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부잡]아파트를 '선착순'으로 분양한다고요?
동·호 지정 가능…비선호 물량 남았을 가능성
아파트 '줍줍'이라고 하면 어떤 제도를 떠올리시나요? 흔히 1·2순위 청약에 비해 청약 조건이 느슨한 '무순위청약'을 줍줍이라고 부릅니다. 청약 가점, 주택 소유 여부(2월중 개정)와 상관없이 신청할 수 있으니 원하기만 하면 줍고 또 주울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이건 청약 열기가 뜨거웠던 2021년까지의 얘기고, 이젠 줍줍 하면 '선착순 분양'을 떠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청약 경쟁률이 1대 1 밑으로 떨어지면 공급자 마음대로 분양할 수 있는데, 보통 선착순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분양의 최종 단계로, 더 이상은 물러날 곳이 없습니다.
무순위청약 vs 선착순 분양
아파트의 일반분양 방식은 크게 일반공급, 무순위청약, 선착순 분양의 3단계로 나뉩니다. 뒤의 단계로 갈수록 청약 조건이 완화됩니다. 부동산시장에서는 보통 무순위청약 이후를 '줍줍(줍고 또 줍는다)'이라고 부릅니다.
1·2순위 당첨자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부적격, 계약 취소 등의 사유로 미계약분이 발생했을 때 줍줍이 시작됩니다. 줍줍에는 '무순위청약'과 '선착순 분양'이 있는데, 둘의 차이점은 청약 경쟁률입니다.
1·2순위 청약 경쟁률이 1대 1을 넘었다면 '무순위청약'을 진행합니다. 청약통장은 필요 없지만, '무주택자·거주지역' 제한은 그대롭니다. 공급자가 청약홈이나 분양 홈페이지에 모집공고를 게시하고, 수요자는 안내된 청약기간 동안 신청합니다. 경쟁이 발생하면 추첨제를 적용합니다.
선착순 분양은 1·2순위 청약 혹은 무순위청약에서 1대 1 미만의 경쟁률, 즉 미달이 발생했을 때 진행합니다. 청약기간이 따로 없고, 선착순 안에만 들면 누구나 계약할 수 있습니다. 무순위청약 조건에서 무주택, 거주지 제한까지 없어집니다.
다만 정부는 다음달 중 무순위청약 때도 무주택요건과 거주지 제한을 폐지하도록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고 있습니다. 1·3대책의 최고 수혜지로 꼽힌 강동구 '올림픽파크 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이 또다시 수혜를 입을 전망입니다.
이 단지는 3월 초 무순위청약을 진행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관련 규정이 개정된 이후라 전국에서, 주택 소유 여부와 상관없이 청약할 수 있을 전망입니다.
지난 1월 17일 1·2순위 당첨자들이 계약을 마쳤고, 남은 물량에 대해 예비 당첨자들의 계약 의사를 묻는 중입니다. 17일 기준 계약률은 60%대로 알려졌습니다. 1·2순위 청약 경쟁률이 1대 1을 넘은만큼, 미계약분이 발생하면 무순위청약을 진행합니다.
이렇게 되면 무순위청약과 선착순 분양의 차이점은 청약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점과 동·호수 지정 가능 여부만 남습니다. 선착순 분양에서 수요자가 직접 동·호수를 지정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장점이지만, 분양의 '최종 단계'인 만큼 선호도가 높은 물량이 남아있을 확률은 아무래도 낮겠죠.
특히 정비사업장의 경우 조합원 분양 때 고층·남향, 혹은 조망이 좋은 물량이 대부분 소진됩니다. 일반분양에서도 동·호수 추첨 결과에 따라 저층 등에 배정된 당첨자가 계약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착순 분양 등장한 이유
청약 수요가 풍부했던 과거엔 선착순 분양까지 넘어가는 사례가 많지 않았습니다. 1순위 청약에서 마감하는 게 보통이었고, 미계약분이 발생해도 1~2가구에 그쳐 무순위청약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곤 했습니다. 그래서 '줍줍'이라는 용어도 생겼고요.
매수심리가 급격히 침체한 지금은 다릅니다. 1순위 청약에서 미달이 발생한 단지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직방에 따르면 작년 12월 전국 1순위 청약 미달률은 53.9%로 전년 동월(28.2%)에 비해 크게 늘었습니다.
지난 26일 서울 성북구 '장위자이 레디언트'가 선착순 분양을 시작했습니다. 2번째 무순위청약에서 미달이 발생해 선착순 분양으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신청금 300만원을 입금하면 입금 순서대로 동·호수를 지정할 수 있습니다.
이에 앞서 강동구 '더샵 파크 솔레이유'도 지난 11일부터 선착순 분양을 시작했고, 중랑구 '리버센 SK뷰 롯데캐슬', 강북구 '한화 포레나 미아'·'칸타빌 수유 팰리스' 등도 선착순 계약을 진행 중입니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서울에서 자체 분양, 선착순 분양이 나온 건 근 4년 만인 것 같다"며 "그간 미계약 물량이 있어도 무순위청약에서 소진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매수심리가 그만큼 위축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선착순 분양을 진행하는 단지는 더 늘 것으로 보입니다. 기존 아파트들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신축 아파트의 가격 경쟁력은 점점 더 악화하는 상황입니다.
일례로 선착순 분양을 진행 중인 장위자이 레디언트 전용 84㎡ 분양가는 최고 11억9830만원입니다. 그런데 2019년에 입주한 인근 래미안포레카운티 전용 84㎡는 지난 16일 7억원(25층)에 거래됐습니다. 가격에 민감한 시장의 호응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무순위청약 중인 단지들도 선착순 분양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포구 '마포 더 클래시'는 30일 1차 무순위청약을 진행하는데, 앞선 1·2순위 청약에서 계약률이 49%에 그친 상황입니다. 이번 청약에서 경쟁률이 1대 1 미만이면 선착순 분양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박지민 대표는 "현재로선 무순위청약에 거주지 조건이 있어 수요가 몰리기 어렵고, 성북·강북·노원·은평 등에선 선착순 분양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흔히 말하는 로얄층이나 조망이 좋은 가구는 이미 앞 단계에서 소진됐을 거라 선착순 분양에도 재고 소진이 빠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하은 (lee@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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