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진국] ‘사실’은 아니라도 ‘진실’ 담은 훌륭한 극화…영화 ‘두 교황’

강푸른 2023. 1.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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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두 교황’(2019)의 한 장면. 앤서니 홉킨스(왼쪽)가 베네딕토 16세를, 조너선 프라이스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연기한다. 출처 IMDB.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5일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 미사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됐습니다. '현직'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사 주례를 맡았는데요.

교황은 사실상 종신직이기 때문에, '전임' 교황이 눈을 감았을 때 '후임' 교황이 장례식을 거행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역사상 전례를 찾아 봐도 1802년 딱 한 번인데, 이때도 프랑스에서 숨진 비오 6세의 유해를 3년 뒤 바티칸으로 옮겨 치른 것이라 이번 상황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늘 아래 교황은 오직 한 명이라는 게 2천 년 가톨릭 역사에서 '거의' 깨진 적 없는 불문율이며, 베네딕토 16세는 바로 이 규칙을 깬 극소수의 교황 중 한 명입니다.

2013년 2월, 베네딕토 16세는 건강 문제로 스스로 교황 직위에서 물러납니다. 생전에, 그것도 자신의 의지로 사임한 교황은 1294년 첼레스티노 5세 이후 단 한 명도 없었기에 교황의 결정은 가히 전 세계를 뒤흔든 큰 뉴스였습니다. 더구나 뒤를 이어 선출된 '개혁파'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수·정통파인 베네딕토 16세와는 성향이 매우 달랐기에, 같은 하늘 아래 정반대인 '두 교황'은 더더욱 세간의 시선을 끌었지요.

2019년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영화 '두 교황'은 이처럼 판이한 두 사람이 실제로는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이일 수는 없을까, 라는 상상력을 담고 있습니다. 동명의 연극을 먼저 무대에 올린 각본가 앤서니 매카튼이 그대로 영화 시나리오를 썼는데요. 사실 베네딕토 16세를 알기 위해 이 영화를 보는 건 그리 추천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영화 '양들의 침묵' 속 한니발 역으로 유명한 앤서니 홉킨스 배우가 노년의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똑 닮은 외양으로 등장하고, 교황이 실제로 좋아했던 '판타' 음료나 즐겨 신었던 빨간 구두 같은 '깨알 디테일'이 담겨 있긴 하지만요.

실제로 ‘판타’ 음료를 좋아했던 베네딕토 16세의 특징을 살린 영화 ‘두 교황’의 한 장면. 출처 IMDB.


영화 초반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자막(inspired by true events)이 뜨지만, 줄거리를 구성하는 주요 설정은 거의 모두 허구입니다.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후계자를 점찍은 적이 없으며, 프란치스코 교황(당시에는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에게 자신의 사임 결정을 귀띔하지도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피자를 먹으며 속내를 털어놓거나 탱고를 추는 모습, 각자의 출신지인 독일 대 아르헨티나 축구 경기를 보며 자국의 승리를 응원하는 장면 등도 감독이 만들어 낸 창작이고요. 두 교황의 인생 전적에 대한 묘사에서도 사실과는 다른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두 교황'이 엉터리 영화가 되는 건 아닙니다. '사실'과 '진실'이 다른 것처럼,영화는 생동감 넘치는 극화(劇化)를 통해 두 교황의 입장 차이를 지루하지 않게 전달하고,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두 관점을 존중을 담아 그려냅니다. 각본가 매커튼이 국내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두 교황의 입장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자부한다"는 말까지 남겼을 정도죠. 의외로 꽤 코믹한 장면이 자주 등장하지만, '두 교황'은 근본적으로 진지한 종교 영화입니다.

처음엔 프란치스코 교황의 편이었던 매커튼은 오히려 시나리오를 쓰며 베네딕토 16세에 더 빠져들었다고 말합니다. 전통과 규율을 고수하고 동성애와 낙태 등에 강경론을 펼친 인물이지만, 종교란 흔들리지 않는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점점 더 존중하게 되었다고요. 상대의 말과 태도, 그 어느 하나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연신 투덜댈지언정 같은 구도자로서 서로를 이해하는 두 사람의 우정엔 품격이 있습니다. 이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해도,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중요한 건 여기서 배워갈 수 있는 삶의 태도일 겁니다.
https://news.kbs.co.kr/special/danuri/2022/intro.html

강푸른 기자 (strongbl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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