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연필 단상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2022. 12. 2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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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종이에 연필로 낙서를 해 본다. 예전엔 신문 기사 속 한자어를 따라 쓰곤 했는데 요즘 신문엔 한자가 거의 없다. 있어도 쉬운 한자들이어서 배우는 재미가 없다. 나 역시 요즘 쓰는 한자는 ‘부의(賻儀)’나 ‘축 결혼(祝 結婚)’이 고작이다. 봉투에 이름을 한자로 쓰면 누군지 모른다고 해서 이름도 한글로 쓴다.

연필 깎기는 나의 오래된 취미다. 잘 드는 문구용 칼로 연필심을 감싼 삼나무나 향나무를 매끈하게 저며 내는 일은 비효율적으로 시간을 탕진하는 일이다. 취미란 원래 그런 것이다. 능률과 상관 없는 어떤 일에 몰두함으로써 다른 일에 쓸 에너지를 얻으면 그만이다.

새 연필을 한 자루 가져다 책상 위에 놓았다. 검정 페인트로 칠해진 몸통에 금박으로 상표가 새겨져 있다. 길이는 19㎝, 무게는 4g이며 아주 단단하고 곧다. 사실 연필은 매우 여린 물건이어서 쉽게 부러뜨릴 수 있고 성마른 주인에게 꽁무니를 잘근잘근 씹히기도 한다.

연필은 깎지 않은 육각 기둥 모양일 때 가장 아름답다. 연필에 칼을 댄다는 건 맥주 캔을 딴다는 것이며 짜장면을 비빈다는 것이다. 일단 칼집이 나면 연필은 책상 위를 낮은 포복으로 굴러야 한다. 때로는 바닥에 떨어져 골절상도 감내해야 한다. ‘연필 깎기의 정석’이란 책을 쓴 미국인 데이비드 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연필에 촉을 만드는 것, 즉 기능성을 부여하는 것은 곧 연필을 플라톤의 동굴 밖으로 끌어내 실용성이라는 한낮의 태양을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연필을 깎는 행위는 일종의 가학적 진실 규명이다. 젓가락보다 굵고 불쏘시개로는 너무 왜소한 나무 작대기를 벗겨 그 안에 숨어 있던 흑연과 점토의 배합물을 드러냄으로써 정체를 공개하는 것이다. 깎지 않은 연필은 관념의 존재일 뿐이다. 연필심이 드러나는 순간 연필은 명찰을 단 것처럼 신분을 드러내고 일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언젠가 닳아 없어질 운명의 시작이다.

매끈하게 마감된 페인트를 한꺼풀 벗겨내면 그 안에 있던 나무 속살이 드러난다. 연필 허리를 쥔 왼손 엄지로 오른손에 쥔 칼의 등을 반복적으로 민다. 이때 오른손은 칼을 놓치지 않을 만큼의 힘으로만 쥐고 왼손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왼손이 나무를 깎는지 허공을 가르는지 모를 정도가 좋다. 연필심은 칼날이 살금살금 다가오는 사실을 모른 채 발가벗겨져야 한다. 이윽고 연필심이 드러나면 칼을 대패 쓰듯이 다스려 뾰족하게 갈아내야 한다. 가능하면 사포에 가는 것이 가장 좋다.

1925년 출판된 미국 교과서는 “심이 0.9㎝쯤 나오게끔 연필 자루 끝을 2.5㎝가량 원뿔형으로 깎은 뒤 연필심은 손가락 끝이 따끔할 만큼 사포로 다듬으라”고 했다. 앞서 소개한 데이비드 리스는 이렇게 연필을 깎아주는 직업을 갖고 있다. 책이 출판된 2012년엔 한 자루 요금이 12달러50센트였는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한 자루에 무려 100달러를 받고 있었다(그가 발행한 보증서와 함께 연필밥도 남김없이 챙겨 보내준다).

우리는 첫돌 생일상에서 연필을 처음 만나고 젓가락질을 배울 때쯤 연필로 글 쓰는 법도 배운다. 그 후 얼마 안 가 연필과의 인연은 대개 끝난다. 샤프펜슬이라는 괴물과 만나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글을 자판으로 쳐 넣는 시대에 연필은 호미나 쟁기보다 더 원시적인 도구처럼 보인다. 굳이 글씨를 써야 할 일이 있다면 펜을 쓴다. 그러나 펜은 연필 쓸 때의 충일감을 주지 못한다. 미국 공학자 헨리 페트로스키가 역저 ‘연필’에서 말한 것처럼 “연필은 써서 없어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연필은 글씨만 남기고 소멸한다. 잉크를 소진하고 껍데기는 그대로 남는 펜과는 태생이 다르다. 연필은 계획하고 실패하는 사람들의 도구이며, 펜은 회전의자에 앉아 최종 결재하는 사람들의 필기구다. 페트로스키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말한다면 연필은 칼과 펜을 더 잘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다”라고 했다.

며칠 전 신문에서 동아연필 김충경 회장의 짤막한 별세 소식을 읽었다. 1946년 설립된 동아연필은 한국 최초의 문구회사다. 독립운동가였던 김노원과 그 아들 김정우가 함께 창업했고 김정우의 아들인 김충경이 대를 이어 경영해왔다. 현재 창업주의 증손자가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한국에서 연필 산업을 개척한 회사가 요즘 같은 시대에도 꿋꿋이 연필을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누구나 한번쯤 써봤을 상표의 연필이기에 새삼 친근한 생각도 들었다. 그런 핑계로 연필을 꺼내 끄적거리다가 떠올려보는 연필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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