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의 야심찬 SF 도전 '정이', '설국열차' 추월하나?

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2023. 1. 2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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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정이', 사진제공=넷플릭스

올해 설 연휴 기간에 맞춰 넷플릭스가 공개하는 한국 영화는 연상호 감독의 SF 영화 '정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영화 중에서 꼽자면 SF 추격 스릴러 '사냥의 시간'(2020), 스페이스 오페라 '승리호'(2021), 이은 세 번째 SF작품이다. 앞의 두 영화는 넷플릭스가 판권 구매 형식으로 공개한 작품이기에 엄밀히 따지자면 넷플릭스가 기획 및 제작 지원한 첫 오리지널 SF 한국 영화는 '정이'인 셈이다.

앞서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공개 하루 만에 넷플릭스 드라마 부문 전 세계 시청 순위 1위에 오르며 글로벌 흥행을 입증한 바 있다. 그의 두 번째 넷플릭스 연출작 '정이'는 연상호 감독의 첫 SF 도전작으로 알려졌지만, SF 장르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작품이라고 해야 옳다. 초능력(염력)을 다룬 영화 '염력'(2018), 한국형 좀비 아포칼립스 영화 '부산행'(2016)과 '반도'(2020), 초자연현상을 다룬 판타지 스릴러 '지옥'까지 SF 범주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온 연상호 감독은 SF 중에서도 사이버펑크와 밀리터리 SF를 결합한 '정이'를 내놓았다.

'정이', 사진제공=넷플릭스

가까운 미래,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해 인류는 우주로 이주 계획을 세운다. 수십 년에 걸쳐 지구와 달 궤도면 사이에 80여 개의 대규모 이주지 '쉘터'를 만들고 안착할 즈음, 일부 쉘터가 '아드리안' 자치국을 선포하고 지구와 다른 쉘터를 공격하는 반란이 일어난다. 나머지 쉘터들은 연합군을 조직해 아드리안에 맞서고 이들은 40년째 내전을 이어가는 중이다. 연합국 지도부와 결탁한 군수회사 크로노이드는 연합군의 전설적인 영웅이자 35년 전 마지막 작전 수행 도중 목숨을 잃은 한국인 용병 윤정이(김현주)의 뇌 데이터를 복제해 최고의 전투 용병 AI(인공지능)를 개발하려 한다. 

제목 '정이'는 이 개발 프로그램의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는 '정이'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크로노이드 연구소를 배경으로 연구소 팀장 서현(강수연)과 연구소장 상훈(류경수)이 전투 AI 로 개발한 정이를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결국 수십 년째 성과를 맺지 못하는 프로젝트를 크로노이드가 폐기하기로 결정하면서 이야기의 흐름은 '정이 구출 작전'으로 바뀐다. 

'정이', 사진제공=넷플릭스

알려진 대로 '정이'는 강수연의 10년 만의 복귀작이자 유작이다. 지난해 1월 촬영을 마치고 5월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 고인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담긴 작품이어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정이의 딸이자 프로젝트를 이끄는 서현을 연기한 강수연은 모녀 서사로 풀어낸 이 SF의 안내자 역할을 영화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수행한다.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는 캐릭터 해석력에서 연기 경력 50년의 내공과 대배우의 위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한국 배우 최초로 '월드 스타' 칭호를 받은 배우가 글로벌 OTT를 통해 재조명되는 기쁨을 직접 누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짙게 든다. 

연상호 감독의 '지옥'을 비롯해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트롤리' 등 장르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하는 김현주의 새로운 모습도 '정이'에서 만날 수 있다. 로봇과 싸우는 용병으로 등장한 첫 장면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김현주는 어린 딸을 위해 전장에 나가야만 하는 엄마, 실험체가 되어 고통받는 AI 등 캐릭터의 복합적인 모습을 탄탄한 연기력으로 소화했다. '반도'의 이정현에 이어 장르물과 만난 배우의 최적화된 변신을 유심히 지켜볼 기회다. 

'정이', 사진제공=넷플릭스

이처럼 강수연과 김현주, 두 명의 걸출한 배우가 참여하면서 '정이'의 핵심은 단단해졌다. 아픈 딸을 살리기 위해 인간 대우를 포기한 엄마와, 엄마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딸의 이야기는 SF의 궁극적인 메시지인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띄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에 시작과 끝은 밀리터리 SF 스타일, 인간과 기계가 뒤섞이는 어두운 사회의 모습을 그린 '정이'는 한국에서 불모지나 다름없는 사이버펑크 장르를 시도한다. 

익숙한 SF의 주제와 다양한 SF 장르 구성에도 불구하고 '정이'를 온전한 SF 영화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기엔 여러 요소가 걸림돌로 작용한다. 도입부의 도돌이표 구성은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를 떠올리게 하고, 할리우드 SF 대표작들과 겹치는 일부 캐릭터와 이미지들, 악덕 기업의 비윤리적 결정 같은 내용 등이 '정이'에 기대하는 한국 SF만의 참신함과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러닝타임의 운용도 아쉽다. 인물들의 상황과 이해관계, 갈등 구조를 설명하는 화법은 친절하긴 하지만, 후반 20분에 액션을 몰아버린 탓에 이전까지 차곡히 쌓아 올린 의도가 힘을 잃는 역효과가 발생한다. 

결론적으로 '정이'는 한국 SF 영화의 한계를 말끔히 해소한 작품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럼에도 SF 장르를 향한 연상호 감독의 꾸준한 시도는 인정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올해 개봉을 기다리는 김용화 감독의 SF 대작 '더 문', 김태용 감독의 SF 로맨스 '원더랜드', 강형철 감독의 초능력 소재 SF '하이파이브' 또한 한국 SF 영화의 발전에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정이', 사진제공=넷플릭스

국내 창작자들이 무한대로 상상력을 쏟아낼 수 있는 매력적인 장르 SF에 대거 도전 중이라는 점은 한국 SF의 성장을 시사한다. SF 장르로 활로를 모색하는 OTT 플랫폼들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김지운 감독(닥터 브레인,애플 TV+), 이준익 감독(욘더,티빙)이 SF 시리즈를 연출했다.

넷플릭스 역시 '좋아하면 울리는'(2019), '보건교사 안은영'(2020), '고요의 바다'(2021), '글리치'(2022) 등 SF 요소가 두드러진 시리즈를 꾸준히 내놓고 있다. 앞으로도 SF 장르에 대한 지속적인 개발이 이어져 보편적인 장르로 자리 잡는다면, 한국 SF 걸작 '설국열차'(2013) 이후로 10년의 기다림을 끝낼 수 있는 작품이 조만간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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