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다시 돌아온 일본 여행 ②

성연재 2023. 1.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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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에서 찾은 한국

(후쿠오카·오이타=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일본에서 한국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아온 곳 가운데 하나가 규슈다.

일본어로 질문을 했더니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대답하는 일본 젊은이들도 많았다.

규슈에는 한국 영향을 받은 요소가 매우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음식이다.

시원한 국물에 쫄깃한 곱창을 넣어 먹는 일본식 전골 모츠나베와 명란젓 등이 유명하다.

규슈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여전히 친절했고, 한국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다자이후텐만구 입구 [사진/성연재 기자]

한국인들로 붐비는 유후인

후쿠오카로 돌아오기에 앞서 오랜만에 오이타현의 유명 관광지 유후인에 들렀다.

유후인은 특히 한국인들의 겨울 여행지로 주목받던 곳이다.

대부분의 패키지 여행객들이 당일치기로 잠시 들르는 유후인은 사실 알고 보면 일본의 대표적인 온천 지역이다.

뜨끈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온천 료칸들이 많다.

이곳이 큰 인기를 끈 것은 유후다케 산자락에 자리 잡은 긴린코 호수 덕분이다.

유후인 마을 한쪽에 있는 긴린코 호수는 아침에 주변으로 자욱한 물안개가 피어올라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호수를 유영하는 물고기 비늘이 석양에 비칠 때 금색으로 보인다고 해서 긴린코(金鱗湖)라는 이름을 얻었다.

석양은 아니었지만, 물가를 지나치는데 때마침 금빛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이 보였다.

유후인 거리에서 음식을 먹는 일본인 관광객들 [사진/성연재 기자]

인근에 있는 아기자기한 잡화점과 공예품점, 갤러리와 찻집 등은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끄는 곳이다.

2019년에는 '노재팬' 영향으로 한때 "한국인들이 거의 찾지 않는다"는 르포 기사가 쏟아지던 대표적인 장소 가운데 하나다.

좁은 인도를 따라 형성된 먹거리 가게를 지나치다 보니 한국말이 계속 들렸다.

행인 절반이 한국인처럼 느껴질 정도로 한국인 관광객이 많았다.

경남 의령에서 온 한국인 관광객 백옥영 씨는 "일본 여행을 처음 왔는데 한국인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호숫가의 인도교 위에서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던 일본인 여성 오가사와라 유 씨의 모습이 보기 좋아 사진 촬영을 요청했더니 흔쾌히 모델이 돼 줬다.

그는 영어로 한 질문에 놀랍게도 한국말로 대답했다.

K-POP과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 대학교에서 2년간 공부를 했다고 한다.

도쿄의 IT 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주말을 이용해 친구들과 규슈로 여행을 온 터였다.

그는 K-POP 스타 샤이니 팬이라고 했다. 대학교 때 한국에서 온 유학생 친구들도 많다고 전했다.

다자이후텐만구 앞에서 맛본 디저트 [사진/성연재 기자]

다자이후도 한국 물결

후쿠오카로 돌아와 전철로 40분 거리에 있는 다자이후를 방문했다.

다자이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학업의 신이 있는 '다자이후텐만구'라는 신사다.

이 때문에 수험생들이 합격을 기원하기 위해 많이 방문하곤 한다. 그 덕분인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신사로 들어가는 길 양편에는 기념품 가게와 팥앙금이 들어가 있는 전통 디저트 가게들이 도열해 있어서 입과 눈이 즐겁다.

한 전통 디저트 가게를 들어갔는데, 정원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일본 정원 문화의 진수가 느껴져서 깜짝 놀랐다.

정원 한쪽에 있는 고풍스러운 건물은 예전에 떡을 만들기 위해 이곳을 드나들던 상인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여관 건물이었다고 한다.

다자이후텐만구 방문에 가장 좋은 시기는 2월 중순에서 3월 중순 사이의 매화가 필 무렵이지만 겨울에도 따스해 들러볼 만하다.

