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기자 초강수] 사람 키만큼 쌓인 낙엽…갑작스런 눈발에 급탈출

한효희 2023. 1. 12.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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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사람도 모르는 숨겨진 폭포…윗황이골 개척 산행기
낙엽 속은 꽤 따뜻하다. 사진 제공 성예진.

강원도 오대산과 방태산 주변 백두대간 일대에는 깊고 넓은 산지가 발달해 발길이 미치지 않는 산과 계곡이 많이 남아 있다. 처음에는 양양 법수치계곡을 통해 복룡산(1,032m)을 오르려했지만 15년 전 월간<山> 르포 기사가 있었고, 이미 세간에 오지산행지로 나름 이름이 알려진 곳이라 다른 대상지를 물색했다. 주변을 샅샅이 뒤지던 중 구룡령에서 북쪽으로 뻗은 미천골이 눈에 띄었다.

불바라기 약수로 유명한 미천골은 발원지인 응복산(1,359m)까지 길이만 10km에 달하는 깊은 계곡이다. 조봉(1,184m)은 미천골에 물을 내어주는 산 중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조봉 남쪽으로 자연휴양림에서 오를 수 있는 등산로가 있지만 북쪽으로는 계곡이 실핏줄처럼 얽힌 등산로 없는 산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이 중 기자의 눈길을 끈 곳은 조봉 북서쪽으로 뻗은 구불구불하고 깊은 계곡이었다.

순백의 도화지처럼 남아 있는 이 계곡은 '윗황이골'이다. 국립공원 지역이거나 자연보전구역이 아니기 때문에 출입이 금지된 곳은 아니지만 인터넷에서 오직 한 개의 산행기만 찾을 수 있었다. 보아하니 계곡 초입에 '해담폭포'라는 알려지지 않은 폭포도 있는 것 같았다. 뜯지 않은 선물상자를 발견한 것처럼 부푼 마음을 안고 양양으로 향한다.

갑작스레 닥친 한파에 계곡이 반쯤 얼었다.

인적 드문 계곡의 숨겨진 폭포

이번 산행에는 박기완·성예진씨가 함께한다. 둘은 지난 8월 포천 도마치계곡 가리산 개척 산행에도 함께한 경력자들이다. 함께 호흡을 맞춰본 적 있어서 출발 전부터 마음이 편하다. 성균관대 산악부 출신인 박기완씨는 모교 한문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성예진씨는 백두대간 단독 일시종주에 성공한 파워 우먼이다.

주말과 달리 평일의 서울양양고속도로는 한산하다. 서울에서 2시간 만에 양양 미천골에 도착했다. 미천골은 서양양IC 주변이라 접근성이 좋지만 주변에 식당도 별로 없고 마트도 없다. 몇 없는 식당 중 한 곳을 찾아 큰 기대 없이 막국수를 먹었는데 이게 웬걸, 살면서 먹어본 막국수 중 제일 맛있었다.

기분 좋게 식당을 나서서 일대에 하나밖에 없는 편의점으로 향한다. 시골 편의점이라 문을 닫았을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쾌재를 외치며 행동식과 물을 담는다. 예진씨가 편의점 주변을 둘러보더니 예전에 백두대간 종주할 때 이곳으로 하산해서 잠시 쉬어간 기억이 있다고 말한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순조로운 시작이다. 하늘은 쾌청하지만 며칠 전부터 갑작스레 시작된 한파에 기온은 낮다. 산행 시작지점은 서림교 부근의 작은 마을. 최대한 장비를 가볍게 꾸렸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배낭이 머리 위로 솟았다. 거기다 카메라 장비까지 더하니 무게가 이만저만 아니다. '어쩌겠어, 그냥 해야지'라고 속으로 되뇌며 계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개척 산행에서 가장 큰 고비는 들머리를 찾는 일이다. 보통 길이 묵었거나 민가에 가로막혀 들머리 찾는 데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산행은 천만다행으로 순조롭게 들머리를 찾을 수 있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계곡을 따라가니 이내 넓고 잘 닦인 산길이 나타난다. 좋은 길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미련한 걱정은 접어두고 현재의 축복을 즐긴다.

