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기부 줄어든 무료급식소 “처음으로 설날 나눠줄 떡국 걱정”

김송이·김세훈 기자 2023. 1. 16. 21: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취약층 ‘한 끼 복지’ 한파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무료급식소 밥퍼에서 16일 오전 배식을 준비하는 모습.
서울 ‘밥퍼’ ‘토마스의 집’
“예전처럼 넉넉히 못 퍼줘”
푸드뱅크도 운영난 호소
“빵·떡집 폐업에 기부 격감”

16일 오전 11시,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무료급식소 ‘밥퍼’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급식소 입구부터 양념에 재운 고기 냄새가 났다. 된장국을 담은 냄비에서 김이 올라왔다. 반찬은 김치를 포함해 3가지다. 매일 급식을 먹기 위해 500~600명이 이곳을 찾는다. 혼자 살며 밥퍼를 수년간 이용해 온 천청자씨(83)는 “집에 있으면 밥 차려먹기 힘들다. 반찬도 다 사야 한다”며 “(밥퍼 밥은) 예전에도 좋았고 지금도 좋다”고 했다.

천씨에게 한결같이 따뜻한 끼니를 제공하는 밥퍼는 사실 고물가로 시름이 많다. 식재료부터 전기, 가스비 등 공공요금이 모두 오른 탓이다. 김미경 밥퍼 나눔운동본부 부본부장은 “전기료는 재작년 12월 50만원 정도였지만 작년 12월에는 거의 100만원에 육박했다”고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급식소 운영에 큰 도움이 되던 후원 기부도 줄었다. 김 부본부장은 “업체에 기부 제안서를 내는데 ‘올해는 어렵습니다’ 하는 기업들이 꽤 있었다”면서 “기업들이 비정기적으로 기부하던 목돈이나 마스크 단체기부가 있었는데, 그런 기부가 줄었다”고 했다.

취약계층의 끼니를 책임져 온 다른 무료급식소들도 비슷한 고민을 토로했다.

이날 오후 서울 영등포역 인근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에서 점심 배식을 마친 박경옥 총무도 “예전에는 명절에 떡국떡 걱정을 안 했는데 지금은 하고 있다. 연말에 들어온 떡으로 성탄절, 새해, 명절을 지내곤 했는데, 이제는 전처럼 풍성하게 못 끓여준다”고 했다. 후원이 전년보다 약 30% 줄어든 탓이다.

식재료를 기부받아 취약계층에게 제공하는 푸드뱅크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경제가 어려워져 기부가 줄었고, 부족한 식재료를 구매하기에는 물가가 너무 올랐다.

푸드뱅크는 주로 노년층이 이용한다. 이날 오후 기자가 찾은 구로구의 한 푸드뱅크에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발길이 이어졌다. 월 1회 방문에 4개 품목만 고를 수 있기 때문에 간장, 김 등 식료품을 신중하게 고르는 모습이었다.

경기 김포푸드뱅크에는 개인사업장의 기부가 많이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가게 운영이 어려워 빵집, 떡집 같은 업장들이 문을 닫은 탓이다. 김문영 김포푸드뱅크 팀장은 “개인사업을 하는 떡집이나 빵집의 기부가 40% 줄었다”며 “후원을 그만둔 업체가 3분의 1 정도 되고 기부량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고 했다.

후원금은 그대로지만 40%까지 오른 물가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곳도 있다. 서울에서 푸드뱅크를 운영하는 A씨는 “100개 사던 식용유를 70~80개로 줄였다. 고추장, 된장, 쌈장류도 많이 올랐다”면서 “기업들이 후원금을 유지만 하지 늘리려고는 하지 않아서 아쉽다”고 했다.

푸드뱅크와 무료급식소들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양질의 밥과 식재료를 공급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서울 구로구 내 학교와 기관 급식소에서 남은 반찬을 기부받아 인근 독거노인 등에게 배달하는 우주온 희망푸드뱅크 사무간사는 “기부받는 반찬 통이 8개였으면 지금은 5개, 6개로 줄었다”면서도 “부족하면 대신 옆에 가서 김이나 국으로 먹을 수 있는 레트로 식품이라도 꼭 사서 가져다 드린다”고 했다. 밥퍼의 김미경 부본부장도 “메뉴를 바꿀까 고심했다”며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는 심정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김송이·김세훈 기자 songyi@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