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희 별세, 시처럼 영화처럼 살다 떠났다(종합)

성정은 스타투데이 기자(sje@mkinternet.com) 2023. 1. 2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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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정희(본명 손미자)가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별세했다.

윤정희는 1960∼1970년대 한국영화를 이끈 1세대 여배우이자 영원히 '현역 배우'로 살고 싶어했던 영화인이다.

1944년 부산에서 태어난 윤정희는 조선대 영문학과 재학 중 신인배우 오디션에서 1200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발탁돼 19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시'는 배우 윤정희의 마지막 작품으로 2011년 LA비평가협회 등 여러 해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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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희. 사진|스타투데이DB
배우 윤정희(본명 손미자)가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별세했다. 향년 79세.

영화계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간 알츠하이머병을 앓아오던 윤정희는 이날 새벽 숨을 거뒀다. 유족으로는 유명 피아니스트인 남편 백건우(77)씨와 바이올리니스트인 딸 백진희(46)씨가 있다.

윤정희는 1960∼1970년대 한국영화를 이끈 1세대 여배우이자 영원히 ‘현역 배우’로 살고 싶어했던 영화인이다. 60년대 문희, 고(故) 남정임과 함께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를 연 은막의 스타다.

1944년 부산에서 태어난 윤정희는 조선대 영문학과 재학 중 신인배우 오디션에서 1200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발탁돼 19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청춘극장’은 서울 개봉관 한 곳에서만 27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고, 그해 대종상영화제 신인상, 청룡영화상 인기 여우상을 받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듬해 작품 ‘안개’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장군의 수염’(1968), ‘신궁’(1979), ‘저녁에 우는 새’(1982), ‘위기의 여자’(1987), ‘만무방’(1994)을 비롯해 ‘안개’, ‘그리움은 가슴마다’, ‘지하실의 7인’, ‘독짓는 늙은이’, ‘무녀도’, ‘효녀 청이’, ‘화려한 외출’, ‘위기의 여자’ 등 300여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한 당대 최고의 은막 스타 중 하나다.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60∼70년대 대종상·청룡영화상·백상예술대상에서 연기상, 인기 여우상 등을 20여 회나 받았다.

윤정희. 사진|스타투데이DB
‘만무방’ 이후 활동이 뜸했던 윤정희는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로 영화계에 복귀해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기도 했다. ‘시’는 배우 윤정희의 마지막 작품으로 2011년 LA비평가협회 등 여러 해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시’는 홀로 남겨진 손자를 돌보는 예순 넘은 노인 미자가 문화센터의 시 쓰는 강의를 듣는 이야기로, 윤여정은 미자를 연기했다. 공교롭게도 극중 미자는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였다.

윤정희는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1976년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한 이후 프랑스에 거주하며 문화예술계 ‘잉꼬부부’로 불렸다. 독일 뮌헨에서 윤이상 감독의 오페라 ‘심청이’를 보러 갔다가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는 러브스토리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곱디 곱던 윤정희는 최근 10여년 간 알츠하이머병를 앓아 안타까움을 샀다. 2021년에는 윤정희의 동생이 백건우가 윤정희를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국민청원 글을 올려 가족사가 세간에 오르내렸다. 백건우 측은 이를 부인했다.

알츠하이머 투병 중에도 윤정희는 연기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2010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아흔 살까지 배우를 하는게 소원”이라던 윤정희는 2016년 한국영상자료원이 마련한 데뷔 50주년 기념행사에서도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카메라 앞에 서겠다”, “제 직업은 영원하다”며 배우 활동 의지를 드러냈다.

1973년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파리 제3대학에서 영화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에는 프랑스 정부에서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받았다.

고인은 각종 영화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 몬트리올영화제 심사위원(1995), 제12회 뭄바이영화제 심사위원(2010), 제17회 디나르영화제 심사위원·청룡영화상 심사위원장(2006)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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