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구상나무 4만 그루, 레인저 6명이 옮겨 심었다

서현우 2023. 1. 9.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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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대멸종? 2017년 지리산에 심은 구상나무 묘목 현재 70% 생존”
식물보전센터에서 키우는 자그마한 구상나무. 심은 지 1~2년 정도 지난 개체로 이 때 가장 고사율이 높다.

'구상나무 10년 뒤 멸종될 가능성'

'기후변화로 구상나무 90% 떼죽음'

'이상기후로 사라지는 구상나무를 살려라'

'멸종위기 구상나무 열매도 안 열린다'

최근 2년 사이 구상나무를 다룬 기사들의 제목은 모두 암담하기만 하다. 크리스마스트리로 잘 알려진 구상나무는 우리나라 고유종인 상록침엽수로 세계자연보전연맹에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나무다. 이젠 기후변화로 인한 국립공원의 환경위기를 대변하는 수종이 됐다. 껍질이 모두 벗겨지고 앙상하게 말라버린 죽은 구상나무들의 사진은 열 마디 말보다 심각성을 더욱 쉽게 보여 준다.

구상나무의 고사, 얼마나 심각한 문제일까? 이 구상나무를 깃대종(해당 지역을 상징하는 야생 동·식물)으로 삼은 국립공원이 있다. 덕유산이다. 덕유산을 찾아 직접 구상나무의 위기를 확인해 봤다.

덕유산국립공원 자원보전과 홍민호 주임이 구상나무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덕유산국립공원은 공단 직원들이 기피하는 근무지 중 하나다. 사계절 내내 등산객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장산처럼 특정 계절에 등산객이 몰리는 곳은 업무의 완급 조절이 가능한데 덕유산은 그럴 수 없다. 봄이면 철쭉, 여름이면 구천동계곡과 국립공원 최대 규모의 덕유대야영장, 가을에는 단풍, 겨울이면 곤돌라를 타고 나서는 간편한 설산 산행까지 계절마다 매력 포인트가 있다.

"지금은 덕유대야영장에 야영지가 497동, 체류형 시설은 32동이 있습니다. 1980년대 민정당평생동지회가 이 야영장에서 수련대회를 열었는데 그때 텐트가 1만 동이 들어섰다고 해요. 그만큼 관리할 면적이 넓단 거죠."

덕유산, 육산이라 구상나무 고사율 낮아

덕유산에서 근무한 적 있는 이사현 홍보담당관의 설명을 들으며 덕유산국립공원사무소로 들어선다. 구상나무를 만나기 전 예습이다.

"2023년 구상나무 전수조사가 시행될 예정입니다. 지난 2017년에 시행했던 전수조사에서는 총 10개 지점에서 473그루를 확인했었어요. 이후 일부 지역의 모니터링을 시행하고 있는데 덕유산 구상나무는 다른 공원에 비해 비교적 고사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덕유가 육산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왼쪽이 5년 자란 구상나무, 오른쪽이 11년생 구상나무. 5년을 넘기면 구상나무는 고사율이 낮아지고 성장속도도 빨라진다.

구상나무의 집단 고사의 원인으로는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수분 부족이다. 확연히 줄어든 겨울 적설량으로 인해 구상나무가 충분한 수분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위지대가 많은 한라산과 지리산에서 구상나무 고사 현상이 두드러지는 반면, 비교적 흙이 수분을 더 오래 잡아두는 덕유산에선 잘 죽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단 이 가설이 모든 폐사를 설명해 주진 않는다. 건조한 토양에서도 잘 자란 반례가 있다.

소순구 국립공원연구원 식물보전센터 센터장은 "고사의 총체적 원인은 대체로 기후변화가 유력하지만 각각의 구상나무의 죽음은 저마다 약간 다른 이유를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따라서 원인을 하나로 딱 규정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연구 중인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하나 덕유산 구상나무의 특징은 다른 한반도 구상나무(한라산 구상나무 제외)들의 어머니 격이라는 점입니다. 계통수를 그렸을 때 공통조상이란 건데요, 쉽게 말하면 다른 지리산, 속리산 구상나무들을 분화시킨 부모 나무란 겁니다. 유전적으로요."

구상나무 씨앗.
금강모치 수중 사진. 사진 국립공원공단.

양식장에서 넘어간 송어가 금강모치 먹어치웠다

구상나무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자료 말미에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눈에 띈다. 또 다른 덕유산 깃대종, 금강모치다. 7~8cm 길이의 금강모치는 강원도 한강 최상류와 남부 지방에선 유일하게 무주 구천 계곡에서만 발견되는 희귀종으로 1급수에 물이 차고 산소가 풍부한 곳에서만 산다. 버들치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옆구리에 주황색 줄무늬 두 개와 등지느러미에 검은 반점이 구분되는 특징이다. 날도래 유충 따위를 먹는다.

