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은 엄마들 많아요, 잘 안 보이는데 굉장히 많아요[나, 어린 엄마③]

조해람 기자 2022. 12. 2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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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설명회에서 만난 교수와의 인연으로 성아는 조금 늦은 캠퍼스 생활을 시작했다. 장거리 통학과 두 아들의 육아를 동시에 해내느라 녹초가 됐다. 홀로 딸을 키우는 서연도 바쁘긴 마찬가지였다. 스물한 살 엄마에게 일과 육아의 병행은 버거웠다. 아이를 봐줄 다른 가족이 없는 둘에게 ‘돌봄’이란 남들보다 훨씬 무거운 문제다.

두 어린 엄마는 곳곳에서 편견에 부딪혔다. 가시 돋친 말들. 악의 없는 질문조차 때로는 상처가 됐다. 반대로 색안경 없이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삶을 그 자체로 인정받을 때 어린 엄마들은 가장 기뻤다.

수십 번 넘어졌고 자주 울었다. 앞으로의 삶도 마냥 꽃길만은 아닐 테다. 그래도 두 엄마는 다시 일어나 걸었다. 자기 앞의 삶을 꾸준히 걷던 3월의 어느 날, 성아와 서연이 마주쳤다.

■목차
① 트리에 빛이 열렸네
② 잭나이프 들던 애가 엉엉 운다
③ 우리 같은 엄마들
지난달 25일 경기 여주의 한부모 생활시설 놀이터에서 성아(가명·24)가 첫째아들 민준이(가명·5)와 놀아주고 있다. 한수빈 기자

아이돌봄 선생님이 아침 6시에 문을 두드리면 성아는 하품하며 일어나 문을 열었다. 두 아들, 민준이와 서준이를 깨워 아침을 먹이고 씻기면 7시였다. 7시 반쯤 성아는 서울 서대문구 한부모 생활시설 애란원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강변역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에서 선잠을 자며 한 시간을 달리면 D대학교가 나왔다. 2022년 1학기의 떠들썩한 대학에서 성아는 재활스포츠의 기본을 익혀나갔다.

강의가 다 끝나면 성아는 벚꽃 핀 캠퍼스를 나와 세 번 환승해 돌아왔다. 저녁 7시쯤 집에 와 아이들과 놀아주고, 두 아이가 잠에 빠진 밤 11시에야 성아는 펜을 잡았다. 과제를 하고 교재에 밑줄을 긋다 보면 고개가 꾸벅거렸다. 새벽 3시에야 잠에 들었다. 세 시간 뒤면 다시 아이돌봄 선생님이 똑똑, 문을 두드렸다.

재활스포츠 전공은 몸 쓰는 수업이 많았다. 성아는 목요일이면 녹초가 돼 종종 수업을 빼먹었다. 그러고도 1학기를 학점 3.98에 마치다니, 성아는 스스로가 대견했다. 학교와 집만 오가느라 대학 친구를 사귀지 못한 건 조금 아쉬웠지만.

성아는 사람 사귀길 어려워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가출팸과 시설을 떠돌던 청소년 때부터 성아는 거리의 여자아이들과 자주 연락했다. 아이를 가진 아이들은 성아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성아는 이렇게 말을 시작하곤 했다. “세상에 너만 힘든 건 아냐. 그런데 너가 힘들다고 느끼는 그게 지금 너의 가장 큰 불행인 건 나도 알아.” 여자아이들은 성아를 유독 따랐다. 대학에 간 뒤에도 성아는 그들의 상담에 시간을 내줬다. 아이를 낳고 잘해주고 싶으면 불편해도 시설에 가봐. 여기에 저기에 연락해봐. 야 너도 나 봐봐. 나도 개망나니처럼 살았는데 애 낳고 2차, 3차 시설까지 와서 지내고 있잖아.

