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토종 민들레가 식물목록에서 사라졌다

김민철 논설위원 2023. 1. 1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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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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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민들레’가 우리나라 대표 식물목록에서 사라졌다. 요즘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민들레를 검색하면 나오지 않는다. 털민들레, 흰민들레, 산민들레 등만 나올 뿐이다. 지난해 3월 이전엔 민들레가 있었다. 민들레가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최근 식물 연구에서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민들레로 동정해온 식물은 털민들레(Taraxacum mongolicum)로 보는 것이 맞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동안 토종 민들레에 ‘Taraxacum platycarpum’라는 학명을 써왔는데, 이 종은 일본 고유종으로 우리나라에는 자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종 민들레. 총포 조각이 꽃을 잘 감싸고 있다.

경북대 박재홍 생물과학부 교수가 2017년 ‘한국 식물지’(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명의)를 편집하면서 한반도 종 기재에서 처음 민들레를 제외했다.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국가표준식물목록을 심의하는 국가수목유전자원목록심의회 심의를 거쳐 2020년 자생식물목록을 만들 때 민들레를 뺐다.

일반인들이 이 사실을 알기 시작한 것은 국립수목원이 이같은 연구 결과와 심의를 반영해 지난해 3월28일 국가표준식물목록 사이트(www.nature.go.kr/kpni/)에서 민들레를 제외하면서부터다. 국립수목원이 운영하는 국가표준식물목록은 환경부가 운영하는 ‘국가생물다양성 정보공유체계’와 함께 학자들은 물론 식물 애호가들이 기준으로 삼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식물목록이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민들레'를 검색하면 나오는 화면. 민들레는 나오지 않는다.

이에 따라 토종 민들레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주려면 ‘털민들레’라고 해야하는 상황이다. 기존 친숙한 민들레라는 이름을 쓰면 정확하게 맞지는 않는 것이다. 토종 민들레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데 민들레를 민들레라고 부를 수 없는 이상한 상황이다.

식물의 이름에는 국제적으로 쓰는 학명과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국명 등이 있다. 학문적인 연구를 거쳐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식물에 대한 종 분류 변경이 불가피하다면, 학명을 바꾸더라도 국명을 조정해주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관련 심의에서 이런 문제는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립수목원 관계자는 “2020년 심의위에서 국민들에게 친숙한 민들레라는 이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문제를 다룬 국가식물목록분과 위원 11명은 모두 식물학자로만 구성돼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토종 민들레는 맹렬하게 번식하는 서양민들레에 밀려 요즘엔 시골에 가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제는 이름까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토종 민들레는 꽃을 아래에서 감싸는 총포 조각이 위로 딱 붙어 있지만, 서양민들레는 이 총포 조각 일부가 아래로 젖혀져 있는 점이 다르다.

서양민들레. 꽃을 감싸는 총포 조각이 뒤로 젖혀져 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국민들의 일상 생활을 고려하지 않고 식물 이름을 바꾼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멀리는 아카시아를 아까시나무로 바꾼 것을 비롯해 원추리라는 이름이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없는 것도 그 예 중 하나다. 우리가 산에서 흔히 보는 원추리는 백운산원추리로 불러야 정확하다. 분류를 다시 할 때 백운산원추리 국명을 원추리로 바꾸었으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댕강나무도 이명 처리해 줄댕강나무로 불러야 맞는 상황이다.

토종 민들레. 서양민들레에 밀려 요즘은 시골에 가도 찾기가 쉽지 않다.

현진오 한국식물분류학회장은 “학술적으로 학명을 바꾸더라도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우리말 이름을 없애는 것은 곤란하다”며 “민들레의 경우 기존 우리가 민들레라고 부르던 것이 털민들레라면 그 국명을 민들레로 바꾸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현 회장은 국가식물목록분과 위원이 식물학자 일색인 점에 대해 “우리말을 다루는 사람도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국립수목원 손동찬 박사는 “민들레의 경우 국민들에게 친숙한 이름이라 이 이름이 사라졌을 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올 상반기 목록 심의위에 기존 털민들레 국명을 민들레로 바꾸는 안건을 올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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