윗황이골에 숨어있는 해담폭포.

한겨울인데도 계곡에는 "쏴아쏴아" 물소리가 가득하다. 갑작스레 닥친 한파에 계곡이 반쯤 얼어 있다. 새하얀 얼음 사이로 푸른 물이 쏟아져 흐른다. 아담하고 부드러운 첫인상과 달리 계곡은 속으로 들어설수록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다. 좁고 깊은 협곡이 아득히 땅 아래로 꺼지고 가파른 암반이 솟구친다.

2~3m 높이의 폭포가 연달아 나타나는데 어느 것이 해담폭포인지 모르겠다. 수량이 많은 계곡이지만 사면을 따라 길이 잘 나있어 한겨울에 물에 빠질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댓 명이 횡대로 걸을 수 있을 만큼 넓은 길이지만 찾는 이가 없고 관리가 안 되는 것 같다. 곳곳에 커다란 나무가 쓰려져 길을 가로막고 있다.

말발굽처럼 구불구불한 계곡 하류를 따라간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저 멀리 물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순백의 얼음이 수직으로 길게 뻗어 있는 게 보인다. 길옆에 '해담폭포 정상'이라는 표지판이 서있다. 이제껏 아담한 폭포를 여럿 지나쳤지만 해담폭포는 딱 보자마자 '이거구나!'하는 생각이 들 만큼 독보적이다.

해담폭포 아래 소를 뒤덮은 얼음 결정.

낙엽 부비트랩에 당해 결국 입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계곡에서 이런 폭포를 맞닥뜨리다니. 탐험가가 되어 대단한 광경을 발견한 기분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한 콜럼버스의 기분이 이랬을까. 가슴이 두근거리고 짜릿하다. 이 정도 규모의 폭포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게 신기하다.

폭포 앞에 앉아 한껏 운치를 즐긴다. 날씨는 춥지만 다들 신나서 추운 줄도 모른다. 여름이었으면 바로 물에 뛰어들었을 텐데 아쉬웠다. 반쯤 얼은 폭포 사이로 계곡이 흰 포말을 뿜으며 쏟아져 내린다. 폭포 위로도 두세 개 정도의 짧은 폭포와 소가 이어진다.

해담폭포에서 조금만 더 가면 윗황이골과 아랫황이골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합류점에 양지바르고 평탄한 넓은 지대가 있다. 날씨가 따뜻하면 이곳에서 며칠 동안은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조봉 정상으로 가기 위해 오른쪽 윗황이골로 발걸음을 옮긴다.

계곡은 살얼음으로 뒤덮여 있고 와폭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상류로 오를수록 중간 중간 길이 끊어지고 계곡을 여러 번 넘나든다. 더군다나 낙엽이 온 천지를 뒤덮어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낙엽이 무릎까지 쌓인 건 예사다.

계곡 곳곳에 가슴 깊이의 낙엽이 쌓여 있다.

러셀하듯 낙엽을 헤치며 걷는데 갑자기 땅이 푹 꺼진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낙엽이 눈앞까지 쌓여 있다. 허망하고 신기해서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낙엽 속이 꽤 포근하고 따뜻하다.

낙엽 부비트랩에 몇 번 당하고 나니 걷는 게 조심스러워진다. 더군다나 낙엽 덮인 바닥에 돌멩이가 많아 자꾸 발에 걸린다. 발을 딛기 전에 스틱으로 바닥을 쿡쿡 찔러보며 확인한다. 산행 내내 세 명이 번갈아가며 "악! 윽! 오우 노우!"를 외친다.

