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침의 시로 빛날 때 [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2023. 1. 1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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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1월이다. 아침이다. 까치가 먹잇감을 물고 날며, 요람에서 아기들이 옹알이하는 시각이다. 온통 이슬 떨기로 반짝이는 야생 자두나무 한 그루, 맑은 샘, 감나무 가지 위에 날아와 우짖는 박새와 함께 아침이 열린다. 침묵의 벽에서 떨어진 말들이 소리 날개를 단 채로 날고, 어젯밤 태어나 어미젖을 처음으로 빤 어린 짐승의 등이 금빛인 듯 빛난다.

창백한 황혼과 모란꽃 지는 저녁, 산통으로 울부짖는 산모의 고통으로 얼룩진 긴 밤 지나고 아침이 온다는 것은 기적이다. 이 낡은 세계에 아침이 온다는 우리의 믿음은 신실하다. 숲과 언덕들, 낮은 지붕들과 마을을 토해내는 빛 속에서 말하는 사람은 고귀한 저마다 의미의 존재로 떠오른다.

 아침이 온다는 것은 기적이다

밤은 도둑처럼 다녀가고, 빛의 무도회가 열리는 아침마다 물결치는 빛은 물상과 세계를 빚으며 움직인다. 빛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빛은 사방으로 뻗침, 기쁨의 약동, 일체 구속에서의 해방이다. 누리가 빛으로 물들 때 빛은 정신의 둘레를 감싼다. 빛 속에서 앞뜰과 산수유나무가 나타나고, 산수유 붉은 열매를 쪼는 곤줄박이들의 울음소리는 반짝인다. 아침은 우리가 명석한 개별자로 머무를 수 있음을 보장한다. 친구여, 등이 휘도록 삶이 고달프고 사는 게 몸서리쳐진다면 아침의 대파밭을 보아라. 서로 몸을 기댄 채 혹한을 견디며 파랗게 자라는 대파들을 보아라.

아침은 이 낡은 세계가 최선을 다해 빚는 희망이고 미래이며 피안이다. 희망이 설렘이고 바람, 불가능한 시간을 향한 기다림이다. 뱃속 허기와 희망은 닮은꼴이다. 허기가 욕구와 만족 사이에 있듯 희망도 비어 있음과 충족 사이에서 번성한다. 희망은 희망이 없는 곳에서 들끓고, 절망의 비명은 희망이 끊기는 곳에서 일어난다. 어둠을 무찌른 빛 속에서 세계가 세계로 돌아온다. 그 또렷한 분별 속에서 대지의 지향은 명확해지고, 우리 생의 감각은 되살아난다. 아침과 빛은 세계가 우리에게 돌려주는 은총이고 덕성이 아니던가?

 제주의 1월은 초봄처럼 화창

1월이다. 아침이다. 제주 날씨는 내륙의 초봄 날씨와 닮았다. 해안가 식당에서 성게미역국과 김치 한 보시기, 멸치조림, 구운 파래김, 간장 한 종지가 전부인 소박한 아침 식사로 출출한 배를 채웠다. 우리는 식당을 나와 바닷가를 오래 걸었다. 추울 거라고 지레 겁먹고 껴입은 패딩 점퍼가 무겁게 느껴진다.

제주 서부두 앞 방파제 너머 먼바다 물결은 높지 않다. 태풍이나 해일 피해를 막으려고 쌓은 테트라포드엔 갈매기와 가마우지들이 떼 지어 앉아 쉬는 중이다. 하늘엔 분홍색 구름이 드문드문 떠 있다. 김포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수원 대전 논산 익산을 지나고, 섬진강과 지리산 봉우리들을 넘어 광주 무안 목포 해남 상공을 달려와 제주공항에 착륙하려고 하강한다.

제주 공기는 온화하고, 이마를 간질이는 햇빛의 촉감은 보드랍다. 제주 햇빛은 햇송아지의 첫울음, 방금 구운 빵, 땅속 구근들의 꿈틀거림, 멀리서 오는 봄의 기척, 움트는 모란과 작약의 꽃망울, 식물의 빠른 성장 따위를 품는다. 어제는 숙소 근처를 산책하다가 길모퉁이 화단에서 저 혼자 만개한 동백꽃을 보았다. 우리가 떠나오며 벗어놓은 빛바랜 하루와 비겁한 어둠은 저 너머에 있다. 1월에 제주를 찾은 것은 잘한 일이다. 봄의 기척을 가득 품은 대기가 주는 희망과 즐거움은 크다. 내일 아침 우리는 제주 여행이 준 즐거움과 보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침은 세계가 개관하는 시각

1월이다. 아침이다. 빛과 은총이 넘치는 세계에서 우리는 어제보다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다. 사람이 비누처럼 마모된다고 할지라도 아침의 빛 속에 선 사랑하는 사람은 심연으로 빛난다. 안녕, 이 녹색별에서 아침을 맞은 당신을 환영해. 누군가가 이렇게 인사한다면 좋겠다.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목례하고 상냥한 인사를 나누자. 안녕하세요?

아침 인사는 우리 존재 안에서 튀어나오는 명랑함이다. 시인은 마음을 돌려요라는 아침의 말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광부처럼 밤의 갱도로부터 걸어 나오는 아침은 다시 말한다./ 마음을 돌려요, 개관(開館)을 축하해요!”(문태준, ‘아침은 생각한다’) 아침은 세계가 개관하는 시각이다. 눈부시게 쇄신하는 세계를 데려오는 아침의 중심으로 우리는 첫발을 딛고 들어선다.

1월이다. 아침이다. 기쁨으로 아침을 맞지 못하는 자는 의욕을 잃은 자다. 그것은 어딘가 잘못됐다는 징표다. 아침엔 세상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고, 삶의 벅찬 순간들을 더 자주 기억하자. 간밤에 한 줄의 시를 마저 쓰지 못하고 죽은 시인과 열이 들끓는 몸으로 아픈 아이 머리맡에서 뜬눈으로 밤새운 어머니를 기억하자. 늦게까지 일하는 택배 배달원과 밤낮없이 화재를 진압하러 출동하는 소방대원과 새벽 거리를 청소하는 미화원을 기억하자.

길고양이를 해코지하는 자들, 생명의 연약함에 한 줌의 공감도 없는 자들, 평범한 악에 기대어 제 잇속을 챙기는 자들, 그이들처럼 비열하고 쩨쩨하게 살지 말자. 어제 죽은 자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이 아침은 피로와 무기력을 떨치고 기지개를 켜며 일어날 시각이다. 아침의 공기, 빛, 시간이 우리에게 온 선물이 아니라면 무어란 말인가?

어젯밤에도 늙은 별 두엇이 마지막 한숨을 쉬고 밤하늘에서 사라졌다. 별들이 수명을 다하고 사라지는 우주에서 살아 있음을 애련함으로 품자. 우리가 맞은 몇만 번의 아침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날들, 빈자의 식탁에 드리운 가느다란 한 줄기 햇빛에도 감사할 이유는 충분하다. 오랜 슬픔과 낡은 죽음을 떨치고 당도한 아침에 기쁨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는 우민(愚民)일 테다.

오, 놀라워라! 세계가 빛의 쇄신 속에서 파열하며 수만 개로 쪼개지는 아침이다. 빛으로 물든 세계의 밝은 둘레 속에서 아침의 감각들은 깨어난다. 이 아침에 깨어난 사람은 누구나 간밤의 죽음과 번민, 숙고와 숱한 머뭇거림에서 다시 태어난 새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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