"매년 구천계곡에서 금강모치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8년 128마리, 2019년 96마리, 2020년 118마리, 2021년 125마리, 2022년 122마리가 확인됐어요. 계곡 출입이 어려워 직접 보긴 어렵고 수중드론을 통해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서식지가 점점 상류 쪽으로 옮겨 가는 점이 염려스러워요. 아무래도 지구온난화 탓 같아요. 수온이 낮아야 잘 살거든요."

수중드론을 활용한 금강모치 모니터링. 사진 국립공원공단.

지구온난화 외에 금강모치의 또 다른 천적은 송어다. 외래어종인 송어가 금강모치를 잡아먹어 한때 개체 수가 수십 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적도 있다고 한다. 지금도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은 여름이면 전북대학교나 지역 주민들과 함께 족대와 투망을 들고 송어를 잡기 위해 구천계곡에 뛰어 든다. 도대체 왜 송어가 여기까지 올라온 것일까? 차회찬 자원보전과장의 설명을 들으니 이유가 황당하다.

"이 송어들은 하천을 거슬러 올라 들어온 게 아니고요, 인근 양식장에서 나온 겁니다. 지금은 치어도 하천으로 나오지 못하게 처리를 잘 해뒀는데 수십 년 전에는 그게 잘 안 됐었어요. 그래서 물길을 따라 송어가 하천으로 흘러나와 아예 눌러 살게 되어 버렸죠.

그래서 2000년대 초부터 이 양식장을 매수해서 철거하는 게 사무소 숙원 사업이었어요. 그러나 입장 차이가 있어 협상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물론 양식장 업주가 의도적으로 송어를 구천계곡에 풀었던 것도 아니고, 개인 재산권을 행사하는 건 당연한 거라 뭐라 말할 순 없죠."

덕유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에 구상나무에 관한 옛 기록이 남아 있다. 안내소 내부에는 덕유산에 관한 다양한 기록과 직접 동식물 박제를 만져볼 수 있는 체험관이 마련돼 있다.

자연 도태일까, 대응해야 할 재해일까

구상나무를 증식하고 있다는 국립공원연구원 식물보전센터로 향했다. 건물 앞에 비닐하우스가 몇 동 들어서 있는 것을 제외하면 생각보다 평범한 건물이다. 사무실 안에는 단 6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기자가 직접 취재하러 온 적이 거의 없다며 낯설어 한다. 소순구 센터장이 간단히 센터를 소개한다.

"식물보전센터는 자생식물 생체, 종자, 표본 등 총 1,460종 5만 6,888개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보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멸종위기식물이나 희귀식물들이 어떤 조건에서 잘 발아하고, 잘 자라는지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해서 증식시키고 있어요.

온도나 수분은 물론 상토·마사토·황토·펄라이트·제올라이트 등 토양 종류 등을 전부 달리해 가면서 어떤 것이 최적인지 찾는 거죠. 국립공원 내 멸종위기종은 한라산 외에 전부 이곳에서 보유하며 키우고 있습니다."

종자를 보관하는 냉장, 냉동 공간을 지나자 새끼손톱만큼 고개를 내밀고 있는 수 만 개의 화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고산대 상록침엽수 7종 4만 본이다. 강근혜 연구원이 설명한다.

"구상나무가 가장 많은 3만5,000본이에요. 그 다음 분비나무(2,000본), 눈잣나무(2,000본), 가문비나무(300본), 주목(100본), 눈향나무(100본), 눈측백(70본) 순이죠. 가장 중요한 건 각 나무들이 어느 국립공원에서 나온 씨앗으로 자란 건지 꼭 표기해 둬야 한다는 점입니다. 복원할 땐 해당 국립공원에서 나온 종자를 심는 것이 원칙이거든요."

심어두고 끝이 아니다. 2022년 한 해 동안 4만 본 전체를 분갈이했다고 한다. 단 6명의 직원들이 한 일이다. 지역주민 3명의 손을 빌렸다지만 엄청난 수작업이 아닐 수 없다. 강 연구원은 "멸종위기식물인 석곡도 토양이 아니라 이끼로 뿌리를 감싸줘야 해서 일일이 손으로 감싸야 한다"고 했다. 이것도 무려 5,000촉이다.

중봉에서 바라본 향적봉. 주목과 구상나무가 한데 섞여 군락을 이룬다.

