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애 도인’의 삶과 철학에 지역의 숨을 불어 넣다

김진형 2023. 1. 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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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 오현스님 입적 5주기 특집
지역·분야 가리지 않는 보시 실천 2018년 입적
지역사회 선양사업 비롯 추모공간 필요성 제기
본지,종교·문화예술 아우르는 선양 토대 준비

아득한 성자 -조오현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2023년은 마지막 ‘무애(無碍)도인’ 무산 오현스님 입적 5주기가 되는 해다. 귀천과 종교와 상관없이 세상에 대한 문턱을 낮추고 모두를 품었던 오현스님은 2018년 5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강원도민일보는 오현스님 5주기를 맞아 종교와 문화예술계를 아우르는 그의 삶과 철학을 조명하며 선양 사업의 토대를 다지는 해로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

193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오현스님은 7세에 입산, 1968년 범어사에서 구족계를 수지했다. 조계종 중앙종회의원과 원로의원, 백담사와 신흥사 조실을 역임한 오현스님은 지역과 중앙, 분야를 가리지 않고 보시를 실천한 스님이었다. 특히 1997년 만해 한용운을 기리는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설립, 이사장을 맡아 ‘만해축전’을 시작했고 2003년에는 인제 북면 용대리에 만해마을을 세웠다. 강원도 문인들의 쉼터로 널리 사랑받은 곳이다. 앞서 1999년 ‘불교평론’을 창간하고 만해 한용운 스님이 창간했던 ‘유심’을 복간하기도 했다. 백담사에서 2018평창동계올림픽 계획을 세웠다는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와의 오랜 인연은 지금도 회자된다.

직설적 문장으로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문인이자 문화예술인들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1968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한 스님은 1979년 첫 시집 ‘심우도’를 시작으로 현대시조문학상, 가림시조문학상, 정지용문학상, 공초문학상, 시조시학문학상, 고산문학상, 이승휴문화상 문학상을 수상했고 은관문화훈장도 수훈했다.

지금도 한국 문단 곳곳에서는 오현스님을 추모하는 글이 잇따른다. 한글 선시의 개척자로도 꼽히는 오현스님의 시 세계는 해외에서도 번역되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 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고 언급한 시조 ‘적멸을 위하여’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시인 월레 소잉카가 “이 시 하나에 ‘평화’라는 우리의 주제가 다 압축되어 있다”면서 “대단한 인물”이라고 경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현스님의 법문은 늘 파격적이었다. 종교와 장르를 뛰어넘는다. 1980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식당 일을 하던 중 가톨릭 신부의 초청으로 성당에서 초청강연을 했다. 2015년 무문관 수행을 마치고 나서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 중 “끊임 없이 추구하라, 우직하게 버텨내라(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구절을 언급하기도 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언행 속에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몸소 보여주는 영원한 수행자였다. 주변 삶에서 경전과 선 지식을 찾으라고 당부했다. “중생이 선지식, 그들의 삶이 팔만대장경”, “죽은 경전에 매달리지 말고, 중생 삶 속에서 가르침 찾아야”라는 법문들이 그렇다.

오현스님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다면 큰 돈을 보시했다. 자신은 그저 먹고 살만큼의 돈이 있으면 됐다. 이학주 한국문화스토리텔링 원장은 “오현스님은 가시기 전 일면식도 없는 저에게 용돈 1000만원을 주셨다. 그때 나에게는 당신이 부처님이었다”고 했다. 실제로 스님이 마지막으로 보시를 전한 대상은 백담사와 함께 호흡해 온 인제 북면 용대리 주민들이었다. 입적 3일 전 용대리 이장들과 백담사 셔틀버스 기사들을 만해마을로 불러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놨다.

▲ 지난 해 9월 19일서울 북악산 자락에 무산선원이 개원했다. 선원은 문화예술인들의 소통공간이자 2018년 입적한 무산스님의 화합과 상생 정신을 선양하는 곳이다. 연합뉴스

입적 이후 계속돼 왔던 오현스님의 선양사업은 최근 더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불교계 뿐만 아니라 종교와 장르를 뛰어넘어 문화예술 분야에서 그의 철학과 정신을 두루 조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설악산 신흥사에는 지난해 부도탑과 부도비가 조성됐으며 김병무·홍사선 시인은 2019년 스님을 기억하는 이들의 글을 모은 모음집 ‘설악 무산, 그 흔적과 기억’을 펴냈다.

특히 오현스님의 상좌 모임인 무산문도회는 지난 9월 서울 북악산 자락에 스님을 추모하는 복합문화예술공간인 무산선원을 개원했다. 이곳에서는 제1회 만해·무산스님 선양 시낭송음악회에는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 신달자·오세영·정호승·김남조·이근배·곽효환·도종환 시인,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무산선원 주지를 맡은 선일 스님, 안숙선 명창 등이 참석해 문화예술인들의 축제가 됐다. 스님의 무경계 보시를 상징하듯 선원 입구에는 불상과 성모마리아상이 함께 놓였다. 강원지역 불자들 사이에서는 오현스님을 기억하고 기리는 사람들을 위한 추모 공간이 백담사 등 지역에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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