신사 내부를 둘러보는 데는 10∼20분이면 족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모습은 일본 월드컵팀의 선전을 바라는 부적을 판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100엔을 넣으면 운세를 적은 부적 하나를 받는다.

재미 삼아 한번 사 봤더니 '대길'(大吉)이라고 적힌 문구가 나왔다.

모두에게 나오는 문구는 아닌 듯해 기분 좋게 신사를 나왔다.

한국말을 하는 교토출신인 여고생 [사진/성연재 기자]

돌아 나오는 길에 한 여고생이 길가에서 오차즈케를 먹고 있는 장면이 재미있어 일본어로 질문해봤더니 그 학생도 한국어로 답을 했다.

교토에서 수학여행으로 이곳을 찾은 유즈라는 학생이었다.

그도 역시 한류 팬으로,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다자이후까지 온 김에 '인연의 신'이 있다는 가마도 신사도 찾아가 봤다.

이곳은 현지인들만 아는 곳이라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 신사는 단풍이 아름답다고 해서 찾아본 곳이었는데, 때마침 신혼부부가 웨딩촬영하고 있었다.

붉은 단풍을 배경으로 도리이 앞에 서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일본다운 느낌을 강하게 줬다.

가마도 신사에서 만난 '재회의 나무' [사진/성연재 기자]

이곳에서 찾은 또 하나의 큰 수확은 신사 오른쪽에 심어진 작은 '재회의 나무'를 발견한 것이었다.

또다시 만나고 싶은 누군가가 있는 사람들은 이 나무 앞에서 그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재회의 나무 앞에 매어진 붉은 실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 붉은 실은 '운명의 붉은 실'이 인연이 있는 사람을 이어준다는 중국 고대 설화를 따른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보이지 않는 붉은 실로 연결이 돼 있고, 운명이 그 실을 당겨 서로를 만나게 해 준다는 것이다.

황혼에 붉게 물든 실들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였다.

재회의 나무 앞에 매달린 '운명의 붉은 실' [사진/성연재 기자]

서로 영향 주고받는 양국

최근 몇 년 새 후쿠오카를 비롯한 규슈에는 한식당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식당 외관과 메뉴를 보면 어쩌면 이곳이 한국의 음식점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닮았다.

규슈에서 한식을 즐기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보면 한국의 먹거리 문화도 일본에 깊숙이 침투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다자이후텐만구 앞에서도 한국 음식점을 우연히 발견했다.

다자이후 한식당에서 만난 돌솥비빔밥 [사진/성연재 기자]

메인 도로에서 살짝 비켜난 곳에 자리 잡은 한식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국인 주인이 반갑게 맞는다.

가장 잘나가는 메뉴를 물었더니 돌솥비빔밥이라고 한다.

돌솥비빔밥 하나를 시키며 이것저것 물어보니 음식점 주인은 일본으로 건너온 지 15년째라고 한다.

처음보다 한식을 먹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늘었는데, 최근 팬데믹 기간을 통해 증가세가 가파르다고 한다.

김밥 등 한식을 시켜놓고 먹는 일본 여성들이 있어 물어보니, 역시 한국 드라마 등 한류 문화 덕분인지 한국 먹거리가 부담이 없어 한 달에 한두 번씩 한식을 즐긴다고 했다.

후쿠오카 치킨집에서 한국을 응원하던 일본인 여학생들 [사진/성연재 기자]

후쿠오카로 돌아왔더니 때마침 2022 월드컵 한국-가나전이 펼쳐지는 날이다.

급히 수소문해보니 네네치킨 후쿠오카점이 있다. 단체석을 예약해두고 갔더니 이미 응원전으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라 있다.

한국인들 틈에서 열심히 한국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일본인 여성들이 있어 호기심이 발동했다.

물어보니 가와베 후카 씨 등 3명은 친구 사이로, 경남 김해에서 1년간 유학을 했던 경력이 있다고 한다.

