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군산 기차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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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모든 게 신기하다. 처음 전철을 탄 날, 땅 위를 달리는 구간에서 말했다. “전철이 빨라요, 자동차가 빨라요?” 상황마다 다르다 답하니 그 상황이 무엇이냐 물었다. 거리와 속도의 단위, 혹은 러시아워에 대해 설명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저기에 자동차들이 가지? 저기랑 여기랑 어디가 더 빨라 보여?” 아이의 시선이 계속 차창 밖을 향했다.
온돌방에 앉아 경치를, 서해금빛열차
용산역에 내리자마자 아이는 놀랍다는 듯이 소리를 지른다. “와, 전철역이 되게 커요.” “전철도 타고 기차도 타는 곳이어서 그래. 사람이 많이 와서 크게 지은 거야.” 그렇구나 하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인파를 따라 걸어 기차 승강장에 닿았다. 잠시 지나 노란색 기관차가 객차 다섯 량을 끌고 역에 들어선다. 객차에도 여러 무늬를 입혀 외관부터 볼거리다. 이게 아이에게 얼마나 환상적인 광경인지는 방방 뛰는 모습만 봐도 알겠다. 기차가 완전히 멈춘 뒤엔 문이 열리는 짧은 시간이 근질근질해 아예 춤을 춘다. 서해금빛열차를 예약하길 잘했네,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을 칭찬했다. 물론 마음속으로.
서해금빛열차는 서울 용산역과 전북 익산역을 왕복하는 관광 열차다. 아산, 홍성, 보령, 서천 등 충남 구석구석과 전북 군산에 정차하는 노선이 여행하기에 좋고, 특히 5호차가 온돌마루실이어서 편히 앉아 풍경을 감상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온돌마루실은 이미 따뜻하게 덥혀 있었다. 몸이 사르르 녹아 가슴까지 훈훈해지는 찰나에 그러든 말든 아이는 차창 앞으로 점프해 얼굴을 바싹 대고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출발하고도 한참 “이거”, “저거” 좀 보라면서 손가락을 이리저리 흔드는 통에 오랜만에 제대로 경치를 구경했다. 마침 어제 눈이 내려 산과 들이 하얗다. 궁금하지만 묻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고 산과 들을 나란히 보기만 했다. 마음을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기에. 함께하는 것만으로 지금은 흘러넘친다. 아이가 문득 묻는다. “근데 있잖아요. 기차가 빨라요, 자동차가 빨라요?” “같이 알아보자.” 자동차를 찾는 우리의 시선이 계속 차창 밖을 향했다.
기차가 오가던 추억의 골목, 경암동 철길마을
먼저 방문한 곳은 경암동 철길마을이다. 군산 여행은 혼자가 아니어서 계획하는 일이 평상시보다 조심스러웠다. 행여 지루해하면 어쩌나 걱정돼 여행지들을 나 홀로 들었다 놨다 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곳은 경암동 철길마을, 그다음으로 말랭이마을. ‘경암동 철길마을’ 벽화가 반기는 마을 입구, 아이가 “기차가 다니는 길?!”이라고 질문인지 탄성인지 아리송한 말을 던지고 뛰어간다. 달싹이는 뒷모습이 예뻐 잠깐이나마 천천히 걷기로 한다. 어디든 백지로 만드는 생명의 조화를 뒤따라 철길을 밟고 눈을 만지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 길은 어찌 이리 사랑스러울까. 아이가 모든 걸 신기해하니 더불어 가는 어른도 어느새 세상이 신기하다. 계획하는 일이 걱정된들 걱정만 하기보다 조금 더 설레어볼 것을. 달싹이는 저 뒷모습을 다른 여행지와 일상의 풍경에 옮기고 내리 천천히 걷는다. 세상이 새하얀 종이 한 장을 건네주는 듯하다.
교복 대여점에 들렀다. 역시 “이거”, “저거” 손가락을 이리저리 흔들지만, 왜 저보다 큰 옷만 가리키는지 아직도 불가사의하다. 마침내 몸에 맞는 옷을 지목했다. 아이는 탈의실 문을 야무지게 닫고 부스럭부스럭 갈아입는다. 도와주겠다 해도 아니란다. 끙끙 소리를 몇 번 내고서야 탈의실에서 나온다. 방긋이 웃는 아이. 만족했나 보다. 이제 아이 옆에서 마을을 탐방한다. 장난감 가게, 달고나 만들기 체험 상점, 사진관, 벽화, 알록달록 채색한 철길…. 서두를 이유 따위는 존재할 수 없는 아이의 우주에 경암동 철길마을이 살며시 들어온다. 달고나가 맛있고 벽화가 아기자기한 우주 한편에 기차가 오가면 더 좋겠다. “예전엔 기차가 다녔어. 이 좁은 골목을 기차가 통과한 거야. 근사하지?” “진짜요? 칙칙폭폭 소리가 엄청 컸겠네. 정말 멋지다!” 어른은 근사하다 표현하고 아이는 멋지게 상상한다. 둘의 간격은 별것 아닐 수도, 전부일 수도 있다. 저만치 앞서가는 아이를 따라 칙칙폭폭 소리가 멋진 마을을 거닐었다.
여물어가는 군산의 기억, 말랭이마을
말랭이마을 레지던스 작가 중 김혁수 도예가 공방을 찾았다. 둘러보고 나가자 했다가 아이 표정이 환해서 체험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작가는 흔쾌히 시간을 내주었다. 이렇게 해보자, 저렇게 해볼까 이르는 대로 아이는 열심히 흙을 다진다. 도자기 모양을 완성하고는 고개를 숙여 무언가 적는다. 가만 보니 제 이름이다. 또 한 번 방긋이 웃는 얼굴을 어루만져보았다. 철길과 칙칙폭폭 소리와 벽화의 순간들이 얼굴에서 손끝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여정을 마무리하고 군산역에 돌아와 기차를 기다린다. 깡충깡충 뛰놀던 아이가 벤치에 같이 앉자 한다. “오늘 되게 즐거운 하루였어요.” 고맙다고 대답했지만 충분한 건지 모르겠다. 하긴 영원히 모른다 해도 어떠한가. 함께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넘쳐흐른다.
에디터 : 서지아 | 진행 : 김규보(<KTX 매거진> 기자) | 사진 : 신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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