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영웅 vs 영웅, 영화부터 뮤지컬까지 터졌다[영웅의 시대]

2023. 1. 1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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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뮤지컬)와 스크린(영화)으로 소환된 안중근의 삶이 이른바 ‘쌍끌이’로 ‘영웅시대’를 써내려가고 있다. 사진은 영화 ‘영웅’[CJ ENM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대한의 국모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대한의 황제를 폭력으로 폐위시킨 죄, 을사늑약과 정미늑약을 강제로 체결케 한 죄, 무고한 대한의 사람들을 대량 학살한 죄,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누가 죄인인가…” 주저함도 없이 단호하게, 결연한 눈빛으로 당당하게,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15가지 이유’를 열거했다. 예능과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된 명 넘버(노래)의 탄생은 ‘재판 기록문’에서 비롯됐다. 그 노래가 다시 울려퍼지고 있다.

1909년 10월 26일, 시계는 ‘그날’을 향해 달려간다. 안중근과 11명이 ‘단지동맹’으로 조선의 독립을 결의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거사’를 도모한 뒤 서거하기까지의 이야기.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의 기록이다. 무대(뮤지컬)와 스크린(영화)으로 소환된 안중근의 삶이 이른바 ‘쌍끌이’로 ‘영웅시대’를 써내려가고 있다.

뮤지컬·영화 ‘영웅’ 쌍끌이 흥행

뮤지컬 ‘영웅’과 이 작품을 원작으로 태어난 영화 ‘영웅’이 지난달 21일 동시 개막했다. 개봉 5주차에 접어든 영화 ‘영웅’은 26일 연속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중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영웅’은 개봉 4주차 누적 관객수 260만4762명을 동원했다.

올해로 9번째 시즌을 맞는 뮤지컬 ‘영웅’은 개막 전부터 대부분 매진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국내 최대 티켓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에 따르면 뮤지컬 ‘영웅’은 전체 뮤지컬 중 예매율 2위에 올라있다. 영화와 뮤지컬 모두 배우 정성화가 안중근을 연기한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신화이자 자존심으로 불리는 뮤지컬 ‘영웅’은 오직 ‘콘텐츠의 힘’으로 관객들을 공연장으로 불러왔다. [에이콤 제공]

두 편의 콘텐츠가 ‘탄생의 태동’을 보인 것은 10여년 전이다. 제작사 에이콤에 따르면 뮤지컬 ‘영웅’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 거사 100주년에 맞춰 2009년 10월 26일 첫선을 보였다. 윤홍선 에이콤 대표는 “초연 이후 몇 년쯤 지나 뮤지컬을 관람하고 감명받은 윤제균 감독의 제안으로 영화 제작이 결정됐다”고 말했다.

영화가 관객과 만나기까지는 무려 13년이 걸렸다. 제작기간만 해도 2년 4개월. 시나리오 개발 과정을 거쳤고, 촬영은 2019년 9월 돌입, 3개월 14일간 진행됐다. 당초 2021년 개봉 예정이었으나, 팬데믹으로 미뤄져 ‘동시 개막’의 ‘쌍끌이’를 완성하게 됐다. 영화 ‘영웅’은 ‘대한민국 최초의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라는 수사가 붙는다. 제작사에선 윤제균 감독의 ‘용기와 결단력’이 영화 ‘영웅’의 작업을 이끌었다고 보고 있다.

두 작품의 동시 개막은 현재까지 긍정적 상승 효과를 이루고 있다. 윤 대표는 “공연을 본 관객들은 커진 스케일로 화려해진 영화가 궁금해져 영화관을 찾고, 반대로 영화를 본 관객들은 현장감과 배우의 디테일한 몸짓, 무대의 전체적인 구성을 즐길 수 있는 공연도 궁금하다는 반응을 보인다”며 “두 작품이 시너지를 내며 공연과 영화 모두 관람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영웅’ vs 뮤지컬 ‘영웅’…같지만 다르다?!
2009년 초연한 뮤지컬 ‘영웅’은 아홉 번의 시즌을 맞으며 세대를 초월한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에이콤 제공]

같지만 다른 두 작품의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본적으로 영화 ‘영웅’은 뮤지컬 원작을 충실히 따른 작품이다. 영화적 상상력과 미학이 더해지긴 했으나 다른 무엇도 아닌 ‘뮤지컬’이 원작이 된다는 점이 이 영화의 기장 중요한 포인트다.

