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간 쌓은 출판기업 저력 … 미술 인재양성으로 확대할 것”[M 인터뷰]

박현수 기자 2022. 12. 30.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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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경기 파주시 문발동 출판단지에 위치한 ‘갤러리박영’에서 안종만 도서출판 박영사 회장이 한지에 프린트한 고 안원옥 박영사 창립자 사진과 박영사가 펴낸 도서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동춘 사진작가 제공
안종만 도서출판 박영사 회장이 지난달 21일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오늘날 박영사가 있게 한 것은 ‘널리 인재를 양성한다‘는 가치철학을 담은 ‘박영(博英)’ 의 기업 정신이 그 뿌리”라고 강조했다. 이동춘 사진작가 제공
안종만(왼쪽) 도서출판 박영사 회장과 안수연 갤러리박영 대표. 이동춘 사진작가 제공
도서출판 박영사 창립 70주년과 갤러리박영 개관 15주년을 기념해 이동춘 사진작가가 박영사에서 펴낸 도서를 소재로 제작한 특별전시회 포스터. 갤러리박영 제공

■ M 인터뷰 - 창립 70주년 맞은 박영사 안종만 회장

1952년 창립 ‘대중문화사’ 모태

선친부터 3대에 걸쳐 가업 이어

법학·경제학 등 8000종 발간

전자책 플랫폼 등 변화 모색도

파주출판단지 첫 갤러리 개관

동양·현대미술 등 600점 수집

널리 인재양성‘박영 정신’바탕

작가 창작 지원 프로그램 지속

3대에 걸쳐 가업을 잇는 기업은 흔치 않다. 정신적 가치철학 없이는 불가능하다.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은 도서출판 박영사가 그런 기업 정신을 바탕으로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초겨울이 발걸음을 재촉하던 지난달 21일 안종만 박영사 회장을 만나기 위해 경기 파주시 문발동 출판단지를 찾았고, 창립 70주년 기념 특별전시회 개막일인 29일 다시 방문해 갤러리를 둘러봤다. 그동안 자유로를 수없이 지나다녔지만, 막상 단지를 방문하기는 처음이었다.

출판단지는 한강과 심학산 사이에 터를 잡은 명당자리로 마치 고향에 온 듯 고즈넉하니 마음이 편안했다. 숨소리가 내 귀에 들릴 정도로 조용한 이곳, 실개천 사이로 ‘갤러리박영’ 건물이 보였다. 건물 자체가 예술품이다. 건축가 김영조가 설계했으며 3개의 전시실과 미디어 카페를 갖춘 3300㎡ 규모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니 박영사 70주년 기념전이자 갤러리박영 15주년 특별전 ‘두레문화, 박영70’ 전시회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두레문화, 박영70’은 여러 갈래로 통함의 의미를 되씹게 한다. 출판문화 70년을 이어온 3대의 마음 통함이 ‘두레’ 한마디에 담겼다는 정재숙 전 문화재청장 추천사가 눈에 띄었다.

박영사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1월 18일 부산 부평동에서 벽송 고 안원옥 선대회장이 창립한 ‘대중문화사’가 모태다. ‘대중의 문화와 지식을 함양하자’는 의미를 지닌 대중문화사는 8·15해방과 6·25전쟁이라는 격동의 혼란기에 고 안 회장의 대중적 계몽과 지식전달에 대한 강한 의지로 태동한 것이다. 그 후 1954년 ‘널리 인재를 양성한다’는 가치철학을 담아 ‘박영(博英)사’로 상호를 등록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영사는 대학교재 및 전문학술서적 출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법학을 중심으로 경제학·경영학을 비롯해 인문학·교육학·심리학·검인정교과서(중·고등학교)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도 발간해 웬만한 사람이면 박영사에서 출간한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지난 70년 동안 우리나라 출판을 선도해왔다. 그간 발간한 책이 8000종이 넘는다.

다음은 일문일답.

―창립 70주년을 맞아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1971년 스물다섯 살에 출판일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죽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당시에는 어음에다가 정가에 보통 10% 할인을 해주는 일이 많아 5% 이윤을 바라보고 책을 내다보니 주변에 부도난 출판사도 많았다. 출판사뿐이었겠나.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살아남기가 힘든 세상을 겪어왔다. 감회가 새롭고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힘들었나.

“노무현 정권 때 대학에 법대를 줄이고, 사법시험을 폐지하는 바람에 전체 매출 70%를 차지하던 법률 서적이 결국 재고로 쌓여 큰 위기를 겪었다. 그때 가족처럼 일하던 70여 명의 직원이 먹고살기가 막막해졌다.”

