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한끗]②야쿠르트 '65㎖'에 담긴 비밀

김아름 2023. 1. 2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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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술제휴로 도입…독자화 성공
냉장시설 미비로 65㎖ 소용량 결정
100억 마리 보장…생존률 높은 균주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서 사랑받고 있는 많은 제품들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한 끗 차이가 제품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에 숨겨져 있는 그 한 끗을 알아봤습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함께 찾아보시죠. [편집자]

똑같은 메뉴인데도 식당마다 맛이 다르다는 게 가끔 신기할 때가 있습니다. 김치처럼 이름만 같을 뿐 재료가 천차만별이라서 그럴 때도 있지만, 비슷한 재료를 쓰는 데도 어떤 곳은 맛집이 되고 어떤 곳은 별점 한 개도 아까운 집이 되기도 합니다. 똑같은 재료, 똑같은 조리도구를 사용하더라도 요리를 하는 사람의 노하우와 기술이 달라서일 겁니다. 재료의 99%가 같다면 나머지 1%가 '한 끗'의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사서 먹곤 하는 식품에도 수백, 수천 명의 노력과 고민이 담겨있습니다. 비슷한 제품들 사이에서 수십 년 이상 '국민 음료'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기 제품이라면 더욱 그럴 겁니다. 이번 결정적 한끗의 주인공인 hy의 '야쿠르트'가 바로 그런 제품입니다. 65㎖의 작디 작은 몸 안에 숨겨진 야쿠르트의 비밀, 지금부터 한 번 파헤쳐 볼까요. 

요구르트 아니죠 '야쿠르트' 맞습니다

야쿠르트의 역사는 곧 대한민국 발효유의 역사입니다. 어른들은 아직도 야쿠르트 비슷하게 생긴 유산균 발효유를 보면 모두 "야쿠르트"라고 부르시는 분들이 많죠. 그만큼 hy의 야쿠르트가 생활 속에 뿌리깊게 박힌 브랜드라는 증거입니다. 

야쿠르트를 단순하게 '요거트 혹은 요구르트(yogurt)'의 일본식 발음으로만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가 요즘 먹는 우유를 베이스로 한 요거트와 야쿠르트는 혼용해 쓸 수 없습니다. 야쿠르트는 일본 야쿠르트사(社)가 개발한, 탈지분유에 유산균과 당을 넣어 만든 제품에만 쓸 수 있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1971년 출시된 최초의 야쿠르트 제품/사진제공=hy

야쿠르트는 국내에서는 60년대 말 한국야쿠르트(현 hy)가 일본 야쿠르트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1971년부터 생산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요거트'를 일본식으로 읽은 이름이었지만 '탈지분유로 만든 발효유 브랜드'로 인기를 얻으면서 고유명사가 된 겁니다.  

그런데 야쿠르트와 비슷한 액상형 발효유들이 '야구르트'라는 이름을 달고 판매되면서 국내에서는 '액상형 발효유=야쿠르트 혹은 요구르트'라고 부르는 공식이 성립됐습니다. 이 때문에 나중에 나온 '농후 발효유' 계열은 '요거트'라고 따로 분류합니다. 

일본을 극복하다

야쿠르트가 일본에서 시작되긴 했지만, 단순히 일본 제품을 들여와 판매한 건 아닙니다. 출시 전인 1970년 야쿠르트 시제품이 생산됐지만, 당시에는 판매를 위한 제품 등록과 법적 기준이 부족했습니다. 그만큼 국내엔 생소한 제품이었던 겁니다. 담당 기관조차 정하지 못하다가 어렵게 농수산부에서 관장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정작 발효유의 유산균이 규격에 맞는지를 검증하는 기술조차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검사를 위해 거둬 간 야쿠르트에서 유산균이 검출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아 직원이 직접 검사기관을 방문해 균수를 확인하고 측정하는 기술을 전수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당시 우리나라 유가공 분야의 기술력이 낙후된 상태였다는 거죠. 이 때문에 hy 역시 유산균 제조 기술력과 생산시설을 일본 제공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hy는 자체 균주를 만들어 야쿠르트를 생산하고 있다./사진제공=hy

