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서 깨끗함이란 [박영순의 커피 언어]

2023. 1. 7. 17: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그러나 이들 속성은 관능을 통해 좋은 정서를 만드는 데 있어 깨끗함을 앞서지 못한다.

깨끗함은 좋은 커피가 갖춰야 할 모든 면모에 영향을 미친다.

'깨끗한 커피'란 빈집을 청소하듯 모든 것을 치워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것들만을 오롯하게 남겨두는 것이다.

셋째, '커피의 모든 속성이 균형을 이루어 우아하다'는 의미도 깨끗함에 속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좋은 커피가 지녀야 할 덕목 중 가장 중요한 하나를 고르라면 무엇일까? 입안을 꽉 채울 정도로 풍성한 향미, 혀와 점막을 매만져주는 듯한 질감, 목 뒤로 넘기고 나서도 길게 이어지는 정체성….

그러나 이들 속성은 관능을 통해 좋은 정서를 만드는 데 있어 깨끗함을 앞서지 못한다. 깨끗함은 좋은 커피가 갖춰야 할 모든 면모에 영향을 미친다. 커피 테이스팅에서 깨끗함은 적용하는 지표가 무엇이냐에 따라 3가지 서로 다른 가치를 갖는다.
케냐 키암부 틴강가에서 지난 2022년 8월에 수확해 12월 한국에 도착한 SL28 & SL34 품종. 신선함에 속이 들여다보이는 듯하다. 제 땅에서 제철에 나온 커피에서부터 깨끗함이 시작된다.
첫째, ‘더러운 것이 묻지 않은 청결함’의 의미로 벌레 먹거나 썩지 않은 커피가 지니는 자질이다. 커피를 볶기 전에 벌레 구멍이 났거나 검푸르게 또는 희읍스름하게 곰팡이에 오염된 결점두를 골라내야 한다. 당초 생두에 없었던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은 곧 향미가 오염되는 것이다. 커피 맛이 시큼하게 자극적이고, 진흙과 같은 냄새가 나고 부패한 듯한 이취가 느껴지는 경우는 로스팅이나 추출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생두 자체가 깨끗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 출처가 정확하고 신선한 커피만을 가려 마시면 이런 맛을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다. “밥맛이 이상하다”고 금세 알아챌 수 있는 것은 좋지 않은 맛을 탐구해서가 아니라 정상적인 밥맛을 늘 경험한 덕분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둘째, ‘(미생물에 오염되지 않았더라도) 생두에 유효성분들이 순수하게 제 양만큼 들어 있다’는 의미로, 맛의 윤곽이 뚜렷해 말끔한 느낌을 준다. 이럴 때에도 “커피가 깨끗하다”고 표현한다. 커피 씨앗은 외형을 먼저 키운 뒤 속을 채워가는 방식으로 익어간다. 따라서 덜 익은 열매를 수확하면, 비록 크기는 같더라도 유효성분의 함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커피는 단맛과 과일 맛이 선명하지 못하고 정점에 닿지 못하는 바람에 관능적으로 갑갑하다. 맛은 밋밋하고 지루하다. ‘깨끗한 커피’란 빈집을 청소하듯 모든 것을 치워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것들만을 오롯하게 남겨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끗한 커피는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커피’라고도 할 수 있다.

셋째, ‘커피의 모든 속성이 균형을 이루어 우아하다’는 의미도 깨끗함에 속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깨끗함을 ‘엘레강스’로도 풀이했다. 커피 향미 표현에서 우아함은 ‘섬세함’을 품어내는 보다 상위 속성이자 가치다. 섬세함은 작은 속성이라도 저마다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평화롭고도 공정한 상태에서 달성된다. 어느 한 속성이 행패를 부리듯 여린 속성들을 제압하지 않아 다양한 면모들이 동시에 고르게 또는 시간 차이를 두고 순차적으로 드러난다. 커피에서 꽃, 과일, 견과류, 초콜릿, 허브, 향신료 등 각양각색의 양상을 감지할 수 있을 때 “복합미가 좋다”고 표현한다. 복합미는 여러 감각을 자극하는 성분들이 들어 있는 것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성분들이 서로 배려하듯 균형을 이뤄 각자의 역량을 발휘하는 섬세함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말로 묘사하면, “결이 들여다보이는 경지”다. 미세한 면모들이라도 관능적으로 훤하게 비쳐 보이는 느낌은 깨끗함을 통해 비로소 이룰 수 있다.

이 모든 깨끗함의 가치는 오직 신이 부여하는 것이다. 인간은 순리를 따라 성심으로 표현해낼 뿐. 커피마다 자란 땅과 기후가 다르다. 먼 옛날 아프리카 땅을 벗어나 식민 지배자들의 손에 이끌려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에 강제로 옮겨질 때부터 ‘깨끗함의 본성’은 도전을 받았다. 생산량에 집착하지 않고 테루아의 여건에 맞게 품종마다 자라야 할 곳에서 자랐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러므로, 커피를 마실 때에는 산지와 품종, 수확시기를 깐깐하게 따져야 할 일이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