비좁은 계곡 측면을 조심스레 건너오는데 "악"하는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기완씨가 땅인 줄 알고 낙엽 위로 발을 딛었는데 계곡이었던 것. 방수기능이 없는 트레일러닝화를 신은 탓에 단숨에 양말까지 다 젖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엎드린 기완씨가 "오른발만은 살려야 한다"며 울부짖는다. 추운 날씨에 갈 길이 먼데 걱정이 앞선다. "괜찮다"고 말한 그는 양말을 벗어 쭉 짠 뒤 산행을 이어간다.

계곡을 몇 시간이나 걸었는데 아직 3km도 못 왔다. 남은 거리는 7km. 마음이 조급해진다. 좁은 계곡은 구불구불하고 빙판이 많다. 길은 희미하고 자주 끊어진다. 아직 계곡이 완전히 얼지 않아서 마음 편하게 얼음 위를 걸을 수도 없는 상황. 이럴 때는 사진 촬영을 줄이고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가는 게 상책이다.

12월인데도 계곡을 흐르는 물이 많다.

변덕쟁이 날씨 때문에 탈출

중류로 접어드니 뱀처럼 구불구불하던 계곡이 곧게 펴진다. 수량도 적당히 줄어들어 운행에 속도가 붙는다. 상류에 이르자 지류계곡 합류점이 나타난다. 미리 계획한 루트에 따르면 여기서부터 두 계곡 사이 사면을 따라 주능선으로 오른다. 그런데 계곡 사이를 유심히 보니 표지기가 하나 걸려 있다. 계획한 루트가 맞아떨어졌다는 뿌듯함과 '도대체 누가 다녀간 거지'하는 궁금증이 공존한다.

계곡에서 사면으로 오르는 초반은 경사가 가파르고 낙석이 떨어져 내린다. 두 손 두 발 다 써서 클라이밍하듯 사면을 오르자 이내 경사가 완만해진다. 주능선까지 평탄하고 완만한 지대가 이어진다. 초반에는 표지기를 따라갔는데 이내 흔적이 사라진다. 주능선이 가까우니 앞만 바라보며 전진한다.

9부 능선 양지바른 곳에 주변이 넓게 벌목된 무덤이 나타난다. 무덤에는 큰 비석도 있고 말끔하게 관리가 잘되어 있다. 해발 1,000m. 등산로도 없는 이 첩첩산중에 누가 어떻게 무덤을 만들었는지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무덤을 지나자마자 갑자기 눈앞에 장벽이 나타난다. 크고 작은 바위가 빼곡한 너덜지대가 급경사를 이루며 버티고 서있다. 청량하던 하늘은 우중충하다. 하늘에서 비듬 같은 싸락눈이 흩날린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볼을 에는 찬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불어 닥친다.

일기예보에 눈 예보가 없었는데 하늘에선 엄연히 눈이 내리고 있다. 이미 바위 위에 하얗게 눈이 쌓였다. 우회할 길은 없는 상황. 정공법을 택한다. 미끄러운 바위와 잡목을 헤치며 한발 한발 사면을 오른다.

"낙석!"

후미에 있던 예진씨 옆으로 낙석이 스쳐지나간다. 한층 위축된 우리는 돌이 굴러 떨어지지 않게 고양이처럼 사뿐사뿐 오른다. 사면에는 코끼리만 한 나무가 쓰러져 있고 잡목이 무성하다. 앙상한 가지들이 엉겨 붙어 우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제발 그만해~"라고 울부짖으며 처절하게 오름짓을 이어간다. 끈질기게 붙잡고 있던 가지들은 마지막 순간에 우리를 놓아 주며 "찰싹" 뺨을 때린다. 분하고 괘씸한데 누구한테 화풀이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윗황이골 오르는 길에는 쓰러진 나무가 많다.

