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만 서다 끝나” 어르신 울리는 실업급여 신청

김지원 기자 2023. 1. 28.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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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잃어 서러운데… 자격 확인·교육에 몇 시간씩 허비
지난 18일 서울 구로구 관악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실업급여 수령 필수 교육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줄 서 있는 이들 중엔 머리가 희끗한 고령층이 많았다. /고운호 기자

배관 자재 판매 업체에서 32년간 일했다는 류모(71)씨는 실업급여(구직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았다. 최근 건축 업계 경기가 나빠지면서 권고사직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류씨는 “거의 평생을 일한 곳인데 사실상 정리해고를 당했다”며 “나이도 많고 건강도 좋지 않아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왔다”고 했다. 그런데 류씨가 이날 자신이 실업급여 수령 자격이 되는지를 확인하는 데만 약 1시간이 걸렸다.

지난 13일 서울 구로구 관악고용복지플러스센터 복도에는 70여 명이 10m가량 줄을 서 있었다. 실업급여 수급 자격을 확인하기 위해 온 사람들인데 줄을 선 70명 중 10여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60대 이상 고령층이었다.

일자리를 잃은 어르신들이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고용복지센터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실업급여는 해고나 권고사직 등 비자발적인 이유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에게 재취업 활동 기간에 직전 3개월 평균 임금의 60%를 지급하는 복지 제도다. 경제난으로 중소기업 등이 인원 감축을 단행하면서, 계약직·일용직으로 고용됐다가 최근 일자리를 잃어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고령층이 늘었다. 2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60대 이상 신규 구직자 수는 작년 8월 6만3000명에서 11월 7만명, 12월 8만7000명으로 늘었다. 또 지난해 12월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 중 60세 이상은 2만5000명으로, 2021년 12월보다도 약 1000명 늘었다.

실업급여를 수령하기 위한 조건은 고령층에게 더 까다롭다. 나이와 취업 시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 65세 이전에 한 번이라도 고용보험에 가입한 적 있다면, 65세 이후 경력 단절 없이새로 취직했다가 일자리를 잃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현행 고용보험법상 만 65세가 넘으면 신규 취업을 해도 고용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다. 생산가능인구(15~64세)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다수 고령층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고용복지센터를 찾아 긴 줄을 서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 홈페이지를 통해 자격 여부를 미리 알고 센터를 방문하면 빠르지만,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에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서부고용복지센터를 찾은 한 60대 남성은 “건설회사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다 직장을 잃었다”며 “스마트폰도 다루기 어려운데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방법은 알지도 못하고 듣기만 해도 힘들다”고 했다.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수급 자격을 확인받더라도, 고령층에겐 ‘수급자격 신청자 교육’이라는 또 다른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실업급여를 처음 신청하는 경우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교육이다. 홈페이지에서 간편하게 온라인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센터에서 하는 대면 교육은 하루에 1번, 오후 2시에만 열린다. 청년들은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이수하지만,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은 오프라인 교육을 받기 위해 또다시 줄을 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교육 시간 1시간 전에 오더라도 사람이 많아 제때 수급 자격을 확인받지 못하면, 교육 시간을 놓쳐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지난 13일 관악고용복지센터를 찾은 정모(60)씨는 “교육을 들어야 한다고 해서 아픈 몸을 끌고 왔는데 대기 인원이 많아 자격 확인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오늘은 늦었다고 했다”며 “직장은 잃었지만 약값과 생활비를 자식들에게 의존하기 싫어서 실업급여를 신청하려는 건데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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