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146번 새벽 첫차는 만차…"우리한테 새벽 1분은 낮 1시간"

임철휘 기자 2023. 1.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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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노원·도봉·강북 거쳐 강남 가는 146번 버스

승객 대다수가 청소·경비 60~70대 노동자

"우리한테 새벽 1분은 낮에는 한 시간"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6일 오전 4시, 146번 버스 기점인 서울 노원구 상계동 7단지영업소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첫차를 기다리고 있다. 2023.01.06. fe@newsis.com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지난 6일 오전 4시, 불 꺼진 아파트가 내려다보는 서울 노원구 상계동 146번 버스 기점으로 청소노동자 김모씨(67)가 걸어왔다. 매일 걷는 새벽 출근길이지만 하루도 고단하지 않은 적이 없다. 김씨는 "눈은 저절로 떠지는데 몸은 점점 안 움직인다"며 찬바람에 몸을 웅크렸다.

김씨는 강남역에 있는 한 고층 빌딩에서 청소 일을 한다. 경력은 8년, 어둠을 헤쳐 146번 첫차를 타는 것도 올해로 8년째다. 8년간 매일 새벽 3시에 눈을 뜨고, 가족이 먹을 아침밥을 안친 뒤 20분을 걸어 146번 버스의 기점으로 향한다. 몸이 좋지 않은 날도 있지만, 첫차는 꼭 탄다. 그는 "우리한테 1분은 낮의 한 시간과 같다. 그 정도로 첫차는 소중하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계묘년(癸卯年) 첫 일정으로 146번 시내버스 첫차를 탄 뒤 출발 시간을 당기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뉴시스 취재진이 전날 146번 첫차에 탑승해 승객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한덕수 국무총리가 2일 서울 상계동에서 '새벽 만원 버스'라고 알려진 146번 시내버스 첫차를 타고 새해 첫 출근하는 근로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총리실 제공) 2023.01.0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기점에서 첫차가 출발하기도 전 이미 정류장엔 김씨 등 4명의 승객이 기다리고 있었다.

146번 버스는 지하철 첫차가 운행하는 새벽 5시30분 이전에 노원·도봉·강북 등을 출발해 강남으로 향하는 차다. 기점 출발 시각은 오전 4시5분. 승객의 대부분은 도심 빌딩에서 청소, 경비 등을 맡은 60~70대 노동자들이다. 많은 승객이 타다 보니 첫차 세 대가 동시에 출발한다.

이들은 오랜 시간 같은 버스를 타다 보니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부는 고정석까지 있다. 버스 맨 뒤 한 칸 앞 창가 자리는 김씨의 지정석이고, 바로 뒤에는 봉은사역 인근에서 청소 일을 하는 정씨가 앉는다.

2011년부터 지금의 청소 일을 시작한 정씨는 김씨보다 이 버스를 5년 더 탔다. 그는 "계약은 6시까지 가는 것으로 돼 있는데 그때 도착하면 일을 끝낼 수가 없다"며 "버스에 내린 다음 뛰어가서 5시20분부터 일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일부 승객들은 서로를 살뜰히 챙긴다. 가장 이른 아침 일터로 향하는 이들 사이에는 일종의 '전우애'가 자리 잡은 듯했다.

서서 가는 이의 가방을 앉아 있던 다른 승객이 받아 안고, 앉아있던 승객 일부는 오래 서 있던 승객에겐 자리를 내줬다. 자리를 양보받은 한 승객은 가방에서 휴지로 감싼 홍시를 꺼내 자리를 양보한 이에게 내주기도 했다. 앞쪽 자리에선 "언니, 무릎 안 좋으니까 여기 앉으라"며 다른 승객을 무릎에 앉혀 가는 모습도 보였다.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6일 오전 146번 버스 첫차에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2023.01.06. fe@newsis.com


이날 버스 안에서는 앞으로 첫차 시간이 앞으로 15분 당겨질 것이란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한 총리가 승객들을 만나 "이달 중순부터 15분쯤 빨리 첫차를 탈 수 있을 것"이라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봉은사역 인근 빌딩에서 청소 일을 하는 남성복씨는 "5분, 10분이 우리에겐 피 같다"며 "그때 총리가 왔을 때 우리가 박수라도 쳤어야 했다"고 해맑게 웃었다.

이처럼 기대감이 높은 것은 그만큼 첫차 이용객들이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146번 버스는 기점에서 세 대가 동시에 출발하지만, 수락산역, 마들역, 중계역 등을 지나며 빈자리가 빠르게 채워졌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승객들은 앞 차가 가득 찬 걸 보고 뒤이어 따라오던 두 대의 146번 버스를 빠르게 훑어보고는 사람이 더 적은 차를 저울질했다.

오전 4시45분께 차가 먹골역에 다다랐을 때부터 버스는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17년째 146번 버스를 운전한 김덕연씨는 연신 "안으로 더 들어가달라"고 요청했고, 첫차를 꼭 타야 하는 승객들은 어떻게 해서든 비집고 타려 했다.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승객이 가득 찼던 146번 버스 첫차가 6일 오전 5시30분께 역삼역을 지나며 한층 한산해졌다. 2023.01.06. fe@newsis.com


안전사고 우려도 적지 않아 보였다.

버스 안에 빼곡히 들어찬 승객들은 버스가 흔들리면 따라서 흔들렸다. 속도를 줄이거나 모퉁이를 돌 때마다 하체 근력이 부족한 고령 승객들은 "어우매야"라며 곡소리를 냈다.

선릉역 주변 빌딩에서 청소 일을 하는 이모씨(68)는 "한번은 (버스에 구비된) 손소독제가 가슴 부위를 찔렀는데 사람이 많아서 옴짝달싹도 못 했다"며 "그때 너무 아팠던 기억에, 서울시에 민원을 넣었고 시가 버스 안의 손 소독제를 없앴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146번 버스에서는 손소독제를 볼 수 없었다.

버스가 1시간여를 달려 영동대교를 건너고 나서야 사람들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삼성역을 거쳐 선릉역을 지나자 빈자리가 생겼고, 강남역에 이르러서는 모든 승객이 내렸다.

가방에 아침과 점심 도시락을 싸 왔다는 김씨는 1시간30여분 만에 차에서 내려 가방을 달그락거리며 뛰어갔다.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6일 오전 4시5분께 출발한 146번 버스 첫차가 5시30분께 강남역에 도착했다. 승객들을 내린 146번 버스 세 대가 줄줄이 강남대로를 달리고 있다. 2023.01.06. fe@newsis.com

☞공감언론 뉴시스 f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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