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교섭' 임순례 감독 "女감독 첫 블록버스터, 잘돼야죠"

조은애 기자 2023. 1. 2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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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영화 '교섭'의 흥행 기류가 심상치 않다. 지난 18일 개봉 첫날부터 '아바타: 물의 길'의 독주를 막은 '교섭'이 3일째 박스오피스 선두를 달리며 극장가의 새로운 흥행 강자로 급부상했다. 오랜 시간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사랑받은 임순례 감독의 저력이 또 한 번 빛났다.

'교섭'은 최악의 피랍사건으로 탈레반의 인질이 된 한국인들을 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한 외교관과 현지 국정원 요원의 교섭 작전을 그린 영화다. 앞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남쪽으로 튀어', '리틀 포레스트' 등으로 사랑받은 임순례 감독의 신작으로 황정민, 현빈이 주연으로 활약했다.

"사실 처음엔 제안받고 거절했어요. 논쟁 유무의 문제를 떠나서 이건 분명히 제작비가 많이 들텐데 그에 상응하는 상업성, 대중성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거든요. 그러다 시나리오를 보고 묵직한 주제이긴 하지만 좀 새롭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았어요. 신념이란 게 과연 어디까지 유효할까, 국가의 책임과 기능은 어디까지 작동해야 하는가 그런 질문도 해볼 수 있고요.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나 시사교양이 아니니까 그 당시 기사나 보도보다 더 다룰 수는 없어요. 실화 부분이 큰 비중을 갖게 되면 영화가 말하려는 본래 취지가 흐려질 것 같아서 어떻게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죠."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실화가 민감할 수 있는 소재인 만큼 임 감독은 이야기의 방향부터 새롭게 잡았다. 피랍된 인질들 대신 그들을 구하러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했던 외교관과 국정원 요원의 여정에 집중했다. 또 논쟁적인 이슈보다 '어떤 과정과 고민을 거쳐 교섭을 이뤄냈을까' 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국가의 존재 이유, 생명의 가치에 대해 짚으며 여운까지 남긴다. 낯선 땅,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임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방대한 양의 자료 조사를 통해 리얼한 풍성함을 더했다.

"우리나라에 아프가니스탄 전문가가 없어요. 이슬람 전문 학자들은 몇 분 계시지만 국내에 거주하는 아프가니스탄인도 많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서적이나 다큐멘터리를 많이 찾아보면서 공부했어요. 저는 보통 작품을 만들 때 실제 인물들을 취재하고 인터뷰하는 편인데 이번 영화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당시 협상 과정이 대외비라 수소문을 할 수도 없었고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큰 줄기만 가져오고 나머지 디테일이나 인물들은 완전히 창작했죠."

이국적인 풍광을 구현내기까지는 수많은 제작진들의 노력이 있었다. '교섭' 팀은 팬데믹 초기, 입국 자체가 불가능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현지 촬영이 어려웠던 탓에 그와 가장 비슷한 풍광과 인프라를 가진 요르단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했다. 이에 '마션', '스타워즈' 등을 찍기도 했던 와디럼 사막과 건조한 태양, 산악 지형 등을 중심으로 특유의 황량하고 광활한 영상을 담을 수 있었다.

"요르단 촬영지 헌팅을 세 번 갔다 왔어요. 액션을 찍은 동네가 우리나라로 치면 주택가 뒷골목 같은 곳이라 아무리 다 막아도 누가 튀어나올 수 있으니까 프리 프로덕션 때 정말 많은 준비가 필요했어요. 스태프만 한 200명 이상 정도였고, 그중에 요르단 스태프만 100명쯤 됐어요. 요르단 스태프는 그렇게 많이 필요 없다고 얘기했는데 그들도 할리우드랑 협업할 때 기준이 있더라고요. 또 보조출연자도 100명쯤이었는데 현장엔 사람이 더 많았어요. 그분들이 자기 친구, 사촌 다 부르는 거예요. 당시엔 황당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재밌기도 하고.(웃음) 또 기억에 남는 건 거긴 '티보이'가 있더라고요. 차만 타주는 스태프에요. 한국은 감독의 개인 비서는 없는데 그분은 감독 음료수만 챙겨요. 제가 원래 탄산수를 안 마셔서 물을 부탁드렸는데 계속 탄산수만 주시더라고요. 마지막 날쯤 돼서야 물을 주시고. 그런 게 좀 재밌었네요.(웃음)"

특히 '교섭'은 따뜻한 인간애와 생명을 향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해왔던 임 감독의 연출 세계를 또 한 번 확장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동안 그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 빠른 속도로 펼쳐진다. 임순례 감독표 액션의 신선한 매력은 '교섭'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다.

"'교섭'이 상업적인 측면에서만 기획됐다면 액션이 훨씬 많았을 거예요. 현빈이 기관총 들고 탈레반이랑 싸웠을 수도 있고요. 근데 저는 리얼리즘을 추구하기 때문에 액션 장면에서도 무조건 총 쏘고 사람들을 죽이기보다 개연성 있는 액션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실 탈레반이 굉장히 무자비한 집단이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살육, 처형 장면을 보여줄 수도 있었지만 그 잔혹성이 영화의 결에 맞진 않는 것 같아서 최대한 간접적으로만 표현했어요. 임순례의 액션은 명분이 있고, 웬만하면 사람을 죽이지 않는 액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무엇보다 임 감독의 첫 블록버스터인 동시에 국내에서 여성 감독이 만든 첫 대규모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도 '교섭'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가 남성 위주의 영화계에서 약 30년 가까이 지켜온 자리는 수많은 여성 감독들에게 힘이 됐고 나아가 한국 영화계의 발전을 이끄는 동력이었다. 임 감독은 "여성영화인 축제에 갔더니 '언제적 임순례냐, 아직도 임순례냐'고 농담하시더라.(웃음) 후배 감독들이 저를 넘어가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벌써 26년 정도 됐네요. 지금까지 연출해온 작품들 모두 소재, 규모는 다 달랐지만 그래도 뭔가 관통하는 게 있다면 한국 사회에 대한 애정,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같은 게 아닐까요. 많은 관객분들이 그런 면을 좋아해 주셔서 근근이 이어갈 수 있었어요. 제가 처음 영화 일을 시작했을 땐 지금이랑 정말 달랐죠. '세 친구'를 할 때만 해도 여성 감독은 저 혼자였고요, 일단 여성 스태프도 거의 없었어요. 전체 스태프가 30~40명이면 그중 서너명 정도만 여자였죠. 지금은 스태프 성비가 웬만하면 5대 5에요. 여성이 더 많을 때도 있고요. 굉장히 달라졌죠. 그래도 이제 상업영화에서 많은 여성 감독들이 자리잡았고 한 10년 전부터 졸업작품을 보면 정말 뛰어난 여학생들이 많아요. 근데 이분들이 산업으로 들어오는 확률은 너무 떨어지죠.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투자, 배급 시스템의 문제가 커요. 보통 여성 감독들이 액션 블록버스터보다는 일상적인, 작은 이야기들을 다루니까 일정 관객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그들이 산업으로 흡수된다 해도 큰 예산에 동참하기보다 중저예산급에 머무르니까요. 투자배급사들이 여성 감독들에게 좀 더 길을 열어줘서 많은 분들이 메이저 산업으로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그들의 재능과 다양성이 한국영화를 풍요롭게 하고 살찌울 것이라고 믿어요."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eun@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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