한참을 잡목과 씨름하고 나서야 주능선에 올랐다. 능선에 오른 기쁨도 잠시, 냉동실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찬바람이 사방에서 불어 닥친다. 바람막이를 껴입고 후드를 쓴다. 능선에 오르면 희미한 동물 길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런 흔적이 없다. 비좁은 능선에는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힌 잡목만 빼곡하다.

추위 속에서 잡목과 씨름하며 능선을 걷다 보니 이내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에 도착했다. 이곳에 배낭을 벗어두고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가는 길은 지도에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지만 인적이 드물고 길이 묵어서 헤매기 십상이다. 한두 차례 길을 놓치고서야 조봉 정상에 올랐다. 조망이 없는 정상에는 초라한 표지판 하나가 이곳이 조봉임을 알려 준다. 바람도 많이 불고 배가 너무 고파서 허겁지겁 되돌아간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정상에서 북서로 뻗은 등산로 없는 능선을 따라 원점회귀해야 한다. 날씨가 변덕을 부리는 상황인데 일부 대원의 방한대책이 미비하다. 게다가 능선에는 보나마나 잡목이 빽빽할 게 분명했다. 등산로 없는 능선에서 긴 시간 칼바람을 맞으며 하산하는 건 리스크가 높다. 계획을 수정해 등산로를 따라 미천골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하산길은 2~3km 거리로 짧지만 가파르다. 그런데 하산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하늘이 개기 시작하더니 이내 햇볕이 내리쬔다. 이 무슨 하늘의 장난이람. 껴입었던 옷을 하나둘씩 벗고 한층 가벼운 발걸음으로 하산한다.

지도상에는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는 길이지만 원시적이고 거칠다. 하산 길 곳곳에 표지판이 쓰러져 있고 낙엽이 두텁게 쌓여 어디가 길인지 찾기 힘들다. 적어도 최근 몇 주 동안은 다녀간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곳곳에 거대한 나무가 쓰러져 길을 가로막고 있다. 자연휴양림 등산로가 이렇게 관리가 안 되어 있다니 뭔가 이상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긴 시간 거친 산행을 하다 보니 피로가 이만저만 아니다. 빨리 산행을 끝내고 삼겹살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삼겹살만 떠올리며 희미한 길을 좇아내려가다 보니 저 멀리 도로가 보인다. 드디어 산으로부터 해방이다.

그런데 등산로 입구가 현수막으로 막혀 있다. 현수막을 자세히 보니 '등산로 폐쇄'라고 적혀 있다.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조봉 등산로는 2019년 태풍으로 인해 유실되어 지금까지 폐쇄된 상태다. 어찌됐든 모두가 안 다치고 빠르게 하산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산에서 벗어났지만 아직 산행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도중에 계획을 변경하는 바람에 원점회귀하지 못하고 미천골 한복판으로 떨어졌다. 하산지점에서 도로를 따라 9km가량 걸어가야 차를 주차한 산행들머리 마을이다.

찾는 이 없는 조봉 정상은 쓸쓸하다.

달리기는 실용적인 운동이다

20kg의 배낭을 메고 단단한 아스팔트길을 터벅터벅 걷는다. '두 시간은 걸어야겠지'라고 생각하다가 '이건 아니다'는 생각에 양양 콜택시를 검색해 전화해 본다. 세 곳에 전화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모두 퇴짜를 맞았다. 콜비만 4만 원. 그냥 단념하고 걷기로 한다.

평발인데다 양말이 땀에 젖어 금세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는 느낌이 든다. 걸음걸음마다 발이 불타는 것 같다. 고행하듯 고통을 인내하며 길을 걷다 문득 '왜 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가는 거지?'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배낭을 여기 두고 차를 타고 와 회수한다는 천재적인 발상이 떠올랐다.

모두가 이 기발한 생각에 동의하고 전봇대 뒤에 배낭을 벗어둔다. 하늘을 날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지만 여전히 발이 아프다. 길을 걷다 장난 반 진담 반으로 "한 명이 뛰어가서 차를 타고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기완씨가 "어! 그렇게 할까?"라며 진지하게 답한다.

