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오래 전 작고했습니다”···동일본대지진 가설주택지 10년만에 가보니
“이시이 레이코(石井禮子)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시이 할머니는 그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었다. “꼭 다시 오겠다”고 한 약속도 지킬 수 없었다.
지난 18일 오전 일본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台)시 와카바야시(若林)구 시치고(七鄕)초등학교를 찾아갔다가, 10년 전 이시이 할머니와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시이 할머니는 2011년 3월 16일 시치고초등학교에 마련된 피난소에서 처음 만났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뒤 현지 취재를 위해 이튿날 후쿠시마(福島)로 들어갔다가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센다이로 이동해 2주일 동안 취재 활동을 하던 때였다.
피난소는 동일본대지진 이후 발생한 쓰나미로 마을의 모든 것이 쓸려내려간 아라하마(荒浜) 지역 주민 등을 위해 만들어졌다. 쓰나미는 약 800가구, 2200여명의 주민이 살던 아라하마 지역을 삼켜버렸다. 당시 이 지역 주민 중 190명이 희생당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주민들은 인근 피난소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잃었어요. 집과 집 안에 있던 모든 것을 쓰나미가 삼켜버렸거든요. 이웃집 주민이 차에 태워준 덕분에 쓰나미가 닥치기 5분 전에 이 보브(반려견의 이름)와 함께 극적으로 탈출해서 목숨을 건졌어요. 매일 함께 어울리던 친구·친지와의 연락이 닿지 않아서 피난소 게시판을 돌아보고 있었어요.”
당시 여든 두살이었던 이시히 할머니는 쓰나미가 밀어닥치던 상황과 피난소생활 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준 뒤 현장을 안내해줬다.
“매일 저녁 보브를 껴안고 잠자리에 들지만, 지진과 쓰나미의 충격과 꿈에 나타나는 친구들의 모습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던 이시이 할머니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기자는 당시 “꼭 다시 찾아오겠으니, 건강하게 지내시라”는 말을 남기고 다른 취재처로 떠났다.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은 약 2년 후인 2013년 2월 21일이었다. 기자는 당시 와카바야시구에 세워진 가설주택을 찾았다. 동일본대지진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 172가구(353명)가 모여 살고 있던 곳이었다. 이시이 할머니도 그 가설주택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시이 할머니는 기자를 반갑게 맞아 30㎡ 크기의 가설주택 안으로 안내했다. 벽에 걸려있는 달력의 ‘2월 21일’에는 동그라미와 함께 ‘기자 2시’라는 메모가 있었다. 이시이 할머니는 당시 “한국에서 온다는 연락을 받고 손꼽아 기다렸다”고 했다. 가설주택에서의 외로운 삶이 느껴졌다.
이시이 할머니는 “대지진 이후 피난소 생활을 하던 중 몸 상태가 악화돼 잠시 도쿄(東京)의 아들 집으로 갔지만 복잡한 대도시 생활을 이어갈 수 없어 바로 센다이로 돌아왔다”면서 “가설주택에 사는 비슷한 처지의 이웃들과 어울리면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여러가지 지병을 갖고 있다고 했다.
가설주택 생활의 이모저모에 대한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기자에게 이시이 할머니는 헝겊 등으로 만든 수제 장식품을 선물로 건네면서 “꼭 또와서 취재해 달라”는 했고 이를 약속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시점에 뒤늦게 찾아간 그곳에는 가설주택도, 이시이 할머니도 없었다. 가설주택은 오래전 철거됐고, 거기서 살던 사람들은 저마다 주거를 마련해 다른 곳으로 떠난 상태였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살던 가설주택 부지에는 아라이 초등학교가 새로 문을 연 상태였다. 지난 18일 오전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 와카바야시구 현장을 방문했을 때는 수업 중이었다.
할머니의 소식은 초등학교로 바뀐 가설주택 부지 인근에서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기자가 그를 두 번째 찾아갔던 2013년 세상과 작별했다고 현지인이 전했다.
“이시이 할머니, 죄송합니다. 하늘 나라에서 행복하게 사세요.”
12년 전 처음 만났던 날은 눈이 내렸지만 이날은 날씨가 쾌청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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