지난 9일 경기 여주의 한부모 생활시설에서 둘째 서준이(가명·1)가 놀고 있다. 성아(가명·24)는 아이들의 저녁을 만들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성아의 그런 성격을 애란원 선생님도 잘 알았다. 2022년 초입의 어느 날 선생님이 성아를 불러 말했다. “청소년 한부모 자문단이라고 모집한대. 성아도 해볼래?” 성아는 물었다, “자문단이요? 뭐 하는 건데요?” 선생님은 설명했다. 한 비영리단체에서 한부모 지원사업을 시작하면서 당사자들을 자문단으로 구한다는 이야기였다. 자문단은 어린 엄마들에게 어떤 지원을 해야 하는지 조언해주고, 다른 엄마들에게 여러 서비스를 연결해주는 일을 한다고 했다. 성아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할래요!”

2022년 3월28일, 성아는 모처럼 먹색 코트를 꺼내 입었다. 오후 3시쯤 서울의 한 상담센터에 도착하니 성아 같은 청소년 한부모 넷이 모여 있었다. ‘더맘(The Mom) 2022년 1기 청소년자문단 위촉식’이라 적힌 현수막 아래에서, 애란원 원장님과 비영리단체 ‘희망친구 기아대책’ 선생님들이 성아를 맞았다. 엄마들은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고, 위촉장을 받고, 돌아가면서 자기 이야기를 했다. 성아가 입을 열었다.

“제가 성남에 살 때였어요. 동사무소에 한부모 신청을 하러 갔거든요? 신청하는데 거기 직원이 큰 소리로 한부모신청이요? 과장님! 여기 한부모신청하러 오셨다는데요! 그러니까 거기 있던 사람들이 다 시선집중되는 거예요. 아 진짜…. 나중에 전화로 민원 넣었어요. 사람들 편견 아직 많다고, 조심 좀 해달라고.”

성아는 사람들의 눈을 맞추며 힘줘서 말했다. 표현이 풍부하고 손동작도 컸다. 성아처럼 자문단 자격으로 참석해 성아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서연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 언니 멋있다. 아이 키우느라 피곤할 텐데 에너지가 있구나.’ 이야기가 동사무소 대목에 이르자 서연은 자신에게 짜증 내던 구청 직원을 떠올렸다. ‘맞아…그런데 저 언니는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긴장도 안 하고 할 말도 딱딱 잘하네. 멋지다.’

“사람들 인식이 이래요, 아직!” 성아가 마무리했다.

◆ ◆ ◆
지난 12일 서연(가명·21)이 집 거실에 전지를 붙여놓고 은지(가명·3)와 숫자 공부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위촉식에 참석했을 때 서연은 다니던 콜센터를 퇴사한 상태였다. 아빠를 떠나보내고 마음을 회복하며 딸 은지도 돌보기 위해 육아휴직을 쓴 게 2021년 4월이었으니, 3월이면 딱 복직 시점이었다. 그때 서연은 콜센터까지 왕복 3시간 거리인 서울 마포구 시설로 옮겨 살고 있었다. ‘어린이집 등원은 어떡하지, 데려올 때는 어쩌지….’ 서연의 걱정을 아는 회사는 파트타임으로 바꿔줄 수 있다고 했지만, 규정상 2주 정도 풀타임을 더 뛰어야 했다. 서연은 딱 2주 정도만 아이를 돌봐줄 아이돌봄 선생님을 밤새 찾았다. 시간이 맞는 선생님은 연결되지 않았고 서연은 직장을 그만뒀다.

회사를 그만둔 뒤 서연은 은지와 더 오래 시간을 보냈다. 서연은 고즈넉한 공원이나 천변, 고궁 같은 곳에서 마음이 편했다. 초등학생 시절, 아빠의 방임으로 분리돼 지낸 첫 그룹홈은 매일 전쟁터였다. 7명의 꼬마들은 ‘엄마’라고 불리던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엄마 어디가요, 놀이터가요, 엄마 쟤가요, 엄마 나랑 같이 놀아요…한마디라도 더 하려다가 목이 쉬었다. 고궁에 가면 서연을 혼내는 선생님도 없고, 사랑이라는 걸 좀 먹여달라며 선생님께 절박하게 조잘대던 시절도 먼 세상의 이야기 같았다.

서연은 은지의 손을 잡고 시장 골목을 걸었다. 걷다 보면 놀이터였다. 늘 혼자 놀이터에 갔던 아홉 살 때, 손이 찢어졌는데도 달래줄 엄마가 없었던 기억이 서연에겐 선명했다. 놀이터에서 은지와 놀아주면서 서연은 다른 엄마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고 따라 했다. 넘어지면 일으켜주고, 올려달라면 올려주었다. 아이가 웃으면 함께 웃었다.