그런데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구상나무 새싹들을 키우고 있는 곳이 온실이다. 당연히 추운 데서 자라는 식물이라 높은 해발고도가 아니면 자랄 수 없고, 그래서 지구온난화로 멸종위기에 빠진 줄 알았는데 무슨 일일까? 이에 관해 묻자 소 센터장은 "사실 구상나무는 따뜻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 과장하자면 집 앞마당에 심어도 조건만 맞으면 잘 큰다"고 답했다. 의아하다. 그러면 어째서 언론들은 구상나무가 멸종될 위기라는 걸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집단 고사 현상의 특정 지역 집중, 다른 하나는 국립공원의 딜레마다.

"구상나무는 국립공원에서도 일부, 특정 지역에서 급격하게 죽고 있어요. 그래서 해당 지역을 토대로 고사 비율을 측정하니깐 마치 모든 구상나무가 다 죽는 것처럼 보이게 되죠. 지리산의 경우 공원 전체 구상나무의 고사율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결과가 최근 취합돼 곧 발표할 예정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고사 현상을 무시해도 된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각 집단고사 지역마다 고사 원인이 뭔지, 고사됐다 해도 후계목이나 치수(어린 나무)가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 대체 서식지는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봐야 한단 거죠. 실제로 2017년 지리산 세석~벽소령 아고산대에 구상나무 150그루를 심었는데 현재까지 70%가 생존 중입니다. 10%만 살아도 후계목을 남기기 충분하다는 연구도 있어요. 숲은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늘 삶과 죽음이 순환하는 현장입니다. 나무의 세대교체는 자연스러운 거죠."

그렇다면 구상나무 고사목을 다 잘라내고 센터에서 키운 구상나무들을 대대적으로 심으면 되는 것이 아닐까? 구상나무는 1~2년생 때 가장 고사율이 높고, 5년까지만 자라면 고사율이 대폭 줄어든다. 센터에서 키우고 있는 구상나무들 대부분이 5년생, 10년생이다.

여기서 두 번째 문제, 국립공원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이사현 홍보담당관은 "국립공원의 자연 관리 방침은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손을 대지 말자'는 것"이라며 "구상나무의 퇴장이 자연적인 도태인지, 산불 같은 모종의 재해라 적극적으로 막아야 하는지 판단하기 매우 어렵다"고 했다.

다시 말해 국립공원공단도 구상나무를 적극적으로 심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자연 상태 그대로 두면 조릿대나 미역줄나무와 같은 덩굴식물 등 하층식생이 두껍게 발달해 있어 구상나무의 씨앗이 자연 발아해 자라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지리산 케이스처럼 심고, 환경을 조성해 주면 높은 생존율을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국립공원의 자연적인 천이 과정을 역행하는 건지, 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 약간의 공원 관리를 시행한 것인지 그 누구도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없다.

곤돌라 상부 승강장인 설천봉. 정상부만 눈이 쌓여 있는 걸 보니 얼마나 고지대를 한 번에 올라왔는지 실감이 났다.

구상나무 살리려 전기 울타리 치고, 등짐펌프로 물주고

난제다. 그래서 공단도 최소한의 증식 실험만 시행 중이다. 앞서 말한 지리산과 더불어 덕유산에도 같은 시기 5년생 이상의 구상나무 200그루를 심어 실제 기후에서 얼마나 잘 자라는지 테스트 중이다.

묘포장은 향적봉과 중봉 사이, 한가운데에 있다. 이들을 만나보려 곤돌라를 탄다. 덕유산이 국립공원이 된 이후 들어선 시설이다. 케이블카 설치 문제로 논란이 많은 설악산이 겹쳐 보인다. 이사현 홍보담당관은 "그때 반대 시위했던 사람 중 그나마 남아 있는 덕유를 지키겠다며 공단 직원이 된 사람도 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동네 주민들은 해당 공사를 진행시킨 대기업이 이후 경영난에 빠진 것을 두고 흔히 "공사 과정에서 주목을 베어 주목님을 노하게 한 탓"이라고 얘기한다고들 한다.

설천봉(1,525m)에서 내려 김경식 해설사의 인도를 따라 구상나무를 만나러 떠난다. 김 해설사는 "구상나무는 우리나라보다 먼저 해외에서 주목 받고 인기를 끌었다"고 설명했다.