원종원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공연영상학과 교수는 “‘레미제라블’, ‘맘마미아’, ‘위대한 쇼맨’ 등 뮤지컬 영화가 한국에서도 사랑받았고, 세계적인 시장에서도 뮤지컬 영화는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지켜본 만큼 국내에서도 뮤지컬과 영상의 결합은 시간 문제였다”며 “뮤지컬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영화의 등장이 한국에서도 자리잡을 수 있는 중요한 시기가 왔다”고 봤다.

이미 미국 할리우드에선 1950~80년대 사이 뮤지컬 영화가 큰 인기를 누렸다. 일찌감치 무대를 영상화하는 실험이 시작됐고, ‘영상 미학’을 추구하며 새로운 콘텐츠로 만들어갔다. 지난 몇 년 사이 등장한 ‘뮤지컬 영화’에는 공통된 특징이 나타난다. “무대를 대체하는 콘텐츠가 아닌 보완재로 윈윈한다”는 것이 원 교수의 설명이다.

영화 ‘영웅’은 뮤지컬보다 서사가 더 촘촘해져
뮤지컬 ‘영웅’의 만두가게 장면 [에이콤 제공]

10여년간 장수한 ‘스테디셀러 콘텐츠’인 뮤지컬 ‘영웅’과 그것을 영상으로 옮긴 영화 ‘영웅’의 강점과 매력은 서로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영화는 뮤지컬이 미처 다하지 못한 ‘서사’를 채워 인물 간의 관계를 강화하고, 각각의 캐릭터마다 개연성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라이브 공연에서의 무대 전환, 대사 없이 이어지는 군무, 대사를 대신하는 길고 중요한 넘버(노래)의 방대한 양으로 발생하는 뮤지컬 대본의 여백을 촘촘히 채웠다.

이 과정에서 뮤지컬에선 다루지 않은 ‘회령전투’ 장면이 추가됐다. 일본군 전쟁포로를 풀어준 안중근의 선택으로 독립군의 기지가 노출돼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 장면이다. 뮤지컬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가족과의 일화도 영화에선 중요하게 다뤄진다. 아들이자 남편, 아버지인 ‘평범한’ 안중근의 고뇌와 갈등이 그려진다. 안중근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해 ‘영웅의 탄생’을 보다 극적으로 다뤘다.

영화는 뮤지컬이 미처 다하지 못한 ‘서사’를 채워 인물 간의 관계를 강화하고, 각각의 캐릭터마다 개연성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CJ ENM 제공]

영화는 또 뮤지컬과 달리 만두가게 남매를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설정했다. 뮤지컬 속 만두가게 링링은 영화에선 마진주 캐릭터로 나온다. 링링은 안중근을 향한 외사랑을 품은 역할이지만, 영화에선 이러한 설정은 지웠다. 때문에 뮤지컬 넘버 ‘사랑이라 믿어도 될까요’를 불러주는 대상도 달라지게 된다.

‘빠진 넘버’도 있고, ‘새로 생긴 넘버’도 있다. 뮤지컬엔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무려 31곡의 주옥같은 음악이 흐른다. 웅장하고 장엄한 관악기가 만드는 생생한 라이브 연주와 각각의 캐릭터와 상황을 절묘하게 살리며 감정을 끌어올리는 노래는 ‘영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영화에선 31곡 중 ‘장부가’, ‘누가 죄인인가’, ‘그날을 기약하며’를 비롯해 주요 넘버 16곡이 쓰였다. 설희(김고은)가 부르는 ‘그대 향한 나의 꿈’은 영화를 위해 새로 만들어졌다. 윤제균 감독이 작사한 곡이다. 노래가 16곡이나 들어간 영화는 ‘뮤지컬 원작’의 정체성을 강력하게 살리려는 의도마저 엿보였다. 배우들이 노래를 마친 뒤 뮤지컬 무대에서처럼 마무리 포즈를 취하는 것은 다소 어색해 보였다. 지혜원 교수는 “영화로서의 리얼리티를 살릴 필요도 있는데, 뮤지컬 영화로의 측면을 더 부각한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영화, 대중성 위해 눈물 버튼·유머 코드 활용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를 부르는 장면은 뮤지컬과 영화가 큰 차이를 보이는 장면이다. 뮤지컬에선 담담하게 그려진 반면, 영화에선 공식 ‘눈물 버튼’으로 자리하고 있다. [에이콤 제공]

영화는 시도 때도 없이 ‘눈물 버튼’을 누르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유머 코드’를 뿌린다. ‘쌍천만 감독’인 윤제균식 흥행코드로 완성된 작품이다. 극적인 감정을 끓어 올려 영화 시작 20분 안에 관객을 울리고 시작하고, 영화 곳곳으로 폭풍같은 감정이 몰아친다. 익히 알고 있는 익숙한 내용임에도, 눈물을 쏟고 만다.