지난 12일 서연(가명·21)이 어린이집에서 은지(가명·3)를 데리고 귀가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다 놀고 집에 와 침대에 누우면 은지가 올라와서 엄마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이랬는데, 저랬는데, 방실방실 떠들었다. 서연이 대답해주면 은지는 흥이 올라 더 재잘거렸다. 이런 사소한 반응도 다 좋아해 주는구나, 서연은 배워갔다.

봄날의 하루를 내 참석한 위촉식에서 서연은 곧은 자세로 앉아 말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혼자 아이를 돌보는 게 정말 어렵고, 급한 일이 생기면 아이돌봄 선생님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기아대책 더맘 사업 홍보책자의 디자인과 문구에 대해 차분하게 의견을 내는 서연을 보면서 성아는 생각했다. ‘와, 진짜 똑 부러진다….’ 성아는 자기 일을 하면서 아이까지 돌보는 서연이 멋져 보였다.

◆ ◆ ◆

위촉식을 마친 엄마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폭염이 한창이던 7월, 서연은 집과 가까운 보험사 하청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은지 아침을 먹이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뒤 출근해 팀원들과 휴대폰 파손보험 청구 서류 수백 장을 처리했다. 퇴근하며 어린이집에 들러 은지를 데려와 저녁을 먹이고 재우고, 숨을 돌리면 밤 11시였다. 피곤과 보람 사이를 오가던 어느 날에 서연은 대학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은지와 계속 함께하기 위해 좀 더 나은 일자리가 필요할 것 같았다. 너무 많이 벌었다간 또 한부모 자격이 상실될지 불안했지만 일단은, 그래도.

지난 8일 부엌에서 집안일을 하는 서연(가명·21)에게 딸 은지(가명·3)가 말을 걸고 있다. 한수빈 기자

방송통신대 경영학과 원서를 넣고 퇴사처리도 마친 11월 말의 어느 날, 서연은 친한 팀 언니 둘과 중국음식점에서 퇴사 기념 점심을 먹었다. “서연이는 잘 할 수 있을 거야.” “내년부터는 잘 지냈으면 좋겠어 정말.” 서연의 지난날을 다 알고 있는 언니들이었다. 돌아보면 사람들이 참 좋았다. 언니들도, 아이가 아플 때 무급휴가를 도와주신 부장님도. 물론 모두가 그들 같진 않았다. 서연은 어느 날 다른 팀 직원이 건넨 말을 잊지 못했다. 직원은 지나가다가 서연의 모니터에 붙은 가족사진을 보고 물었다.

“혹시 자녀예요?”

서연은 말했다. “네! 제 아이랑 아버지예요.”

“아, 동생인 줄…그런데 아이를 일찍 낳았나 봐요.” 직원은 궁금해했다.

“네 학생 때 낳았어요.” 서연은 말했다.

“학생 나이에 애를 받아줘요?” 직원이 놀랐다. “몰랐어요. 뉴스에서만 보던 사람이 정말 있구나.”

서연은 마음이 상했다. ‘기분 나쁘라고 하는 말은 아닌 거 같은데…’ 화내는 대신 서연은 말했다.

“저 같은 사람 많아요. 잘 안 나오는데, 잘 모르실 수 있는데 굉장히 많아요.”

‘그런 사람도 있었지….’ 언니들과 점심을 먹고 오후 3시에 마지막 퇴근을 한 서연은 집으로 향했다. 모두가 언니들 같을 순 없을까. 잘 안 나오는 우리 같은 엄마들을 동물원 원숭이처럼 신기해하거나, 심하게 욕하는 사람들 말고.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 서연은 언니들과 부장님을 떠올리기로 했다. 편견이라는 돌부리가 곳곳에 가득해도, 함께 밥을 나눠 먹던 사이끼리는 조금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서연은 어렴풋이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난 8일 서연(가명·21)과 은지(가명·3)가 놀이방에 포스터를 붙이고 있다. 한수빈 기자
◆ ◆ ◆

서연이 보험사에서 서류를 쳐내던 2022년 8월, 성아는 학교와 좀 더 가까운 경기 여주로 이사했다. 시골길을 달려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르면 3층짜리 25세대 연립주택형 생활시설 세림주택이 나타났다. 성아 가족은 1층 한 호실에 입주해 짐을 풀었다. 마당의 나무 그늘도 폭염을 다 가려주지는 못했다.

