까. 물을 마실 계곡은 있을까. 다시 돌아갈 수는 있을까. 걱정이었다.

7시간의 등산을 함께 해준 개는 대단했다. 녀석은 짖지도 않고, 가끔 낙엽 사이로 냄새를 맡곤 뭔가를 찾을 뿐이었다. 개는 멋진 동반자였다. 힘들고 배고팠을 텐데, 고맙고 미안했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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