기완씨는 요즘 달리기에 푹 빠져 있다. 매주 40km를 달리는 그는 얼마 전 트레일러닝 대회에도 출전했다. 기완씨에게 차키를 쥐어주고는 비장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그와 함께 뛰었지만 그의 날렵한 몸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아득한 길 사이로 사라졌다.

혼자서 터벅터벅 미천골을 걷는데 '선림원지'라는 곳이 나타났다. 신라시대 지어진 '선림원'이라는 절이 있던 터다. 지금은 3층 석탑과 석등만 남아 있다. '미천골'이라는 이름도 이 절에서 씻은 물이 계곡을 가득 채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끝없이 길을 걷다 발이 너무 아파서 계곡으로 내려섰다. 말 그대로 얼음장인 계곡물에 뽀얀 맨발을 집어넣는다. 발이 깨지는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못 걸을 것 같아 그냥 길바닥에 멍하니 서있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익숙한 검은색 차가 차가운 대기를 가르며 다가온다.

구원처럼 다가온 차는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차 문을 열자 따스하고 포근한 히터의 온기가 후끈 뿜어져 나온다. 부드러운 시트에 앉으니 몸이 녹아내린다. 붉게 상기된 얼굴을 어루만지며 휴대폰 지도앱을 켜 '삼겹살'이라고 적는다.

산행길잡이

들머리에서 정상까지 고도 1,000m가량 올라야 한다. 계곡에서는 희미하게 휴대폰 신호가 잡힐 때도 있다. 인적이 드물어 길이 묵은 곳이 많다. 양양군 서림리 서림교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서림교를 건너 작은 마을로 들어선다. 계곡을 따라가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계곡을 왼쪽에 두고 들판을 가로지른다. 들판 끝에서 계곡으로 내려서서 계곡을 따라 오른다.

계곡을 따라 조금만 가면 꽤 넓은 산길이 나타난다. 길은 넓고 뚜렷하지만 중간에 자주 끊기고 계곡을 넘어야 하는 구간이 여럿 있다. 길을 놓쳤을 경우 좌우사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축대가 쌓인 길이 보인다.

들머리에서 1.5km 지점에 '해담폭포 정상'이라고 적인 표지판이 있다. 해담폭포를 지나 200m쯤 가면 윗황이골과 아랫황이골이 합류한다. 이곳에서 오른쪽 윗황이골로 진행한다.

길은 계곡 상류 합류점까지 이어진다. 이곳에서 두 계곡이 합류하는데 합류점 사이로 표지기가 걸려 있다. 두 계곡 사이의 사면을 치고 오른다. 초반에는 표지기를 따라 희미하게 길이 나있지만 이내 사라진다. 조봉 주능선까지 개척 산행으로 오른다. 완만하고 너른 사면을 오르면 9부 능선에 무덤이 있다. 마지막에 가파른 바위지대를 오르면 주능선이다.

주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1km 정도 가면 표지판이 있는 등산로가 나온다. 이곳에서 제2야영장 하산길과 정상가는 길이 나뉜다. 정상까지는 약 300m 거리다. 정상 바로 아래에 표지판이 있고 길이 세 갈래로 나뉜다(정상·제2야영장·미천골정). 제2야영장 하산길은 등산로가 폐쇄되어 길이 묵은 곳이 많다. 정상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미천골정으로 하산하는 등산로도 있다.

교통(지역번호 033)

양양고속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림리로 가는 10번 농어촌버스가 1일(07:00~18:40) 4회 운행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마을에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갓길에 주차해야 한다. 미천골자연휴양림에 차를 타고 갈 경우 입장료 3,000원을 받는다. 양양에서 서림리까지 택시비는 3만5,000원 정도다. 문의 양양콜택시 671-2300, 671-2488, 671-0234, 672-8255.

©동아지도 제공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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