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형 리얼돌에 성년, 미성년이 있다고?

이경은 기자 2023. 1. 3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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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형 리얼돌 수입은 허용됐지만 미성년 형상을 한 리얼돌은 한국에 들어올 수 없다. 성년과 미성년 형상을 어떻게 판단할지,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혼란이 가중된다.

리얼돌 수입업체 창고에 보관돼 있던 리얼돌들. 외관이 사람과 매우 흡사하다.
지난해 12월 전신형 리얼돌 수입이 허용됐다. 신체 일부인 반신형만 가능했던 기존 리얼돌 수입품의 범위를 넓힌 것이다. 그런데 전신형이라 해도 미성년자를 묘사한 리얼돌은 여전히 수입이 금지된다. 과연 인형 연령대는 어떻게 구분할까. 그 기준이 모호해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를 비롯해 시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관세청은 2022년 12월 26일 '리얼돌 수입통관 지침’을 개정해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2019년부터 논란을 불러일으킨 전신형 리얼돌 수입을 허가한 첫 지침이다. 대신 여러 조건이 붙었다. 미성년(길이나 무게, 얼굴, 음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을 묘사한 리얼돌에 대한 수입은 계속 금지한다는 게 대표적이다.

형체 없는 기준… 수입업자·소비자 "우리도 답답"

한 가지 이상한 부분이 있다. 규정에 미성년을 묘사했다는 명확한 기준이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이다. 좀 더 분명한 기준이 무엇인지 관세청에 문의하자 담당자는 "관세청이 승소한 2건의 법원 판결 내용을 참고해 16세 미만 여성 신체 외관과 유사한지 종합적으로 고려한 후 판단할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이는 "관세청 통관국 주도로 관계 부처(국무조정실·여성가족부·법무부) 의견을 수렴한 결과"라고 한다. 소송을 거쳐 모인 판례가 미성년 기준의 기능을 대신하는 셈이다.

리얼돌 수입업체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인형을 두고 나이를 짐작하는 과정이 다소 자의적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문제 제기를 하려면 행정소송을 진행해야 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모된다. 리얼돌 수입업체를 운영하는 이상진 부르르닷컴 대표는 "관세청에서 (미성년 리얼돌 기준에 대한) 별도의 공지나 지침을 받은 바가 전혀 없다"며 "자체적으로 판례를 찾아보고는 있지만 그게 명확한 기준이 될지, 미성년 여부를 누가 어떻게 판단할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겉으로 유사하게 보이는 리얼돌에 대한 법적 판단이 갈리기도 한다. 2019년 9월 전신형 리얼돌을 수입한 한 수입업자는 통관이 보류되자 인천세관을 상대로 수입통관보류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해당 제품의 길이는 150㎝로 파란색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채 손발엔 빨간 매니큐어, 짙은 화장을 한 모습이다. 이에 대법원은 "얼굴이 앳된 인상이고 음모가 없다"며 미성년 형상을 띈다는 이유로 관세청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비슷해 보이는 다른 리얼돌을 두고 부르르닷컴이 제기한 소송에서는 관세청이 패소해 수입이 허용됐다. 부르르닷컴이 승소해 수입이 허용된 리얼돌 전신은 156㎝이며 색깔은 다르지만 비키니 수영복 차림의 의상, 얼굴의 인상, 머리 길이 모두 비슷하다. 부르르닷컴의 리얼돌에도 음모는 묘사돼 있지 않다. 부르르닷컴 관계자는 "리얼돌의 음모는 유료 옵션인데 사용 중 탈락하는 등 관리가 어려워 추가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아동 형상의 리얼돌을 규제하는 국가는 우리나라 외에도 많다.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노르웨이 등이다. 하지만 해당 국가들은 비교적 명확한 외관 기준이 있다. 노르웨이는 '키 125cm 이하’, 캐나다는 '사춘기(2차 성징) 이전 아동의 모습’ 리얼돌을 금지하는 식이다.

이에 대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지낸 차인순 국회의정연수원 겸임교수는 "관세청이 (기준 없이) 독자적으로 판단하면 리얼돌에 따른 판결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면서 "미성년 형상의 리얼돌 수입·제작·배포를 실질적으로 금지하기 위해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소관 부처인 여성가족부와 관세청이 협력해 기준을 연구·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황이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판례가 모여 어느 정도 기준의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 뿐 아니라 미성년 아동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그 시간 동안 불안에 떨게 된다"고 강조했다.

미성년 리얼돌 만들어도 처벌 여부 모호

2019년 9월 대법원의 ‘리얼돌 수입 허용’ 판결에 항의해 열린 시위.
이번 수입 허용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전신형 리얼돌은 급격히 늘어날 전망이다. 그럼에도 리얼돌 노출 기준 설정은 고사하고 미성년 형상의 전신 리얼돌을 국내 제작·유통할 경우 이를 처벌할 방법도 없는 실정이다. 영국도 '아동 리얼돌 구매·유통 방지 가이드라인’을 정해 이를 어기고 유통한 자는 최대 12개월 징역형을 받게 했다. 2021년 2월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동 형태 성기구 제작·판매자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아청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현재 해당 상임위에서 계류 중이다. 송기헌 의원실 관계자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아직 논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는 "아동·청소년은 보호 대상이지 성적 욕구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미성년 형상 리얼돌 유통·소비자에 대한 형사처벌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성인 리얼돌은 사적 영역에 대한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지만 미성년 형상 리얼돌은 그렇지 않다"며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에 대해선 소유하는 것만으로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지는 것처럼 강력한 형사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은 미성년 리얼돌 수입·운송을 금지하는 '크리퍼(CREEPER)법’, 노르웨이는 수입·유통·소유·양도를 모두 금지하는 '형법 제311조’를 통해 미성년 리얼돌 관련 규제를 어길 시 적극적으로 처벌하고 있다.

#리얼돌 #미성년자 #아청법 #여성동아

사진 뉴스1 
사진제공 부르르닷컴

이경은 기자 ali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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