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번 버스 15분만 당겨주오”… 韓총리, 서울시장에 전화한 사연

김은중 기자 2023. 1. 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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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노동자 탑승하는 146번 버스
첫차 시간 4시5분→3시50분으로
’만원 버스’서 승객들 함성
한덕수 총리가 2일 오전 4시 146번 버스에 탑승해 탑승객들에게 핫팩을 나눠주고 있다. /뉴시스

새벽 4시5분 서울 노원구 상계10동 우체국 정류장에서 출발해 강남역까지 57.2km를 왕복 운행하는 파란색 146번 시내버스가 있다. 누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버스를 타겠나 싶지만 매일 ‘만원 버스’가 돼 강남까지 달린다. 평일 배차 간격은 1~12분으로 특별할 게 없는데, 서울 시내 373개 버스 노선 가운데 유일하게 첫차가 3대나 동시에 출발한다. 주요 탑승객은 고층 빌딩이 즐비한 강남 오피스에서 빌딩 청소부, 경비원, 건설 노동자로 일하는 이들이다. 이 버스에 타는 누군가는 이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불쌍하면서도 대단한 사람들” “개미 같이 부지런한 사람들”.

매번 같은 시간에 같은 사람들이 탄다. 그렇게 새벽 버스는 하나의 ‘커뮤니티’가 됐다. “매일 같은 버스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이제는 식구같이 느껴진다” “타던 사람이 안 보이면 ‘요새 무슨 일이 생겼나’하고 걱정이 들 정도”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버스에 탑승했던 한 총리실 관계자는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십수년씩 같은 시간에 같은 버스를 타고 다니는 분들이 많아 거의 ‘커뮤니티’ 같은 느낌이 드는 버스였다”고 회고했다.

‘검은 토끼의 해’ 둘째날인 2일 만원 버스에 특별한 사람 한 명이 탑승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오전 4시 5분 출발하는 첫차를 타고 강남까지 동행하며 애로 사항을 청취한 것이다. 추운 날씨에 총리실 직원들이 핫팩을 토끼 모양 포장지로 접어 한 총리와 함께 승객, 기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그저 여느 고위 인사의 판에 박힌 새해 첫 일정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날은 조금 달랐다. 버스 안이 한 총리에 환호하는 승객들의 함성으로 가득찼기 때문이다. 한 총리가 오랜 ‘숙원 사업’을 하나 해결했기 때문.

한덕수 총리가 2일 146번 버스 탑승객들에게 선물한 핫팩. 총리실 직원들이 나서서 핫팩을 토끼 모양 포장지로 접었다고 한다. /총리실 제공

오전 4시5분에 출발하는 버스 첫차 시간을 오전 3시50분으로 15분만 좀 당겨 달라는 것이 탑승객들의 오랜 소원이었다. “오피스 직원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오전 5~6시 전에는 청소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1분이 너무 아쉽고 시간이 촉박하다” “강남역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건물까지 냅다 뛰어야 한다”고 했다. 최대한 직원들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 것이 숙명인 이른바 ‘인비저블 워커(invisible worker)’의 비애 같은 것이다. 새벽에도 부지런히 서울을 남북으로 가로 지르는 ‘심야버스’를 타고 더 부지런히 출근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간선버스라 동네마다 서지 않는다. 몇천원을 주고 정류장까지 택시를 타야하는데 이들 입장에서는 언감생심인 것이다.

이런 소식을 들은 한 총리가 연말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꼭 좀 해결해보자”고 했다. 오 시장도 흔쾌히 “기꺼이 의기투합하겠다”는 뜻을 밝혀 서울시 실무자들이 협의·조정에 들어갔다. 총리실은 “아직 노사협의가 남아있고 버스 기사님도 추가로 채용해야 하지만, 이달 중에는 첫차 시간을 3시50분으로 당길 수 있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이날 버스에 오른 한 총리가 말했다. “첫차 시간을 곧 당겨드릴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새해 첫날이자 일요일인 1일부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이들의 어깨가 올해 조금은 가벼워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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