―어떻게 극복했나.

“법률 서적을 중심으로 출판하되 2030세대들을 겨냥한 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온라인판매시스템을 도입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 전자책을 만들어 판매한 덕분에 제법 팔렸고 회사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살아야 한다. 현재 전자책 플랫폼도 개발하고 있다.”

―박영사는 한국에서 처음 정찰제를 시작해 당시 반향을 일으켰다.

“책을 10%씩 할인 판매하는 행위가 결국 제 살 깎아 먹기로 출판사와 서점 부도의 원인이 되고 서점을 영세하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대학원 논문 제목도 ‘출판사의 매출 채권 관리에 대한 연구’였다. 초기엔 서점들이 거래를 끊는 등 반발했지만, 나중에 수익이 올라가니까 서점도 출판사도 더불어 살게 됐다. 지금 돌아보면 대단히 잘한 결정이었다.”

―사전을 만들어 크게 성공했다고 하던데.

“경제학대사전, 경영학대사전, 유교학대사전 등을 만들어 박영사가 학술전문 출판사로 인식됐다. 특히 꼬박 3년 작업 끝에 1964년 경제학대사전을 발행한 것이 대박이 났다.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박영사의 위상을 크게 높였고 십수 년 동안 박영사 기둥으로 먹여 살렸다.”

―파주출판단지를 조성한 주역으로 알고 있다.

“1995년쯤 출판인들 몇 명이 영국에 갔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영국 웨일스 지방에 헤이 온 와이(Hay on Wye)라는 책 마을(Book Town)이 있다. 낙후돼 가던 지역이 1년에 두 번 정도 책 축제를 열어 한 해 50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변했다. 책 마을이 한 지역을 발전시키는 데 엄청난 인프라가 된다는 것을 확인한 거다. 그래서 우리도 한국에 책 마을을 만들기로 결의했는데 당시는 이곳엔 일산신도시도 자유로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토지개발공사로부터 싼값에 땅을 매입했다. 이후 주변에 자유로와 일산·운정신도시, 롯데아울렛 등이 들어서면서 지역이 엄청 달라졌다. 땅값도 많이 올랐다. 하하하. 일일이 얘기하자면 며칠 밤을 새워도 다 못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이다. 지나치게 세속에 따르지 말고 믿음으로 실천하는 자에게 복이 온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안 회장은 출판단지를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그로 인해 박영사는 출판사로도 이름을 널리 알렸지만, 미술계에서도 유명해졌다. 안 회장은 소문난 그림 애호가인 부친으로부터 그림 보는 눈을 키웠다. 부친은 동양화에만 조예가 깊었으나 안 회장은 전광영 등 국내 작가를 비롯해 루이스 부르주아 등 해외 현대미술작품까지 아우를 정도로 컬렉션 규모가 방대하다. 그의 장녀인 안수연 갤러리박영 대표도 미술계에서 알아주는 컬렉터다. 안 대표는 서울예고에서 무용을 전공한 후 유학을 마친 다음 6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다 2008년 11월 문을 연 갤러리 운영을 돕기 시작했다. 대표가 된 올해부터는 박영사의 출판 노하우를 살려 ‘안수연 에세이’ ‘아트북’ 시리즈도 내놓을 계획이다. 할아버지로부터 출판은 손자 안상준, 갤러리는 손녀 안수연으로 이어지는 3대가 ‘미술’과 ‘출판’으로 가업을 계승하고 있다. 3대를 걸치며 수집한 미술품만 600점이 넘는다.

―출판단지에 갤러리 1호 갤러리박영을 개관한 배경은.

“넓게 인재를 양성한다는 도서출판 박영사의 기업 정신을 미술 쪽으로 이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파주출판단지를 북시티로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적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출판사들이 빨리 들어와 멋진 사옥을 짓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다.”

―출판단지에 쇼핑몰을 지어 분양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참 무모했다. 책 만드는 사람이 건설 분양업을 했으니 말이다. 정신적, 경제적으로 어려움도 많았다.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그 고난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해 이 또한 하나님의 은총이다.”

―갤러리 건물 자체가 예술품 같다. 건축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유럽을 20번도 더 가봤다. 2000년에 지인들과 스페인 북부에 있는 빌바오의 구겐하임 뮤지엄과 독일 베를린에 있는 슈투트가르트에 가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구겐하임도 중요하지만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지은 건축물을 보기 위해 6개월간 140만 명이나 되는 관광객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건축물 하나가 이 정도로 경제·문화성이 있다는 것에 대해 감탄했다. 그래서 갤러리는 건축가 김영조에게, 쇼핑몰 ‘이채’는 지금은 무너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설계한 일본계 미국인 건축가 미노루 야마사키 팀에 설계를 맡겼다.”

