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 신호탄… 방역 중요성 더 커졌다 [30일 실내마스크 해제]
풍토병 체계 전환 목소리 고조
신규 변이·감염병 발병 가능성
상시 방역 체계 구축 역량 집중
3년간 7차례 대유행 속 K방역 과시
초반 허점에도 방역인력 희생 빛나
정부, ‘생활속 방역정착’ 주요 과제로
요양병원 등 고위험군 관리강화 방침
전문가 “지속가능 방역체계 구축해야”
中, 일본인 비자 발급 재개… 韓은 불허
30일부터 병원과 요양원, 버스·지하철 등을 제외한 대부분 실내에서의 마스크 착용이 의무에서 권고로 완화된다. 실내외 마스크 착용 의무 완화는 식당 등 다중이용시설 영업 금지 및 제한과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패스 등에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실시한 고강도 방역조치 중 ‘확진자 7일 격리’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해제된다는 얘기다.
한때 62만명까지 치솟던 신규 확진자가 설 연휴 이후에도 4만명을 밑도는 감소세에 접어들면서 오는 5월부터는 독감처럼 코로나19를 관리하겠다는 일본 정부와 같이 코로나19 방역을 엔데믹(풍토병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코로나19 신규 변이 바이러스 유행 및 새로운 신종 감염병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화 가능성에 대비해 감염병전담병원 설립과 전문 의료진 확보 등 물샐틈없는 방역체계 구축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자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대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2022년 2월 완화된 거리두기 여파로 그해 3월17일 62만1123명이라는 일일 최다 확진자를 발생시킨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과학방역이 아닌 정치방역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마스크 5부제 실시, 감염 취약층부터 시작한 단계별 백신 접종, 음압병상부터 생활치료시설에 이르는 치료체계 구축 등으로 최악의 의료 대란 사태는 방지할 수 있었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무엇보다 의료진 등의 헌신적 희생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방역지침 준수가 코로나19 고비 극복의 큰 원동력이 됐다.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인 김남중 서울대 의대 교수(감염내과)는 “준비는 안 돼 있었지만 각각의 방역인력이 제자리에서 최대치의 역량을 끌어냈다”고 자평했다.
코로나19 유행이 안정세에 접어들면서 정부는 일률적 거리두기 없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코로나19 유행 초반 1%를 넘나들던 치명률은 최근 0.1% 아래까지 떨어졌다. 18세 이상 백신 접종률은 96.7%에 달하고 국민 100명 중 약 99명(98.6%)이 코로나19 항체를 보유하고 있다. 정부가 1급 감염병인 코로나19를 일반 독감(4급)처럼 일반의료체계에서 관리하는 엔데믹으로의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 주된 요인이다.
정부는 올해 코로나19의 안정적 관리로 국민의 일상회복을 적극 꾀한다는 방침이다. 질병관리청은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신속한 진단, 예방접종·치료제를 주요 대응 수단으로 코로나19 대응 역량을 유지하고, 요양병원 등 감염취약시설 및 고위험군 관리 강화로 코로나19 위중증·사망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실내 마스크 의무화 조정 등 일상적 관리체계로의 전환을 위한 생활 속 방역 정착도 질병청의 올해 주요 업무 과제이다.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부분해제와 주요 시중은행의 정상영업(오전 9시∼오후 4시)을 앞두고 시민들 사이에선 기대감과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직장인 전모(28)씨는 “날씨가 춥다 보니 밖에서 걷기만 해도 마스크 안에 습기가 차는데, 그대로 실내를 돌아다니기 찝찝했다”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재확산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상당하다. 광주광역시 교육단체 관계자는 “교실 내 집단감염이 우려된다”며 “개학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 만큼 학교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1단계 해제 조치에서 제외된 의료시설과 고위험시설 등에 대한 2단계 전면 해제로 가려면 코로나19 확진자 및 위중증 환자의 안정적 관리뿐 아니라 고령층 및 기저질환자 등 고위험군에 대한 보호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또 현행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체계를 엔데믹 체계로 전환하기 위해선 중앙감염병전문병원 신설 등 지속 가능한 방역체계 구축이 선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중식 가천길병원 교수(감염내과)는 “앞으로도 코로나19는 일정한 폭을 가지고 환자가 발생할 것”이라며 “일상적인 의료대응체계 내에서 대응할 수 있는 방법, 신종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큰 