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美 소비천국 된 '사소한' 이유

김현석 2023. 1. 3.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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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모든 걸 다 가진 나라다.

연수와 특파원을 거치며 미국 생활 7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피트, 야드 등에 적응하지 못했다.

미국이 소비 천국이 된 데는 이런 낮은 화폐 단위에 의한 심리적 요인도 한몫할 것이다.

한국은 내수 소비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몫이 미국의 절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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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 뉴욕 특파원

미국은 모든 걸 다 가진 나라다. 영토는 대한민국의 100배에 달하고 에너지와 식량을 자급자족한다. 셰일 오일이 쏟아진 뒤 더는 중동을 챙기지 않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유럽처럼 흔들리지 않는 이유다.

그러다 보니 무역이 꼭 필요하지도 않다. 세계 모든 나라가 더 편리한 교역 등을 위해 도량형 단위를 미터법으로 바꿨는데, 홀로 ‘임페리얼’ 식을 고수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우리 식으로 하면 말, 되 등과 같은 피트(Ft), 야드(yd), 파운드(lb), 온스(oz) 등을 아직도 쓰고 있다. 임페리얼 식의 원조인 영국도 유럽연합(EU)에 가입한 뒤 미터법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가깝게 느껴지는 마일 거리

연수와 특파원을 거치며 미국 생활 7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피트, 야드 등에 적응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미터법으로 환산해야 얼마나 되는지 피부에 와닿는다.

참 불편하지만, 장점이 하나 있다. 거리다. 차를 몰고 하루 1000㎞를 간다는 건 한국에선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서울~부산을 왕복하고도 200㎞를 더 가야 하는 거리이니 말이다. 하지만 미국을 여행할 때 하루 600마일(1마일=1.609㎞)씩 여러 번 달렸다. 같은 거리지만 1000㎞가 아니라 600마일이라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땅덩이가 넓은 나라에선 ‘임페리얼 식 도량형이 낫겠구나’란 생각도 들었다. 사실 1982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 미터법 도입을 중단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땅이 넓고 도로가 많다 보니 미 전역의 도로표지판을 바꾸는 데만 수년간 매년 200억달러가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화폐 액면 단위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13만원짜리라면 망설일 때가 많지만, 미국에서 99.9달러짜리를 살 땐 그렇지 않다. 달러를 쓰면 싸게 느껴지고 그래서 더 쓰게 된다. 사실 판매세와 팁을 감안하면 99달러짜리가 더 비싼데도 말이다.

미국이 소비 천국이 된 데는 이런 낮은 화폐 단위에 의한 심리적 요인도 한몫할 것이다. 한국은 내수 소비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몫이 미국의 절반에 불과하다. 나는 원화의 높은 액면 단위가 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리디노미네이션 검토 필요

지금이라도 중장기 과제로 화폐 액면 단위를 낮추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을 검토했으면 한다. 1000 대 1로 낮춰서 1달러 대 1원을 만들자는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달러 환산 환율이 네 자릿수인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이미 젊은 층이 다니는 카페와 식당, 쇼핑몰 등은 1만원을 1.0으로 쓰는 곳이 많다. 그렇게 표기하는 게 편리하고 판매 증진에도 좋기 때문일 것이다. 2004년 한국은행의 리디노미네이션 비용·편익 연구에 따르면 화폐 교체 등에 2조6000억원의 비용이 들지만, 각종 거래에서 계산과 지급, 회계 등이 간편해지고 소비가 진작되는 등 편익이 5조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됐다.

리디노미네이션은 인플레이션, 경제 혼란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는 후진국이 주로 시행해온 탓일 것이다. 당장 하자는 것도 아니다. 올해는 경제적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괜한 혼란을 더할 필요는 없다. 성공적 리디노미네이션엔 몇 년이 필요한 만큼 미리 검토하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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