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벼 품종 대부분은 아직 종자은행 창고 속에…왜일까

주영재 기자 2023. 1. 1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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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농업과학원·국립식량과학원의 벼 육종 현황

[주간경향] “하나의 품종이 (유전형질이) 고정되려면 최소 6세대 정도가 지나야 합니다. 품종만의 고유한 특성이 나올 때까지 하계에만 재배하면 무조건 6년 이상 걸리는데 이렇게 겨울에도 재배하면 그 기간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습니다.” 지난 1월 4일 전북혁신도시에서 만난 박현수 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농업연구사가 과학원의 ‘세대단축 재배실’ 안에 있는 벼를 가리키며 말했다.

온실 내부는 낮에는 35℃ 정도로 덥고 습하게 하고, 밤이 되면 20℃ 정도를 유지한다. 벼 재배에 좋은 아열대성 기후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보름 전 심은 벼가 벌써 물 위로 20~30㎝씩 올라왔다. 손으로 일일이 하나씩 심었는데 포기마다 유전적 특성이 달라서인지 같은 날 심었어도 키가 제각각이다. 줄기를 조금 잘라낸 흔적도 보인다. 실험실에서 DNA를 분석해 병 저항성이나 원하는 유전적 특성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세대단축 재배실은 좋은 품종을 선발하기 위한 ‘오디션’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심은 벼들은 4월쯤 수확하고, 다음 세대를 6월 초쯤 이앙한다. 이렇게 일 년에 두세 번 재배한다. 밀의 경우 비슷한 방식으로 네 번 재배하기도 한다.

최근 육종된 품종들은 ‘참’ 자를 많이 쓴다. 품질이 좋다는 뜻으로 2020년 참동진이 나왔고, 2021년 참누리, 2022년 참진이 출시됐다. 예전에는 온누리, 황금누리 등 ‘누리’를 돌림자로 많이 썼다. 삼광·일품·일미 등 한자 이름을 쓴 적도 많다. 박 연구사는 “성격이 급한 편인데 현장에 오면 녹색을 보다 보니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가현리 토종자원단지에서 다양한 품종의 토종벼들이 재배되고 있다. 토종벼마다 키와 모양,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우보농장 제공
쌀 육종에 최소 15년 걸려

박현수 연구사는 벼 육종 전문가다. 16년째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그와 동료들이 거둔 최근의 대표적 성과가 참동진이다. 신동진을 개선하기 위해 개발한 품종으로 벼흰잎마름병과 이삭도열병에 강하다. 신동진은 2003년부터 농가에 보급·재배됐다. 일반쌀에 비해 쌀알이 1.3배 크고, 수분량이 적고 단백질 함량이 낮아서 찰지며 밥맛이 좋은 게 특징이다. 국내의 화영벼와 일본의 기누히카리, 미국의 칼루즈 세 품종을 활용해 개발했다. 지금은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벼 품종이다.

하지만 단일 작물을 대면적으로 오랫동안 재배할 경우 아무리 우수한 품종이라도 병해충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 신동진 벼도 2021년 이후 이삭도열병 등의 병 발생이 늘면서 농가의 피해가 커졌다. 이삭도열병에 걸리면 잎이 불타듯 변한다. 이삭에 걸리면 쌀이 제대로 영글지 못해 수량 피해가 크다. 다행히 때마침 참동진 벼가 나와 대체가 가능해졌다. 같은 과의 진민아 농업연구사는 “품종을 개발하면 계속 그대로 두는 게 아니라 기후변화 등에 따라서 병해충 발생 양상이 바뀌고 그에 따라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이에 대응한 품종 개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벼 품종을 개발해 농가에 보급하려면 최소 15년 이상은 걸린다. 먼저 밥맛이 좋은 벼를 개발할 것인지, 병해충에 강한 벼를 육성할 것인지 혹은 가공성이 좋은 벼를 만들 것인지 등 이루고자 하는 육성 목표를 정한다. 그에 따라 알맞은 벼를 선발해 교배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원하는 특성이 고정될 때까지 보통 6~8년이 걸린다. 이후 생산력 검증시험을 한다. 고정된 대상을 토대로 수량 안정성이 있는지 파악하는 데 1~2년이 소요된다. 이후 해당 지역에서 적응성이 어느 정도인지 3년 정도 검토한 후에야 품종 개발이 완료된다. 이 과정이 빨라도 10년은 걸린다. 이후 국립종자원에 품종 보호를 출원해 심사를 받는 데 또 2~3년이 걸린다. 그리고 농가에 보급하기 위한 증식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농민 손에 새 품종이 전달되려면 최소 15년은 걸리는 셈이다.

육종 방식은 돌연변이 육종과 토종자원을 선발하는 선발 육종이 있다. 결국엔 교배육종을 거친다. 최근에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한 육종 방법도 연구 중이다. 병해충 관리나 쌀알의 크기를 조절하는 연구 등 기초 연구를 벌이고 있다. 다만 아직 안정성 검사 등 관련 규정이 정립되지 않아 본격적으로 시도하기엔 어려운 상황이다. 진 연구사는 쌀을 가공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품종을 돌연변이 육종 방식을 이용해 개발하고 있다. “밥쌀용 쌀도 개발하지만, 밥쌀이 남아도는 수급 불균형 문제가 있어 쌀가루로 활용할 수 있는 품종도 개발 중”이라면서 “최근에는 가루쌀 전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바로미2’를 보급하려 한다”고 말했다. 바로미2는 물에 불리지 않아도 밀과 유사하게 갈아지는 특성이 있어 제분 과정을 간소화할 수 있고, 가공특성이 좋아 쌀가루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토종 벼종자, 육종 활용은 아직 더뎌

