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이철희]부모급여는 저출산 문제의 ‘표피’를 건드릴 뿐이다

이철희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경제학부 교수 2023. 1. 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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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지원 확대, 단기적 효과 거둘 수 있지만
불안한 소득과 고용 등이 저출산 근본 요인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푸는 청사진 마련해야
이철희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경제학부 교수
해가 바뀌면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인구정책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출산 추이를 받아들이고 고령사회에 적응·대응하는 데 주력한다는 방향성이 읽힌다. 또한 광의의 사회·복지정책에서 벗어나 효과성이 높은 방안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저출산 대응에 있어서는 특히 자녀 양육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데 역점을 둔 듯하다. 새해부터 만 0세 아동 가정에 월 70만 원, 만 1세 아동 가정에 월 35만 원을 지급하기로 한 ‘부모급여’ 제도는 이러한 의도를 잘 보여준다.

이제까지 드러난 현 정부의 인구정책 방향에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보완해야 할 부분도 눈에 띈다. 우선 저출산 완화와 고령화 대응을 별개의 문제로 바라보고 무게 중심의 이동을 따지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한국의 인구 고령화는 나이 든 인구의 절대적인 증가보다는 젊은 인구의 감소로 인해 고령인구 비중이 높아지는 현상을 주로 반영한다. 출생아 수를 늘리지 못해도 그 감소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면 인구변화 대응에 필요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적응 혹은 대응해야 할 미래가 현재의 노력에 따라 변할 수 있으므로 저출산 완화와 인구변화 대응에는 적절한 균형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출산 완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다양한 문제들의 우선순위를 각각의 시급성과 난이도에 따라 적절하게 설정하고, 단기 및 장기 대책을 균형 있게 추진하는 전략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 현상에는 다양한 층위의 요인이 존재한다. 가족의 경제학에 따르면 일반적인 재화의 경우처럼 자녀에 대한 수요는 선호(자녀를 갖고자 하는 의사), 소득(경제적 여건), 가격(양육 비용) 등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양육 비용은 금전적 비용, 자녀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소득, 여가나 성취 등을 반영하는 기회비용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을 정책에 의해 비교적 단기간에 바꿀 수 있는 요인부터 그렇지 않은 근본적·구조적 요인까지의 순으로 나열한다면 아마도 금전적 비용, 기회비용, 경제적 여건, 자녀에 대한 선호 순서일 것이다.

부모급여는 최근 시행된 아동수당, 영아기 집중투자 사업과 마찬가지로 자녀 양육의 금전적 비용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저출산 문제의 ‘표피’를 건드리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현금 지원 확대는 출산율 저하 추이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그 효과는 출산 의사가 있고 경제적 여건이 갖추어진 계층에 제한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영유아를 보육시설에 맡겨야 하는 부모에게 지급되는 액수는 보육료 바우처를 제외한 월 18만6000원에 불과한 만큼, 출산 후에도 일을 그만둘 수 없고 육아휴직을 쓰기도 어려운 맞벌이 부부가 체감할 비용경감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

필자는 이처럼 ‘표피’를 건드리는 단기적인 정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출산의 ‘경계’에 있는 유배우(有配偶) 인구를 대상으로 한 출산 지원 정책은 비교적 빠르게 그 성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가까운 장래에 출생아 수 감소세를 다소나마 완화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장기적·근본적 대책만을 고집하는 정책 기조는 지금 자녀를 가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할 수 있다.

그렇지만 표피를 건드리는 정책만으로는 결코 저출산 문제에 성공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경제활동을 포기하거나 일자리에서의 성공을 양보하는 데서 발생하는 자녀 양육의 기회비용은 금전적 비용보다 더 중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불안정한 고용 여건, 불안한 소득 전망, 취약한 사회안전망 등은 결혼이나 출산처럼 전 생애를 내다보아야 하는 결정을 어렵게 만드는 보다 근본적인 요인일 것이다. 무엇보다 저출산 현상의 심층에는 자녀가 행복하지 않아서 더 이상 부모의 기쁨이 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있다. 태어날 세대가 교육과 노동시장의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자칫 영구히 2등, 3등 시민으로 추락할지 모르는 위험하고 비정한 사회에서, 아이가 걱정되어 아이를 낳지 못하는 현상은 놀랍지 않다.

필자는 이번 정부가 저출산 현상의 밑바닥에 있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구조적인 문제들을 외면하지 말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장기적인 청사진을 마련하기를 희망한다. 이는 매우 어려운 과업이다. 그 성과가 먼 미래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어떤 정치 지도자에게도 인기 있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과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요구한다.

이철희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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