그러나 평일 오후여서인지 갤러리 주변은 인적이 드물고 한산했다. 그림을 보러 이 먼 곳까지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갤러리 운영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파주출판단지 조성 작업이 난항을 겪으며 갤러리 운영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갤러리 개관 때부터 진행하던 작가 후원 프로그램이 중단된 적도 있다. 2009년 금융위기 때는 그림이 박영사와 나를 살렸다. 1995년에 샀던 그림을 10여 점 팔면서 위기의 순간을 넘겼다.”

―어려움 속에서도 신진 작가들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업활동은 이윤 추구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며 장학사업과 학술지원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한 선친의 유지를 따른 것이다. 미술계 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사업은 박영사 기업 정신이요, 가치철학의 실천이다. 박영장학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지난 30년 동안 1000명이 넘는 학생을 선발해 지원했다.”

―어떤 작가들을 배출했는지.

“갤러리가 오픈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작가가 많다. 그중 유명 작가가 된 사람들도 있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인 이진준 작가가 대표적이다. 2023년 개관 예정인 카이스트미술관 관장으로도 임명됐다. 이 외에도 김범수, 이지현, 이주형 작가 등이 있다. 앞으로도 안 대표가 신진작가를 발굴하는 사업을 꾸준히 이어갈 것이다.”

안 회장은 50여 년간 한우물을 판 출판계의 산증인이자 미술과 건축에 이르기까지 ‘종합문화예술인’으로 우뚝 섰다. 박영사가 4대를 넘어 100년 명문 장수기업으로 이어져 파주 출판단지가 영국 ‘헤이 온 와이’보다 더 유명해지길 기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고서 전시로 70년 발자취 회고 … 선대회장부터 수집한 미술품도 선보여

■ ‘두레문화, 박영70’ 특별전

29일부터 내년 2월 15일까지 박영사 창립 70주년 및 개관 15주년을 맞아 경기 파주시 문발동 갤러리박영에서 특별전 ‘두레문화, 박영70’이 열리고 있다. 갤러리박영의 문화예술 뿌리는 고 안원옥 박영사 창립자의 미술문화 사랑에서 비롯됐다. 1992년 작고 후 갤러리박영의 깊은 수장고에 보관돼 있던 작품들이 3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다. 전시될 작품에는 운보 김기창, 연담 김명국, 청전 이상범, 의제 허백련, 심전 안중식 등의 고미술품이 포함돼 있다. 또 70년 전 박영사 고서 전시와 토머스 엘러가 제작한 박영사의 ‘경영전략’ 도서의 조형작 등 책을 이용한 다양한 평면조각 설치작도 선보인다.

특히, 이번 기념전을 계기로 박영사의 과거 출판물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조명해 세대별로 느끼는 박영사 고서의 느낌을 재해석한 이동춘·오재우 작가의 커미션 워크를 통해 ‘벽송 컬렉션’의 가치를 되짚는 신작들을 선보인다. 이 중 한국의 서원과 한옥, 사찰, 종가의 제례 문화를 담은 사진가 이동춘은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작가로, ‘박영사 고서’의 사진을 한지로 프린트한 사진작을 이번 전시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정재숙 전 문화재청장의 전시 추천사는 역사성을 강조하는 전시의 의미를 드높여 주고 있다.

두레는 원시적 유풍인 공동노동체 조직으로서 농촌사회의 상호협력, 감찰을 목적으로 조직된 단위다. 이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변의 이웃과 함께 힘을 합침으로써 과업을 성취하는 한민족의 유구한 공동체 정신을 표상하는 문화다. 이번 전시는 박영사 70년을 압축하는 키워드로 ‘두레정신’을 선정해 국가와 민족공동체를 위해 박영사가 힘써왔던 정신을 기리자는 취지다.

고 안원옥 선대회장이 6·25전쟁의 상황에서도 양서출판을 통한 국가 인재 양성 과정, 안 회장이 각 출판사의 협력을 이끌어 이룩한 파주출판단지 형성과 박영장학문화재단 설립을 통한 장학사업, 그리고 손녀인 안수연 갤러리박영 대표의 국내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3대에 걸친 박영사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두레정신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다.

박현수 기자 phs200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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