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가는 ‘골때녀 심판’…“3년 뒤엔 남자 대회도 접수”
한국인 필드 심판 5명
미국과 함께 가장 많이 뽑혀
FIFA도 능력 인정한 거죠
오현정 심판(35)은 누구보다 새해를 기다렸다. 그가 휘슬을 잡으면서 꿈꾸던 무대,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이 오는 7월 호주·뉴질랜드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오 심판은 지난달 28일 이번 월드컵 주심으로 내정됐다. 9일 FIFA가 발표한 107명의 심판 명단(주심 33명·부심 56명·비디오 판독 18명)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한국 심판으로 월드컵의 영광을 누린 것은 그가 전부는 아니다. 김유정(34·주심)과 김경민(43), 이슬기(43), 박미숙(40·이상 부심) 심판 등이 포함돼 한국 심판이 5명이나 월드컵에 참가하게 됐다. 종전까지는 한 대회 2명이 최다였다.
오 심판은 10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큰 경사가 아닌가요? 심판이 가장 많이 뽑힌 미국이 6명인데, 필드 심판 숫자는 우리와 같아요. FIFA도 한국 여자 심판들의 능력을 인정한 거죠”라고 말했다.
오 심판의 월드컵 발탁은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스포츠 예능프로그램 <골때리는 그녀들>에서 단호한 판정과 함께 친절한 규칙 설명으로 친숙해진 그가 월드컵에 뛴다는 사실이 반가웠기 때문이다.
오 심판은 “오늘이 <골때녀> 녹화날인데 ‘월드컵 가면 누가 <골때녀> 심판을 맡느냐’며 축하해주더라”고 웃었다.
오 심판은 이번 월드컵 참가로 축구화를 처음 신었던 전주 삼천남초 시절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공기놀이보다 공놀이가 좋았던 그는 축구 선수로 월드컵 무대를 밟는 게 꿈이었다. 장호원고 재학 시절 오른쪽 무릎을 다치면서 인생의 항로를 바꿨다. 축구 선수처럼 그라운드를 누비는 심판이었다.
오 심판은 “축구를 잠시 외면했던 내가 얼떨결에 심판이 됐고, 2015년에는 국제심판이 됐다”면서 “지난 8년간 그라운드의 판관으로 50여개국을 날아다니다보니 이제 월드컵도 가게 됐다”고 말했다.
오 심판은 자신이 월드컵 심판으로 발탁된 과정을 세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FIFA가 소개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아시아축구연맹(AFC)이 후보군을 선정한 뒤 매년 엄정한 평가를 통해 숫자를 줄여가는 가시밭길을 통과해야 한다. 판정에 적합한 몸 상태를 유지하는지 GPS 장치로 운동량을 체크받고, 매 경기 판정마다 점수를 매겨 순위가 결정된다.
오 심판은 “선수는 동료와 코치의 도움으로 훈련하지 않느냐”며 “그런데 심판은 혼자 외롭게 걸어가야 한다. 첫 도전이었던 2019년 프랑스 여자 월드컵에선 이 부분에서 낙마했다. 이번 대회는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이를 악문 게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다.
오 심판이 새해 누빌 무대는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대한축구협회 심판 콘퍼런스에서 올해 남녀 구분 없이 실력만으로 평가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여성 심판도 최소 2명 K리그에 올린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김경민 부심이 K리그2(2부)에서 유일하게 활동했다. K4리그(세미프로)에서 주심을 맡았던 오 심판은 이번주 협회 체력테스트를 통과해 첫 K리그 여성 주심이 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오 심판이 K리그에서 주심을 맡는다면 3년 뒤 북중미에서 열릴 남자 월드컵도 노릴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에선 프랑스 출신의 여성 주심 스테파니 프라파르가 처음으로 금녀의 벽을 깼는데, 그 역시 첫 출발은 자국 프로리그였다.
“심판으로 꿈이 여자 월드컵 참가였는데, 이젠 더 꿈을 꾸고 싶어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심판으로 인정을 받고, 3년 뒤에는 북중미 월드컵이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해 달리겠습니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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