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에 남을까, 현실로 돌아올까···‘재벌집 막내아들’ 결말 논란이 말하는 것

임지선 기자 2022. 12. 2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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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한 결말에 시청자 분노
“다시 만들어라” 요구도
“대중과 제작자간 인식 달라”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비서 윤현우가 깨어나 국회 청문회에서 증언하는 장면. JTBC 제공

‘<재벌집 막내아들> 결말을 다시 만든다면 역대 최고 시청률을 넘을까.’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결말을 놓고 화제가 이어지고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재벌 총수 일가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비서 윤현우(송중기)가 비자금을 찾아오다가 총을 맞고 순양그룹의 막내아들 진도준으로 회귀해 인생 2회차를 사는 판타지 서사를 담고 있다. 2017~2018년 웹소설 플랫폼 ‘문피아’에 연재된 산경 작가의 웹소설이 원작이다. 드라마는 원작과 토대가 유사하지만 일부 캐릭터의 설정과 중간 전개가 조금씩 달랐다. 이 때문에 드라마 마지막 회가 원작과 같을지 여부가 관심사였다.

많은 시청자들은 재벌집에 다시 태어난 진도준이 투쟁 끝에 순양그룹을 차지하길 기대했다. 이 드라마의 재미도 진도준이 순양그룹 형제들과의 경영권 싸움에서 차례로 승리하는 데서 상당 부분 기인했다. 드라마 결말은 기대와 달랐다. 15회에서 진도준은 또다시 트럭 사고로 사망하고, 최종화인 16회에서는 총을 맞고 사망한 줄 알았던 윤현우가 깨어난다. 일부 시청자들은 ‘지금까지 전개가 모두 꿈이었나’라며 허망해하고 있다.

드라마는 윤현우의 대사로 시청자 질문에 답한다. “빙의도, 시간여행도 아니다. 그건 참회였다. 진도준에 대한 참회 그리고 나, 윤현우에 대한 참회.” 그러면서 윤현우는 오너 일가의 뒤를 봐주던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오너 일가를 국회 청문회에 세워 단죄한다. 드라마 종영 이후 시청자들은 “참회가 아니라 참외”라며 비꼬는 댓글을 달고 있다. 여러 커뮤니티에선 ‘재벌 벌주기’식 교훈적 태도는 필요 없다며 결말을 다시 만들어달라는 요구도 빗발친다. 일각에선 진도준이 살았다면 JTBC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부부의 세계>(28.4%)를 넘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26.9%를 기록했다.

회귀물에 이미 익숙한 대중, 그렇지 못한 드라마 제작진

이융희 문화연구자는 27일 통화에서 장르물에 익숙한 대중과 드라마 제작진 간 인식 차이로 설명했다. 그는 28세 고교 교사가 22세 과거로 돌아가 요리사로 성공하는 내용인 2015년 웹소설 <요리의 신>을 들어 비교했다.

그는 “당시만 하더라도 과거로 돌아가 미래의 지식을 바탕으로 성공하고 돈을 버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주인공의 윤리적 고민이 있었다. 그러다 웹소설 <재벌집 막내아들>이 나온 2017년에는 장르적 문법이 워낙 많이 사용되다보니 그런 고민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독자·시청자들은 이제 과거로 돌아갔을 때 굳이 원래 세계로 귀환할 필요 없이 그 세계에서 어떻게 성공하는지에 대한 판타지를 소비하는 것이 너무 익숙해졌다”고 했다.

‘판타지로 시작했으니 판타지로 끝나도 상관없다’는 인식이 대중에게 퍼졌다는 것이다. 대중은 진도준이 회귀해 미래의 지식으로 순양그룹을 차지하는 과정을 ‘완성’으로 인식하는데, 드라마 제작진은 다시 현실로 돌이키는 일을 ‘완성된 서사’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융희씨는 “드라마에서 완결적인 서사를 만드는 것에는 고심을 했지만 장르물을 소비하는 대중의 경향에 대해서는 이해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논란은 회귀나 빙의를 담은 장르물이 아니어도 원작이 있는 콘텐츠를 제작할 때 반복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박기수 한양대 에리카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원작이 있는 작품에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지닌다. 원작에서 벗어난 걸 싫어하면서도 원작과는 차별화된 즐거움을 원한다”며 “결말이 원작과 달리 낯설었다면 제대로 된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웹소설을 드라마 등으로 각색할 때 어떻게 차별적 즐거움을 만들어내 어필하느냐가 중요하다.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려하지 못했던 건 패착”이라고 말했다.

한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 PD는 “드라마가 가진 문법과 웹소설·웹툰의 문법이 달라서 원작이 있는 작품을 만들기 쉽지 않다”며 “웹소설과 웹툰은 만화적·극적 요소가 강한데 드라마는 보편타당성을 지녀야 하기 때문에 고민스러운 지점이 많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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