식량과학원은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품종 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국내에선 자포니카 계열의 쌀이 많이 재배된다. 아열대 기후로 변화가 이뤄지면 동남아시아 쪽에서 재배되는 인디카 계열 재배가 유리해진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자포니카와 같은 동글동글한 단원형보다는 길면서 얇은 장립종인 인디카형이 온도가 높은 지역이 됐을 때 ‘등숙’에 유리하다고 한다. 등숙은 광합성으로 쌀알이 채워지는 과정을 말한다. 쌀알은 먼저 길이부터 채워진 후 그다음 폭이 커지는 방식으로 여문다. 박 연구사는 “형태는 다소 길어 인디카를 닮아가면서 밥맛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자포니카와 비슷한 형태로 가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원래 동남아시아에서 먹는 인디카 품종은 푸슬푸슬한데 새로 육종하는 품종은 우리가 흔히 먹는 자포니카 쌀처럼 찰기가 있는 형태로 개발한다는 것이다.

현재 벼 품종 개량은 대부분 추청(아끼바레), 고시히카리, 히토메보레 등 일본이 개량한 자포니카 품종을 기반으로 한다. 토종 벼 종자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이 유실됐기 때문이다. 일본은 재래종보다 비료를 투입해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품종을 보급했고, 1930년대 후반에 이르면 재래품종은 연구용만 남고 농사 현장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1960년대 통일벼 시대를 거치면서 유전적 다양성은 더 줄었다. 통일벼가 물러난 후엔 자포니카 품종이 들어섰고, 경기도에서 재배되는 쌀의 70% 정도가 일본 품종이다. 현재 식량과학원에서 토종벼를 일부 육종에 활용하고 있지만, 아직 육성하는 단계이고 품종 단계까지 간 건 없다. 대부분의 토종벼 품종은 아직 종자은행의 창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보농장을 비롯해 소수의 농부가 토종벼를 생산하고 있는데 연간 생산량은 전국에서 생산되는 양의 0.1% 미만이다. 토종벼를 보기 어려워진 건 평당 수확량이 떨어져 농가의 선택을 받지 못한 측면도 있다. 박 연구사는 “일제강점기 이후 식량 증산이 가장 우선적인 목표가 되면서 수량 증대를 목적으로 개발된 품종이 재배되고, 식량자급을 목표로 통일벼가 보급되면서 다양한 토종벼가 잊히게 됐다”면서 “토종벼는 내비성이 있어 비료를 흡수해 쌀 생산량이 느는 것에 비해 쓰러져 입는 피해가 큰 편”이라고 말했다. 현재 토종벼를 재배하는 농가에서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 자연순환농법을 택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박현수 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농업연구사가 1월 4일 세대단축온실에서 벼의 육종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주영재 기자
종자은행과 종자저장고 운영

재래종은 기후변화와 식량위기 대응에 필요한 유전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토종자원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일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주희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유전자원센터장은 “일제강점기 우리 토종자원을 못 챙긴 건 아쉽지만 지금 기탁받은 자원에 대해서라도 주권을 찾고 거기서 병 저항성 특성을 찾아내 새 품종을 탄생시킬 수 있다면 보석과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자원주권을 확보하려면 자원을 보유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자원이 어떤 유전적 특징과 가치를 갖는지 정보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도 있다. 농업유전자원센터는 올해부터 토종벼의 증식에 들어가 자원수가 부족한 경우 갱신하고, 기초형질 연구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센터장은 “야생종이나 오래된 재래종은 알곡이 잘 맺히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이런 부분에 대한 확인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각국은 기후위기와 환경파괴 등으로 멸종 위기종이 늘자 ‘종자은행’를 만들어 식용작물과 야생식물 종자를 보관 중이다.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종자은행과 달리 씨앗을 영구 보전하는 종자저장고도 운영하고 있다. ‘시드 볼트’로 불리는데 노르웨이 스발바르에 있는 ‘국제종자저장고’와 우리나라 경상북도 봉화군에 있는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 볼트’가 세계 유이의 국제종자저장고다. 수원과 전주에 있는 농업유전자원센터는 씨앗은행과 종자저장고의 역할을 동시에 한다. 이곳에 보관된 식물 유전자원은 27만2351자원(3075종)으로, 이중 벼는 국내외종을 포함해 4만2402자원에 이른다. 실제적·잠재적 가치를 가진 유전물질을 하나의 자원으로 본다.

국내 벼 유전자원의 내력별 현황을 보면, 재래종(1449자원)과 잡초형을 합한 토종자원이 7496자원이다. 이중 일제강점기인 1913년 작성된 <조선도품종일람>에 수록된 이름과 정보가 완전히 일치하는 자원은 40개다. 이주희 센터장은 “1990년대 이후 10년 정도 토종 벼종자를 기탁받았다고 하는데, 그때 할머니들이 전해온 종자 중에 이름이 있는 것도 있지만 없는 게 더 많았다”면서 “기증받은 토종종자 중 <조선도품종일람>에 나온 것과 같은 이름은 40개밖엔 안 됐다”고 말했다. <조선도품종일람>은 조선총독부 산하 농업연구기관인 권업모범장이 1911~1912년 동안 한반도에서 재배한 벼 재래종의 한글 이름을 조사해 정리한 책이다. 국내에 2권만 남아 있었다. 지난해 8월 한국어로 번역됐다. 이 센터장은 “토종벼의 이름을 찾고, 그 정보를 명확히 하는 것이 자원주권을 찾는 길”이라면서 “‘토종벼를 비롯해 토종자원에 특화된 연구 예산을 책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보농장을 비롯해 토종벼를 재배하는 농가와 함께 토종벼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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