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지우개, 티파니 빨대, 고야드 개 밥그릇… 일상으로 진격하는 명품들
명품들이 뛰어드는 이유
‘YSL’ 로고가 박혀 있지 않았다면,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생로랑’이 새해 신제품으로 내놓은 핸드백은 치킨 배달용 종이 상자로 착각할 법하다. 이름도 식당에서 먹고 남은 음식이나 배달 음식을 담는 ‘테이크어웨이 박스(Take-away Box)’. 하찮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가격은 무려 245만원이다. 100% 송아지 가죽 소재에 안감은 스웨이드로 마감했고, 겉면에는 로고를 금속 장식과 함께 엠보싱(음각) 처리했다. “기발하고 재미있다”며 창의적이란 호평과 “열면 치킨이 들었을 것 같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이 엇갈린다.
명품 브랜드들이 일상 생활용품을 본뜬 제품을 내놓는 걸 넘어, 아예 일상생활용품 자체로 출시 범위를 넓히고 있다. ‘에르메스’는 얼굴 등 피부 유분을 제거할 때 사용하는 기름종이를, ‘구찌’는 지우개·공책·트럼프 카드를, ‘루이비통’은 아령(덤벨)·배구공을, ‘프라다’는 종이 클립을, ‘티파니’는 빨래집게·빨대를, ‘샤넬’은 부메랑·테니스 라켓·서핑보드를, ‘고야드’는 여행용 개 밥그릇을 선보였다. 요가 매트는 팔지 않는 브랜드가 없을 정도. 가히 ‘일상의 명품화’라 할 만하다.
한 명품 브랜드 MD(상품기획담당자)는 “과거 일부 브랜드에서 재미 삼아 혹은 실험적으로 페이퍼 백(paper bag·식료품 등을 담는 종이 봉지)이나 쇼핑백을 본뜬 가방을 내놓기는 했지만, 요즘처럼 모든 브랜드에서 경쟁하듯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관련한 제품을 내놓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명품업체가 내놓은 일상품들은 높은 가격으로 화제가 되기도 한다. 에르메스(Hermes)의 ‘H’가 찍혀 있고 브랜드의 상징색인 주황색 상자에 담긴 기름종이는 5만7000원이다. 100장이 들었으니 장당 570원꼴. 일반 기름종이 제품이 5000~7000원인 것에 비교하면 10배 이상 비싸다. 특유의 ‘더블 G’ 패턴이 촘촘하게 음각된 흰색 지우개가 검은 가죽 케이스에 담긴 구찌 지우개는 약 14만원. 프라다 종이 클립은 34만원, 티파니 빨래집게는 49만원, 샤넬 테니스 라켓은 190만원대, 고야드 개 밥그릇은 약 220만원, 루이비통 아령은 350만원대다.
‘스타일H’ 박수빈 편집장은 “명품 브랜드들이 일상용품을 내놓는 건 기존의 VIP 고객과 명품에 입문하는 젊은 신규 고객이라는 양극(兩極)을 겨냥한 ‘투 트랙(Two Track) 전략’”이라고 했다. “한식 밥상을 차릴 때 밥에 국과 김치를 맞춰서 놓듯, 특정 브랜드의 가방·구두·옷을 많이 가진 VIP 고객들은 요가 매트·덤벨·문구류 등 다른 분야도 같은 브랜드로 통일해서 갖추고 싶어 하죠. 반면 MZ세대는 비용적으로 부담스러운 패션·의류 제품의 대안으로 일상품을 선택하는 거죠. 가방이나 옷, 신발보다는 저렴하니까요. 명품 브랜드 입장에서 이들은 미래를 위해서 잡아야 하는 고객층이죠.”
한 명품 브랜드 매장 매니저는 “우리가 파는 일상용품은 충성·단골 고객들에게 ‘우리는 일반 손님과 다르다’는 만족감을 드리기 위한 것들”이라고 했다. “사실 이런 제품들은 크게 남지는 않아요. 그래서 많이 만들지도 않고요. 특정 매장에서만 팔거나, 얼마 이상 구매한 고객 혹은 매장을 자주 찾는 고객들에게만 보여드리죠. 단골손님들은 이런 제품을 구매하면서 ‘내가 이런 것까지 가지고 있어’라며 자신을 구분 짓고 드러내는 도구로 활용하는 거죠.” 박 편집장은 “일상의 모든 아이템으로 명품화가 확장되는 동시에, 특정 장소나 매장에 갔을 때만 구매할 수 있도록 맞춤형으로 진화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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