K-POP과 한류를 무척이나 사랑해 이날 월드컵 응원전을 펼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멘타이코'(명란)를 활용한 명란 연어알 계란말이 덮밥 [사진/성연재 기자]

한국 영향받은 후쿠오카 대표 음식 멘타이코

다자이후 여행을 끝낸 뒤 후쿠오카로 돌아왔다. 후쿠오카의 대표적 음식 2가지는 '모츠나베'(もつ鍋)와 '멘타이코'(明太子)다.

규슈에서는 명란을 멘타이코라고 부른다.

일본 전역에서 명란을 이렇게 부르는 것은 규슈 지역밖에 없다.

이런 명칭을 얻게 된 것이 우리의 '명태'에서 따온 것이라는 설이 많다.

한국에서 명란을 먹는 것을 보고 규슈 쪽에서 먹거리를 개발하면서 이와 같은 이름이 영향을 미치게 됐다는 것이다.

120∼140년 전 우리의 개항과 함께 한일교류가 이뤄지면서 명란이 일본으로 건너갔고, 이에 매료된 일본인들이 명란 관련 음식을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숙성 절임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멘타이코는 가쓰오부시와 설탕, 맛술이 들어 있어 감미롭다.

내친김에 멘타이코 전문점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하카타 지역에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멘타이코 전문점은 추운 날씨에도 식당 바깥에 줄을 선 사람들이 30여 명이나 됐다.

한참 기다려 들어가 앉아 대표메뉴인 명란 연어알 계란말이 덮밥을 시켰다.

밥 위에 풍성한 다마고 야키(계란말이)와 그 양옆에 연어알을 가득 담고, 마지막으로 명란젓을 통째로 올려놓은 메뉴다.

밥 위에 각종 해산물을 토핑으로 올린 해산물 덮밥을 말하는 '카이센동'의 한 종류다. 풍성한 계란말이와 명란젓이 한꺼번에 입속으로 들어가니 기름진 쌀밥과 함께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연어와 연어 덮밥' 메뉴도 인기다. 연어 회가 올려져 있기에 찬밥이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의 곱창전골과 유사한 모츠나베 [사진/성연재 기자]

한국의 곱창전골이 후쿠오카에…모츠나베

규슈 지방에서 즐겨 먹는 모츠나베도 한국의 영향을 받은 먹거리다.

후쿠오카 톈진역 지하에는 후쿠오카에서 곱창전골로 가장 유명한 오오야마 분점이 있다.

원래 하카타 본점에 갈 계획이었으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찬바람을 피할 수 있는 하카타역에서 먹기로 했다.

사실 오오야마 본점은 예약이 필요할 정도로 인기가 많지만 톈진역 지하상가는 예약이 거의 필요 없을 정도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모츠나베는 한국 곱창전골과 아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

국이 맑은 것이 특징이다.

매운 고추 양념이 안 들어가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냄비 한가운데에 일직선으로 부추가 죽 깔려 있다는 점이다.

국자를 저어 곱창을 건져내 먹어보니 한국에서 먹었던 곱창전골 맛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곱창전골은 전쟁 등으로 식량이 없을 때 곱창을 식재료로 활용한 데서 유래한 음식이라고 한다.

세트를 주문하면 멘타이코와 샐러드도 함께 나와 식탁을 풍성하게 해준다.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스모츠'(すもつ)라는 곱창 초절임이었다.

곱창을 식초에 절인 음식이어서 느끼함을 없애고 상큼하고 고소한 느낌을 줬다.

소나 돼지, 닭 등의 내장을 정성스럽게 삶아 특유의 '폰즈 소스'를 발라 먹는 후쿠오카 음식이다.

특히 이 폰즈 소스는 감귤류 과즙과 식초를 섞은 것으로 매우 새콤달콤하다.

한마디로 맥주를 부르는 맛이다.

후쿠오카를 다시 찾을 이유를 찾는다면 이 스모츠와 폰즈 소스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3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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