어렵게 초기 생산은 해결했지만 자체 기술없이 외부에 의존해선 기업 성장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hy는 즉시 유산균의 국산화를 추진합니다. 서울 대방동 하치장에 콘테이너를 설치하고 연구를 시작, 1976년에는 연구실을 연구소로 승격했습니다. 이후 식품업계 최초로 기업 부설 연구소인 '중앙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투자의 결실은 1981년 맺어집니다. 자체적으로 야쿠르트 종균 배양에 성공, 일본의 도움없이 종균을 제조·공급할 수 있게 됐죠. 다음 스텝은 '자체 균주' 개발이었습니다. 10년간의 연구 끝에 1995년 자체 균주인 '비피더스 유산균주' 개발에 성공합니다. 이 균주를 이용한 첫 제품이 바로 떠먹는 발효유 '슈퍼100'입니다. 현재 hy가 만드는 모든 제품에는 국산 균주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극일' 사례인 셈입니다. 

'65㎖'에 담긴 비밀

야쿠르트 말고 한 병이 65㎖인 제품이 또 있을까요? 한 병을 쭉 들이켜면 한 병 더 마시고 싶기도 하고 적당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이런 양이 있을까요.

야쿠르트가 소용량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안전'때문입니다. 야쿠르트가 처음 출시된 1971년은 냉장고가 극히 드문 시절이었습니다. 1965년 금성사가 최초의 국산 냉장고 '눈표냉장고'를 출시할 당시 가격은 8만원이 넘었습니다. 대졸 초임 임금이 1만원 안팎이던 시절입니다. 

먹다가 남은 야쿠르트를 실온에 보관하면 금세 상합니다. 양이 많아질수록 이런 위험성이 높아지겠죠. 이 때문에 hy는 냉장 보관이 중요한 유제품을 대용량으로 만드는 걸 꺼렸습니다. 이때문에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한 번에 마시기 좋은 양인 65㎖로 제품 용량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야쿠르트는 첫 출시 때부터 '가족의 건강'을 컨셉트로 잡았다/사진제공=hy

사실 야쿠르트가 처음부터 65㎖였던 건 아닙니다. 1971년 최초 출시 당시 야쿠르트 한 병은 80㎖였습니다. 그런데 70년대 중후반으로 들어서면서 야쿠르트는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 됩니다. 경제 부흥과 냉장고의 가정 보급 등이 맞물리며 '유산균의 시대'가 도래한 거죠. 여기에 야쿠르트가 초창기 컨셉트로 잡은 '가정의 건강'이 제대로 통한 겁니다. 

도저히 시장에서 물량을 맞출 수 없게 되자 1974년 야쿠르트는 한 병 용량을 80㎖에서 65㎖로 줄이는 고육지책을 사용합니다. 이렇게 해서 물량이 20%정도 늘어나는 효과를 본 거죠. 이게 또 한 입에 '톡' 털어넣기 좋은 용량으로 받아들여지며 야쿠르트는 지금까지 65㎖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냉장 기술이 발달해 상할 걱정이 없는 요즘에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춘 대용량 야쿠르트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판매 중인 제품 중 야쿠르트 프리미엄 라이트는 100㎖로 양이 늘었고 450㎖, 750㎖ 대용량 제품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원 샷'은 조금 어렵겠죠?

220원에 100억 마리…가성비 끝판왕

야쿠르트는 출시 초기 '사치품' 취급을 받았습니다. 보관을 위해서는 고급 냉장 시설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정부가 물품세(특별소비세)를 매긴 겁니다. 이 때문에 조그마한 야쿠르트 병에 물품세 인지를 붙였습니다. 25원짜리 야쿠르트를 생산하는 인원보다 '사치품 딱지'를 붙이는 인원이 더 많았다고 하니, 웃지 못할 일입니다.

이런 해프닝을 딛고 야쿠르트는 '저렴한 음료'의 상징으로 우뚝섰습니다. 김밥 한 줄에 3000원이 넘는 초고물가 시대지만 야쿠르트 한 병은 220원입니다. 물가 대비 가격 인상폭도 낮습니다. 1970년 100원 수준이던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은 요즘 6000원대로 올랐습니다. 반면 출시 당시 25원이던 야쿠르트 한 병 가격은 현재 220원으로 9배 정도 올랐을 뿐입니다. 5개 들이 한 줄을 사도 1100원입니다. 이만한 가성비 음료가 또 없습니다. 

