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볼룸댄스 홀이었나…총격에 부서진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안식처’

김유진 기자 2023. 1. 2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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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파크의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23일(현지시간) 사건 현장인 스타 볼룸댄스 스튜디오 앞에 꽃다발을 놓고 있다. AFP연합뉴스

고국을 떠나 낯선 미국 땅에 정착한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위로해 준 것은 볼룸댄스였다. 캘리포니아 외곽에 위치한 몬터레이 파크는 아시아계가 처음으로 과반을 넘은 도시로, 아시아계 이민사에서 상징성을 지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매일 밤 볼룸댄스 파티가 열렸다. 볼룸댄스는 음악을 틀어놓고 어울려 춤추고 운동하면서 삶의 시름을 잊을 수 있는, 고령 이민자들의 가장 좋은 오락거리였다고 뉴욕타임스는 23일(현지시간) 전했다.

고령 이민자들의 ‘안식처’에서 벌어진 끔찍한 참사

제프와 낸시 루 부부는지난 21일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처음 열린 설 축제를 마음껏 즐길 계획이었다. 물론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볼룸댄스 교습소에서 춤을 추면서 말이다.

이들이 자주 가는 스타 볼룸 댄스 스튜디오는 약 30년 전부터 지역 사회의 친교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특히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중국계 노인들이 라틴 댄스 차차나 룸바를 배우기 위해 교습소를 찾았다. 강습생 대다수가 만다린이나 광둥어가 익숙한 중국계였지만, 때때로 동유럽계 이민자나 미국인들도 방문해 서로 어울린 것으로 알려졌다.

흥겨운 음악소리를 깨고 날카로운 총성이 울려퍼진 것은 밤 10시 20분쯤이었다. 총격범 휴 캔 트랜(72)이 댄스장에 난입해 총기를 난사하기 시작했을 때, 자신의 이름을 ‘샬리’라고만 밝힌 한 생존자는 댄스 파트너를 잡고 테이블 아래에 숨었다고 abc뉴스에 말했다. 총격 소리가 멈추자 그녀는 댄스 파트너와 함께 일어나려 했지만, 그가 이미 등에 총을 맞은 상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떠난 줄 알았던 총격범은 다시 무기를 재장전하고 돌아와 2차 난사를 시작했다. 마침내 총격범이 떠나간 후 탁자 밖으로 나온 샬리는 친구 2명이 죽고 다른 여러명이 신음하면서 바닥에 뒹굴고 있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다.

미국에 정착한 지난 20년 동안 궂은 날도, 좋은 날도 늘 함께였던 제프와 루 역시 이날 생사의 갈림길에서 이별을 해야 했다. 제프와 루는 그날 현장에서 둘다 총알을 피하지 못했다. 다행히 제프는 총상에서 회복 중이지만, 루는 결국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자 11명 중 한명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50~60대 여성 6명과 남성 5명이다. 일부 사망자 신원도 확인됐다. LA 카운티 보안관실은 현장에서 사망한 10명 중 2명은 65세 여성 마이 느한(My Nhan)과 63세 여성 라일란 리(Lilan Li)라고 밝혔다. 국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느한의 가족은 성명에서 “그녀의 따뜻한 미소를 기억한다. 그녀는 우리의 치어리더였다”면서 사교 댄스에 대한 그녀의 열정을 기억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인근 몬터레이 파크 총격범 동선
용감한 시민이 2차 참사 막아…“총격범과 마주치기 전까지 진짜 총 본적 없어”

한편 트랜은 스타 댄스 스튜디오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난 후 약 20분 뒤 인근 앨햄브라의 댄스홀 ‘라이라이 볼룸스튜디오’에서 2차 범행을 시도했으나 현장에 있던 시민에게 총기를 빼앗겨 미수에 그쳤던 것으로 확인됐다. 용감한 시민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자칫 피해자가 눈덩이처럼 더 커질 수 있었던 셈이다.

두 번째 범행을 막은 ‘시민 영웅’은 라이라이 볼룸스튜디오 창업자 가문의 손자인 브랜던 차이(26)였다.

차이는 이번 사건 이전까지만 해도 대규모 살상용 총을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없었다고 BBC방송이 전했다. 차이는 ABC방송 <굿모닝 아메리카>에서 “그때는 그가 좀전에 다른 댄스홀에서 11명을 살해하고 왔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면서 “하지만 그를 무장해제하지 않으면 모두가 죽을 거라는 걸 알았고,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달려들었다”고 말했다.

차이는 1분 30초 동안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 끝에 권총을 빼앗아 겨누며 “여기서 꺼져”라고 소리쳤다고 전했다. 겁먹지 않고 달려든 것은 “원시적 본능”이었다고 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차이는 트랜과 그의 권총을 처음 본 순간 “돈을 훔치러 온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그의 몸짓, 얼굴 표정, 눈으로부터 그가 다른 사람들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라며 옆 동네에서 벌어진 비극에 가슴 아파했다.

트랜은 차이에게 가로막혀 2차 범행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흰색 밴을 몰고 달아났으며, 약 35㎞ 떨어진 토런스의 한 쇼핑몰 인근 주차장에서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CNN은 2010년 전후로 수 년간 트랜과 가까이 지냈던 지인을 인용해, 트랜이 당시 거의 매일 밤 자동차를 몰고 이 댄스홀에 갔다고 전했다. 지인에 따르면 트랜이 당시 살던 샌개브리얼의 집에서 스타 볼룸 댄스 스튜디오까지 거리는 자동차로 약 5분에 불과했다. 그러나 트랜은 댄스 홀의 강사들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자기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다고 이 친구에게 불평한 적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총격범인 휴 캔 트랜(72)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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