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사 변신 미셸 콴, 대만 대사 만남으로 임무 시작
지난달 13일 중미 카리브해의 소국 벨리즈 주재 미국 대사관 소셜 미디어에 미국 대사와 대만 대사가 나란히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미국 대사는 대만·벨리즈 양자 관계를 높이 평가했으며, 두 대사는 벨리즈의 민주주의 제도 강화를 위한 협력을 다짐했다는 글이 달렸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 수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중국을 겨냥한 간접 경고라는 해석도 나왔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주장하며 대만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고 있는데, 벨리즈는 대만과 수교한 열네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중국계 여성인 사진 속 미국 대사는 미셸 콴(43)이다. 1990~2000년대 세계 최고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활약하던 그가 지난달 2일 주 벨리즈 미 대사로 부임하며 외교관 활동을 본격 시작했다. 첫 공식 활동은 지난달 8일 열린 폭력 피해 여성 희생자 추모 행사였다. 콴은 이 행사에서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고, 극단적 빈곤을 끝내고, 활력 넘치는 경제를 구축하는 데 있어 성평등과 여권 신장은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벨리즈의 주요 언론사들이 그가 촛불을 켜고 묵념하는 장면을 보도했다. 그는 지난달 15일에는 중남미치안원조계획의 일환으로 벨리즈에 88만3000달러의 건물·차량·장비 등을 기증하는 행사에 참석해 경찰 관계자들에게 직접 물품을 전달했다.
벨리즈는 면적(2만2970㎢)은 한반도의 10분에 1이고, 인구(40만명)는 서울 서초구 정도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아름다운 산호초와 수많은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원시림을 간직하고 있어 미국·캐나다인들이 즐겨 찾는 생태관광지면서 찰스 3세 영국 국왕을 국가 원수로 둔 영연방 입헌 군주국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작년 12월 외교·안보 분야 고위급 8명 인선을 발표했을 때 콴은 캐럴라인 케네디(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 호주 대사 내정자와 함께 주목받았다. 바이든은 콴의 인선 배경에 대해 “공직·외교·스포츠 분야에서 탁월한 경력을 쌓았다”고 밝혔지만, 대선 승리 논공행상이란 비판도 적지 않았다. 콴은 2019년 12월 중서부 아이오와주에서 바이든 유세의 흥을 돋우기 위해 직접 빙판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등 바이든 캠프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대사 지명 후 부임까지 꼭 1년 걸렸다. 미 대사직은 상원 인준을 거쳐야 하는데, 여야 갈등, 의회 일정, 대외정책 우선순위 등 각종 변수에 따라 기약 없이 지체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14년에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의 측근인 카산드라 버츠가 바하마 주재 대사에 지명됐지만, 상원 인준을 2년 2개월 동안 기다리다가 사망한 일까지 벌어졌을 정도다. 지난해 9월 상원 인준 절차가 진행됐고, 콴은 “대사가 되면, 벨리즈 정부와 경제·코로나 분야에서 협력하고 이민자 유입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방안도 고민하겠다”고 다짐했다.
콴은 현역 시절 세계선수권 5회, 전미선수권 9회 우승을 포함해 우승컵만 43차례 들어올렸다. 올림픽에서는 은메달(1998년 나가노)과 동메달(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을 땄지만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어 ‘비운의 피겨 여제’로도 알려져 있다. 은퇴 후 국무부 공공스포츠특사와 국제스페셜올림픽 이사회 감사 등으로 활동했다. 한국에는 ‘김연아의 우상’으로 친숙하다. 김연아는 선수 시절 존경하는 선배로 콴을 꼽았고, 두 사람은 아이스쇼 등 공개 행사에서 여러 차례 돈독한 모습을 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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