1971년 출시 당시 야쿠르트의 가격은 25원(빨간 원 안)이었다/사진제공=hy

야쿠르트엔 또 하나 중요한 숫자가 있습니다. 바로 '100억 CFU(보장균수)'입니다. 야쿠르트 1병에 100억 마리의 유산균을 보장한다는 의미입니다. 보장균수는 제품에 투입된 균종이 유통기한까지 살아있는 균의 수를 뜻합니다. 

야쿠르트에 실제 투입되는 균주 수는 200억 마리 이상입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분말형 유산균 제품 못지 않은 수치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유산균 하루 섭취량을 1억~100억 CFU로 권고하고 최소 1억 CFU를 충족하면 건강기능식품으로 인정합니다. hy의 야쿠르트 역시 식약처의 인증을 받은 '건기식'입니다. 

유산균 전문가가 말하는 야쿠르트

이철호 hy 유제품 팀장/사진제공=hy

야쿠르트가 한국에 첫 발을 내디딘 지 벌써 5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유산균 시장도 상전벽해를 이뤘습니다. 국내 건기식 시장에서 유산균 카테고리는 홍삼에 이은 2위 시장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제품들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hy의 이철호 유제품 담당 연구원을 만나 야쿠르트와 유산균에 대한 궁금증들을 풀어 봤습니다.

-발효유의 종류가 많은데, 어떻게 분류할 수 있나요

△발효유는 일반적으로 형태에 따라 마시는 타입을 액상 발효유, 떠먹는 타입은 호상 발효유로 구분합니다. 제조 방식은 유사하나 배양 후 공정에서 프로바이오틱스를 배양한 배양용액이 균일하게 혼합되도록 균질기를 거치는 '균질 단계'를 거치는지가 가장 큰 차이점이죠. 균질 과정을 거치면 마시기 좋은 액상 타입이 되고 균질 과정을 생략하면 떠먹기 좋은 형태가 됩니다.

-야쿠르트에는 어떤 유산균들이 들어가나요

△야쿠르트에는 특허 프로바이오틱스 5종(2782·7712·8002·7715·7714)이 함유돼 있습니다. HY2782는 hy만의 독자적 장기배양기술을 적용해 장내 생존율을 높인 균입니다. 65㎖ 제품 1개 당 100억 CFU를 보증합니다.

야쿠르트에 들어 있는 HY2782 균주/사진제공=hy

-200억 투입 균수? 100억 보장 균수? 헷갈리는데 뭘 봐야 하나요.

△투입 균수는 제품을 생산할 때 투입하는 균주의 수입니다. 하지만 구매 단계에서는 보장 균수를 더 신경써서 봐야 합니다. 보장 균수는 제품에 투입된 균종이 유통기한까지 살아있는 균의 수를 뜻합니다. CFU(Colony Forming Unit)로 표기하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유산균 하루 섭취량을 1억~100억 CFU로 권고하고 있습니다. 최소 1억 CFU를 충족하면 건강기능식품으로 인정합니다. 

그런데 보장 균수보다도 중요한 게 있습니다. 바로 '생존률'입니다. 유산균은 섭취했을 때 위나 십이지장에서 상당수가 사멸합니다. 살아서 장까지 도달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죠. 야쿠르트에는 산이나 담즙에 사멸되지 않은 강한 균인 야쿠르트균(HY2782, 락토바실러스 카제이)을 사용합니다.

13일간 위액이나 담즙에 서서히 강하게 살아남은 것만을 골라내 제품에 사용하는 종균을 배양하죠. 이후 7일간의 배양 과정을 통해 맛과 풍미가 뛰어난 야쿠르트 제품이 완성됩니다. 이런 힘든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산에 견디는 내산성을 강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때문에 야쿠르트균 HY2782는 'D-20 유산균' 이라고도 불립니다. 

-다른 제품들을 보면 유산균이 1000억 마리가 넘는 것들도 있던데, 100억 CFU 제품 10병을 마시는 효과가 있는 걸까요

△제품에 적용된 유산균 종류에 따라 답즙이나 산에 사멸되지 않는 내산성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비교해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매일 유산균을 섭취해 장 환경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CFU가 높은 제품을 1회 섭취하는 것보다 어떤 제품이든 꾸준히 섭취하는 게 중요합니다. 

☞3편에 계속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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