준비를 하지 않아도 가능한 대응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중 교수 역시 “지금의 질병청, 보건소, 관련 전문의 등의 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국가감염병전문병원과 권역별 감염병전문병원 등 시설 및 인력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중국 내 코로나19 상황 악화가 국내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달 2일부터 다음 달 28일까지 현지 공관에서 외교·공무, 필수적 기업 운영, 인도적 사유 등의 목적을 제외한 단기 비자 발급을 하지 않기로 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이르면 30일(현지시간) 코로나19에 대한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 해제 여부를 결정·발표한다. WHO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 대한 대응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한국의 위기단계 하향 및 확진자 7일 격리 의무 조정 방안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지난 27일 열린 국제 보건 긴급위원회 회의에서 세계적인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최근 다시 급증하고 세계 각국의 위기 대응이 “여전히 혼란스럽다”고 밝혔다. AFP통신은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의 이 같은 발언은 코로나19 현 대응 단계가 아직 유효함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이날 회의에서 ‘제로 코로나’ 정책 폐기 후 급속한 확산세를 보인 중국 상황 등을 언급하며 “지난달 이후 주간 사망자 수가 다시 치솟았으며, 실제 숫자는 틀림없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브리핑에서 “2023년이 되면 언젠가 코로나19 비상사태가 해제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던 WHO 사무총장이 이날엔 기존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에 따라 WHO가 코로나19 위험성에 대한 경계 수위를 쉽사리 낮추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비상사태는 WHO가 내릴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공중 보건 경계 선언으로, 선포되면 질병 확산 차단을 위한 의료진·장비·자금 지원 협력 체계가 확대되는 등 공중보건 조치가 강화된다. WHO는 3개월마다 국제 보건 긴급위원회를 소집해 현 상황을 평가하고 비상사태 유지 여부를 결정한다.
비상사태가 유지되면 각국의 방역 태세에는 큰 변동이 없겠지만, 해제되면 확진자 격리기간 단축이나 마스크 의무 착용 요건 완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WHO는 2020년 1월30일 코로나19에 대해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코로나19가 특정 지역을 넘어 확산하자 그해 3월11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정부는 WHO의 비상사태 유지 혹은 해제 판단에 따라 국내 코로나19 위기단계 하향 조정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특히 코로나19에 대한 위기단계를 현재 심각 단계에서 경계나 주의로 하향할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위기단계가 하향되면 정부는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조치 전면 해제와 함께 사실상 정부 차원의 마지막 남은 방역조치인 ‘확진자 7일 의무 격리’ 검토에 돌입한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지난 20일 중앙방역대책본부 브리핑에서 “(WHO의) 비상사태가 해제된 후 국내에서 심각 단계가 경계나 주의 단계로 변경되면 격리 의무 해제를 전문가들과 같이 논의해서 결정해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코로나19 확진자의 격리기간은 2020년 2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14일이었다가 2021년 11월 10일로 단축됐다. 지난해 1월 7일로 줄어든 뒤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앞서 방역 당국은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1만명 아래로 떨어졌던 지난해 6월 격리 기간 단축 및 의무 해제와 관련한 논의를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유행 상황을 고려한 시뮬레이션 결과 격리기간이 3일로 단축될 경우 확진자가 4배, 격리 해제 때에는 8.3배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와 7일 격리를 유지했다. 이후 코로나19 2가 백신이 도입되고 항체형성률이 높게 나오면서 세계적으로 확진자 격리를 해제하는 분위기다.
송민섭 선임기자, 이정한·조희연 기자, 광주=김선덕 기자,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유태영·권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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