주택에서 남쪽으로 4㎞ 가면 썬밸리워터파크가 있었다. 2학기까지는 한 달 남았으니까, 성아는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썬밸리로 향했다. 다섯 살 민준이는 신이 나서 첨벙거렸다. 느릿한 물길을 따라 원형으로 빙빙 도는 유수풀에서 14개월 서준이는 까무룩 잠들었다. ‘양수 속 같은가…아직도 그때가 그립니.’ 품 안의 서준이를 보며 성아는 미소지었다.

부천에서 악착같이 돈을 벌던 2년 전엔 상상도 어려운 여유였다. 한심한 백수 남자친구와 매일 싸우느라 스트레스성 피부병을 달고 살던 그해에도 크리스마스가 있었다. 성아는 나들이 대신 쿠팡에서 산 6만원짜리 헬로카봇 스카이 로보트를 민준이에게 선물했다. 만화에서는 개구쟁이 역할인 검은색 경찰차 로보트였다. 민준이는 성아를 껴안고 소리 지르며 방방 뛰고,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했다. 성아는 울컥했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그동안 못 해줘서 미안해. 구매버튼 누를 때 손이 덜덜 떨렸지만 뭐 어때. 내 밥 조금 굶지 뭐. 성아는 후련했다.

지난달 25일 경기 여주의 한부모 생활시설 놀이터에서 성아(가명·24)가 민준이(가명·5), 서준이(가명·1)와 놀아주고 있다. 한수빈 기자

대학생인 지금은 그때보다 나을까? 성아는 쉽게 답하지 못할 것 같았다. 수급비로는 두 아이와 생계를 꾸리기도 벅찼다. 내년에는 만으로 스물다섯이라 청소년 한부모로서 받을 수 있는 지원도 끊긴다고 들었다. 2학기가 막바지를 향하던 11월엔 마음이 지쳐 1주일을 결석했다.

땅바닥으로 내려앉는 어깨를 끌고 귀가하면 민준이가 헬로카봇 스카이를 꺼내 놀고 있었다. “반가워요~ 전 별에서 온 스카이예요!” 동생 서준이는 붙박이장에 붙인 동물그림 포스터를 좋아했다. 엉거주춤 손가락으로 강아지 그림을 짚으며 “멈머”, 고양이 그림에서는 “야아”라고 했다.

“히야, 우리 서준이! 네가 똑똑한건지, 큰 건지….” 성아는 서준이를 안아주며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가 널 끌어안고 운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컸구나. 아이들이 자란 시간은 성아의 뇌리에 영원한 필름처럼 남아 있다. 서준이는 남들보다 이른 7개월 때 두 다리로 일어섰다. 걸음마는 조금 늦어서 3개월이나 걸렸다. 엄마를 닮았을까. 남들보다 일찍 혼자 섰지만 첫걸음까지 너무 자주 넘어졌던, 그래도 기어코 일어나 걷고 있는 엄마처럼….

성아는 아이들을 재우고 전공 책을 펼쳤다. 1학년 마지막 기말고사가 코앞이었다.

<시리즈 끝>

지난 9일 경기 여주의 한부모 생활시설에서 민준이(가명·5)와 서준이(가명·1)가 놀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연(가명·21)이 8일 오후 놀이방에서 딸 은지(가명·3)와 놀고 있다. 한수빈 기자

☞ [나, 어린 엄마①]트리에 빛이 열렸네, 새까맣던 열여덟에 내게 온 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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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어린 엄마②]잭나이프 들던 애가 엉엉 운다, 갓난쟁이 밥 안 먹어 무섭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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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어린 엄마-남은 이야기]“청소년 임신은 일탈 아닌 ‘사회의 일’···정부 역할 더 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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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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