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아파트 사준다는 정부…세부 방안 놓고는 고심(종합)
LH 통한 미분양 매입도 검토…환매조건부 매입은 HUG 재정악화로 힘들 듯
건설사 고분양가 책임 정부가 떠안나 '도덕적 해이' 논란도 부담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정부가 건설시장 연착륙과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민간 미분양 아파트 매입을 검토중인 가운데, 매입 대상과 수준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와 취약계층의 주거안정, 주택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한 선제대응 차원에서 미분양 매입을 추진하지만 이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작지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현재 미분양 주택 절대량이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사들일만큼 많다고 보기 어렵고, 건설사의 높은 분양가와 수요 예측 실패의 책임을 정부가 대신 떠안는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매입임대 규모 확대, LH 준공후 아파트 매입 검토
정부가 미분양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은 분양시장 침체로 최근 미분양이 단기 급증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국토교통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정부 공공기관이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거나 임차해 취약계층에게 다시 임대하는 방안도 검토해달라"고 주문하면서 정부내 움직임이 빨라졌다.
1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 수는 5만8천27가구로 전월보다 22.9%(1만810가구) 증가했다. 미분양이 한 달 새 1만가구 이상 늘어난 것은 2015년 12월(1만1천788가구) 이후 6년 11개월 만이다.
이 가운데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은 전체 미분양의 12.3%인 7천110가구로 전월보다 0.5% 증가했다.
정부가 위험선으로 보는 미분양 물량은 대략 6만2천가구로 최근 가파른 증가 속도로 볼 때 12월 통계에서 이미 6만가구를 넘어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특히 건설업계가 그간 미분양 신고에 소극적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실제 미분양은 이보다 더 많을 전망이다.
정부는 현재 기존 매입임대사업을 확대해 민간 준공후 미분양을 매입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중이다.
매입임대사업은 LH가 도심 내 신축 또는 기존주택을 공공임대주택으로 매입해 무주택 청년·신혼부부·취약계층 등에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임대하는 것이다.
주로 1인 가구를 위한 다가구·다세대 등이 많고, 아파트 매입 비중은 10% 미만(지난해말 기준 9%선)이다.
국토부는 이 방식으로 현재 7천여가구가 넘는 준공후 미분양의 일부를 매입할 계획이다.
LH는 지난달 21일에도 서울 강북구 '칸타빌 수유팰리스' 전용면적 19∼24㎡ 원룸형 36가구를 각각 약 2억1천만∼2억6천만원대에 매입했다. 총 매입금액은 79억4천950만원이며, 분양가의 15% 할인된 금액으로 사들였다.
LH 관계자는 "이번 매입은 지난해 9월 매입임대주택 모집 공고 때 해당 단지의 사업 시행자 측에서 매입 요청을 해와 심사를 거쳐 결정했다"며 "통상적인 매입임대사업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LH는 이 아파트를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한다.
문제는 예산이다. 정부는 올해 매입임대주택 3만5천가구를 사들이기 위해 주택도시기금 6조763억원을 편성했다. 가구당 매입 예산은 평균 1억7천여만원으로 올해 목표치인 3만5천가구를 매입하기도 빠듯한 금액이다.
이에 따라 기금 예산을 증액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주택기금 예산은 20% 이내에서 국회 동의 없이 증액이 가능해 최대 1조2천억원가량은 정부 합의로 더 늘릴 수 있다. 이 경우 1조원 이상을 미분양 아파트 매입에 투입이 가능한 셈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30조원 규모의 '긴급 민생 프로젝트'에서 미분양 주택 매입을 통한 공공임대를 확대하자고 밝힌 만큼 국회 논의를 통해 예산이 대폭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국토부는 LH 자체 자금을 통해 추가로 미분양을 매입하는 방안도 타진하고 있다.
LH는 과거에도 2006년부터 2010년까지 급증하는 미분양을 해소하기 위해 채권발행 등을 통해 준공후 미분양을 사들인 전례가 있다. 감정평가를 통해 분양가의 60∼70% 선에 매입했다.
다만 LH는 현재 부채비율이 221%로 과거보단 크게 낮은 편이지만 정부가 지정한 채무위험기관으로 2026년까지 부채비율을 207%로 감축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어 자체 자금을 투입한 매입 물량을 크게 늘리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대신 LH의 직접적인 부채 부담을 덜기 위해 기업구조조정리츠 방식으로 준공후 미분양을 매입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환매조건부 매입 카드 또 꺼내나…"HUG 보증 부담 커 쉽지 않아"
정부는 준공전 공사중인 미분양 아파트 매입을 위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시행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환매 조건부 매입 시행 가능성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다.
HUG의 전신인 대한주택보증은 2008년부터 자체 자금을 통해 지방의 준공 전 미분양 매입을 시작했고 2010년에는 매입 규모를 3조원(2만가구)으로 늘리기도 했다.
문제는 HUG가 깡통전세와 전세사기 등에 따른 전세보증금반환 보증 가입이 급증하면서 보증 한도가 한계에 달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한 보증사고액도 지난해 1조원을 넘었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금융위기 당시 주택보증의 보증배수는 50배 한도에 22배 사용에 불과했지만 현재 HUG는 현 60배 보증배수에서 54배를 소진하며 국회에서 보증배수를 70배로 확대하는 입법이 진행중"이라며 "깡통전세와 전세사기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HUG 자체 자금으로 미분양 주택까지 매입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이달부터 준공 전 미분양 문제를 덜어주기 위해 5조원 규모의 미분양 대출보증도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환매조건부 미분양 매입 카드는 일단 '최악의 상황'이 아니면 가급적 배제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환매조건부 미분양 매입을 시행한 글로벌 위기 당시는 미분양 물량이 최고 16만6천가구(2009년 3월)로 현재의 3배에 달했고, 준공후 미분양은 5만가구로 현재의 7배였다.
다만 최근 규제지역 해제를 포함한 각종 규제완화에도 불구하고 미분양이 계속해서 증가할 경우 시장 선제대응 차원에서 전혀 배제할 순 없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미분양 매입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건설가의 고분양가와 수요예측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정부와 공기업이 떠안아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달 초 서울을 포함해 규제지역을 풀면서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명목으로 전매제한, 실거주 의무, 중도금 대출 제한, 무순위 청약자격 등의 규제도 대거 폐지함에 따라 둔촌 주공 등 일부 단지의 계약률도 기대 이상으로 높아진 상황이다.
정부는 미분양을 사주더라도 건설사의 자구노력이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매입 단가를 분양가 이하로 크게 낮추고, 환매 조건부 역시 업체가 HUG에 판 미분양을 되사간 뒤 시장에 다시 분양할 때는 분양가 이하로 팔도록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이용을 제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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