진지한 장면에서 찬물을 끼얹는 뜬금없는 유머 코드도 있다. 극 전개와 무관하게 등장하는 유머러스한 대사들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다. 원 교수는 “영화가 대중성의 포인트를 고민한 점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를 부르는 장면에서 나문희는 눈물을 흘리며 이 곡을 소화한다. 배우의 감정이 실려 슬픔이 극대화되는 장면이다. [CJ ENM 제공]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를 부르는 장면은 뮤지컬과 영화가 큰 차이를 보이는 장면이다. 뮤지컬에선 담담하게 그려진 반면, 영화에선 공식 ‘눈물 버튼’으로 자리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아들을 언제나 푸근하게 감싸주는 영화 속 어머니는 때문에 더 안쓰러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나문희는 조마리아 여사를 연기, 눈물을 흘리며 이 곡을 부른다. 지혜원 교수는 “배우들의 감정이 실려 슬픔이 더욱 극대화됐다”고 말했다. 설희 역을 맡은 김고은이 부른 넘버들도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무대(뮤지컬)와 스크린(영화)으로 소환된 안중근의 삶이 이른바 ‘쌍끌이’로 ‘영웅시대’를 써내려가고 있다. 사진은 영화 ‘영웅’[CJ ENM 제공]

영화 속 배우들은 의외의 노래 실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뮤지컬 무대의 배우들처럼 뛰어난 가창력을 가지고 있진 않다. 대신 그 빈틈을 연기로 채웠다. 원 교수는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는 도리어 노래 못하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의도적인 마케팅으로 무대와 영상을 공존하게 했다”고 말했다.

단지동맹·추격신·기차신…영화·뮤지컬 모두 ‘명장면’
한국 창작뮤지컬의 신화이자 자존심으로 불린다. 그 흔한 ‘스타 배우’도, ‘아이돌 출신’ 배우도 없었다. 2009년 초연 이후 아홉 번의 시즌을 이어오는 동안 뮤지컬 ‘영웅’은 오직 ‘콘텐츠의 힘’으로 관객들을 공연장으로 불러왔다. [에이콤 제공]

뮤지컬과 영화의 첫 장면. 무대는 푸른 자작나무 숲으로 관객을 이끈다. 비장한 표정의 안중근. 한 뜻을 모은 11명의 동지들과 러시아 연추 자작나무숲에서 왼손 무명지를 끊어 조선의 독립을 위한 결의를 다진다. 영화는 새하얀 대설원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눈밭에서 힘겹게 걸음을 옮겨 지난 시간을 회상하고, 금세 화면은 자작나무 숲으로 공간을 이동해 결연한 ‘단지동맹’을 그린다. 두 작품의 시작을 알리는 ‘강렬한 첫 장면’은 각각의 매력을 살리며 공통의 명장면이 됐다.

뮤지컬 ‘영웅’의 추격신. [에이콤 제공]

추격신과 기차신도 뮤지컬과 영웅이 자랑하는 ‘명장면’이다. 무대 위에선 박진감 넘치는 음악에 맞춰 위험천만한 철골 구조의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며 독립군과 일본 경찰의 추격신을 완성했다. 특히 독립군과 일본 경찰이 각각 선보이는 절도 있는 군무는 뮤지컬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장면이기도 하다. 오랜 연습으로 완벽한 합을 맞춘 앙상블 배우들의 노고가 느껴진다. 영화에선 라트비아에서 16일간 진행된 로케이션을 통해 이국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완성했다. 건물 지붕 위를 뛰어다니고, 화면 분할을 통해 안중근과 동지들이 처한 상황을 생생히 보여줬다. 이런 장면에서도 윤제균식 유머러스한 연출이 가미됐다.

뮤지컬 ‘영웅’의 기차신 [에이콤 제공]

기차신은 이 작품의 백미다. 특히 이 장면이 초연 때 완성된 것이라는 점은 더 놀랍다. 눈발이 휘날리는 것으로 달리는 기차를 보여주고, 무대의 가장 안쪽으로 기차를 배치해 이토 히로부미와 설희의 모습을 담아냈다. 무대 위 기차신의 강렬함을 모두 옮기기는 못했지만, 영화에서도 만주벌판을 달리는 기차의 모습을 CG와 실물을 교차해 보여줬다.

원 교수는 “무대는 라이브 엔터테인먼트로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지만, 영상은 시공을 초월한 미학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며 “특히 영화 ‘영웅’은 다양한 장면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작품에 접근해 같은 이야기와 음악이 나와도 뮤지컬과는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했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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