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은 그냥 쓸래요”…‘3년 습관’을 하루 아침에 벗어버리긴 힘들었던 마스크 의무해제 첫날 표정
“마스크를 쓰는 게 습관이 돼버려서요.”
30일 오전 대전역에서 대학생 장소연씨(22)는 서울행 기차를 기다리며 이같이 말했다. 장씨는 “오늘부터 마스크를 자율적으로 착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주변) 눈치가 보이기도 해서 집을 나설 때부터 마스크를 착용했다”고 말했다.
광주도 실내 마스크 의무 착용 지침이 있을 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광주 북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최모씨(40)는 “코로나가 종식된 것은 아닌 만큼 조금 더 지켜보자는 생각에 직원들에게 당분간은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하자고 했다”며 “손님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가게 입장에서는 영업정지 등 피해가 크기 때문에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권고로 바뀐 이날 전국 곳곳에서는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고 생활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일부 상점에는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거나 바뀐 지침이 헷갈리니 한동안은 마스크를 쓰고 다니겠다는 과도기적인 반응도 있었다.
경남 창원 성산구 한 약국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환자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약사 A씨는 “환자들이 거의 마스크를 쓰고 약국에 온다”며 “환자들도 약국 방문때는 쓰야하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준종합병원을 찾는 외래환자 50대 B씨는 “마스크 의무 착용 여부를 잘 모르고 있다”며 “아직까지 마스크를 쓰는게 서로에게 좋으니까 착용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도시철도 1·2호선이 교차하는 반월당역 지하상가에는 약국 10여곳이 밀집해 있어 이른바 ‘약국골목’으로 불리는 구역도 있다. 다른 상점과 달리 약국에서는 마스크 착용 의무가 유지되고 있었지만, 지침을 지키지 않아 실랑이를 벌이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약국골목을 포함한 반월당역 지하상가는 주중 대구에서 가장 많은 유동인구가 몰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10년째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지현숙씨(52)는 “현재까지 마스크를 안 끼고 매장을 찾은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동성로 대부분의 상점 입구에는 전날까지 쉽게 볼 수 있었던 마스크 착용 안내문이 대부분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일부 상점에는 여전히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는 대신 ‘권유’하는 내용으로 순화된 안내문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스크 착용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등의 문구다.
대중교통 이용자들은 지침이 복잡하거나 번거롭다는 등의 이유로 기존처럼 마스크를 쓰겠다는 의견도 냈다.
대전복합터미널에서 만난 김모씨(60대)는 “아직까지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며 “맞이방에선 마스크를 쓰지 않다가 다시 버스를 탈 때엔 마스크를 써야되는 게 번거롭기도 해 아예 마스크를 착용한 채 대기했다”고 했다.
대구 도시철도 반월당역 승강장에서 만난 김성훈씨(36)는 “역 내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결국 지하철(전동차)을 탈 때는 마스크를 써야 하니 번거로워서 그냥 쓰고 다닌다”고 했다. 대구교통공사 관계자는 “대부분 역사 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 별다른 안내는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교들 사정은 비슷했다.
이날 오전 11시쯤 찾은 대전문정중학교 한 교실에선 학생 절반 가량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수업을 듣고 있었다. 마스크를 쓴 채 수업을 듣던 하은우군은 “안경에 습기가 차는 등 마스크 착용으로 인한 불편함이 많았다”면서도 “교내에서의 마스크 착용이 자율화됐지만 아직까지 벗기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하군은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된다면, 그 때 마스크를 벗을 생각”이라며 “친구들과 함께 마스크를 벗은 채 수업을 듣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전교육청 한 관계자는 “실내 마스크 착용 권고가 시행됨에 따라 지역학교와 학원에 실내 마스크 자율적 착용을 권고했다”면서도 “코로나19 의심증상이 있거나 고위험군인 경우와 최근 확진자와 접촉한 학생들에 대해선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실에선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아니지만 학교 통학, 행사·체험활동 등과 관련된 단체버스와 학원에서 운영하는 어린이통학버스 등의 차량을 이용하는 탑승자는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한다.
일부 대전지역 어린이집에선 학부모들의 의견을 반영해 마스크 착용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대전 동구의 한 어린이집 교사 정모씨(31)는 “학부모분들이 마스크 없이 아이를 돌봐달라고 요청할 경우에만 마스크를 벗기로 했다”며 “다만 감기 또는 콧물이 나는 아이들이 있을 때엔 마스크를 쓰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이 어린이집은 학부모들에게 ‘교실에서 마스크 착용을 원하시는 학부모님께선 담임 교사에게 개별 연락 부탁드립니다’라는 공지를 보내기도 했다.
대전 중구 한 공무원학원 직원 이모씨(32)는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을 비롯해 학원을 찾는 학생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썼다”며 “학원 측에서 ‘마스크 착용이 의무에서 권고로 바뀌었다’고 공지를 했음에도 아직까진 마스크를 착용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경남지역 학생들도 정부의 자율 권고에도 대부분 교실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수업을 받았다. 이날 경남 창원시 성산구 한 초등학교 1학년 담임 교사는 수업 시작 전 학생들에게 “아픈 학생들은 꼭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안내했다.
그러나 대다수 학생은 마스크를 코끝까지 올린 상태였다. 학생 18명 중 3~4명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마스크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한 학생은 “교실에서 처음 마스크를 쓰지 않으니깐 편하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는 대신 책상 간격은 한 칸씩 띄웠다.
경남교육청 관계자는 “마스크를 안 쓰도 되지만, 마스크 착용 여부는 학교장 재량”이라며 “일단 오늘은 평소처럼 보육교사들도 마스크를 다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소에 따라 마스크 의무 착용해야할 때도 있어서 마스크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며 “부모님들께는 가방에 마스크를 넣어달라고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3년간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 돼 버린 시민들은 실내에서 이를 벗어도 된다는 사실을 반기면서도 아직은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전남대 예비 신입생 고모씨(20)는 “마스크 때문에 친구들 얼굴도 제대로 못보는 등 우울한 대학 생활을 했다는 선배들의 이야기에 내심 걱정이 많았는데, 이젠 친구도 많이 사귀고 재미있게 대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한 가전제품 콜센터에서 5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모씨(36)는 “그동안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을 해야돼 답답하고 그만큼 피로도 컸는데, 이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하고 일의 능률도 오를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과거 회사에서 한꺼번에 많은 확진자가 나와 업무가 중단되기도 했고, 아직까지 별다른 공지가 없는 많큼 당분간은 마스크를 계속 쓰고 다녀야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구 한 백화점 관계자는 “대구는 코로나19 1차 대유행을 겪은 지역이기도 해서인지 점원이나 손님들도 마스크를 벗는 게 더욱 조심스러운 것 같다”면서 “하지만 마스크 착용에 대한 피로감이 큰 만큼 날씨가 풀리게 되면 (마스크를) 벗고 일상을 되찾는 사람이 많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김정훈 기자 jhkim@kyunghyang.com, 강정의 기자 justice@kyunghyang.com,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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