"1907년 프랑스 식물학자 위르뱅 포리 신부가 한라산에서 구상나무를 발견, 표본을 채집한 게 최초고 그 이후 전 세계로 퍼졌어요. 알려진 바로는 현재 90여 종 이상의 품종으로 개량돼 크리스마스트리로 대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진데 첫 번째는 수형이 곧은 삼각형 모양으로 아름답게 잡혀서 그렇습니다. 두 번째는 잎이 부드럽기 때문이에요. 똑같이 수형이 예쁜 유럽 전나무의 경우 잎 끝이 뾰족해서 트리 장식을 달 때 손에 찔리게 되는데 구상나무는 잎 끝이 하트 모양이라 만져도 아프지 않죠. 그래서 트리 장식을 달기 더 용이해요."

향적봉에서 바라본 중봉. 흰 눈을 덕지덕지 묻힌 채 크리스마스트리처럼 곧게 솟은 나무들 대부분이 구상나무다.

설천봉에서 향적봉(1,614m)으로 향한다. 드문드문 주목과 구상나무가 보인다. 확실히 고사목보다 살아 있는 개체가 월등히 많다. 주목과 구상나무는 얼핏 보면 비슷한데 구분하는 법이 있다. 멀리서 볼 때 그로테스크하게 제멋대로 뻗은 건 주목, 올곧은 이등변 삼각형 모양으로 선 건 구상나무다. 또 가까이 있을 땐 잎 뒤를 보면 된다. 구상나무 잎은 뒷면에 흰 줄이 있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나무가 반짝거리는 느낌이 난다.

"나무가 자란 모양을 유심히 보시면 세찬 편서풍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어요. 나뭇가지들이 다 동쪽을 향해서 뻗어 있거든요. 또 능선 양쪽을 보시면 편서풍을 그대로 맞으며 자라야 하는 서쪽 사면보다 동쪽에 주목이나 구상나무가 더 많이 자라 있어요. 바람의 힘이죠."

향적봉대피소 매점 앞 구상나무. 확실히 잎 끝이 하트 모양이라 만져도 따끔하지 않았다.

좀처럼 탐방로 가까이에 자라지 않아 애를 태우던 구상나무는 향적봉대피소 매점 앞에 이르자 눈앞에 두고 볼 수 있도록 두 그루가 자라고 있다. 잎을 만지니 확실히 찔리는 것 없이 부드럽다. 나무 너머로 향적봉대피소를 21년째 지키고 있는 박봉진 대장의 푸념이 들린다. 그는 악천후로 곤돌라가 운행하지 못할 때면 대피소 쓰레기를 마대 자루에 넣어 지게에 짊어지고 스키를 타고 내려가 버려 리조트 이용객들 사이에 "이 스키장은 청소부도 스키 타고 다닌다"는 말이 돌게 만든 주인공이다.

"최근에는 정말 눈이 전혀 안 와요. 지금(12월 초)도 원래 적설량이 1m는 됐어야 하는데 지금 보면 발에 살짝 밟힐 정도밖에 안 쌓였어요. 대피소에 있으면 갈수록 겨울 가뭄이 심해진단 걸 몸소 느낄 수 있답니다."

덕유산 아고산대 묘포장 전경.

묘포장에서 크고 있다는 구상나무들은 이 변화에 잘 대처하고 있을까? 서둘러 중봉 방면으로 길을 잇는다. 잠깐 설국을 헤치자 탐방로 동쪽에 작은 시골 주택 앞마당 크기의 평평한 땅이 나온다. 이 공간이 바로 묘포장이다.

만약 설명을 듣지 않고 왔다면 그냥 아무것도 없는 노지로 봤을 테다. 3등분으로 된 땅의 중앙이 구상나무, 양 옆은 원추리가 심어져 있다는데 그냥 눈 덮인 버려진 땅 같다. 하지만 정보를 알고 왔기에 눈밭 곳곳 점점이 박힌 구상나무들이 보인다. 몇은 이미 앙상하게 말랐지만 대부분 견딜 만큼의 눈을 인 채 꿋꿋하게 하늘로 치솟고 있다. 홍민호 주임은 "금지옥엽 키운다"고 했다.

"혹시라도 멧돼지가 들어와서 헤집어 놓을까봐 전기 울타리를 쳐놨어요. 살상 능력이 있는 건 아니고 사람이 만지면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초기에는 혹시라도 금방 죽을까봐 엄청 걱정을 많이 했어요. 날이 너무 가물면 설천봉에서 한 20kg 정도 되는 산불진화용 등짐펌프를 메고 와서 물을 줘야 했죠. 지금은 옆에 큼지막한 빗물받이 탱크를 두고 관리하고 있고요."

묘포장에서 레인저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구상나무.

구상나무를 바라보는 레인저들의 눈빛이 따뜻하다. 한반도 고유 자생종 구상나무를 살리기 위한 이들의 살뜰한 보살핌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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