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벽에 16번, 머리를 박아봤다

남형도 기자 2022. 12.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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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꼬리 잡고 16번 담벼락에 내리쳐 죽이고도 '집행유예', 창원지법 "반성하고 있다"며 양형…동물권 단체 카라 "고양이 사망한 뒤에도 내려치는 강도 변함없어", 검찰 항소로 재판 다시 시작
작은 고양이 두부를 16번이나 시멘트벽에 내리쳐 죽였다. 가해자 송모씨는 목격자가 나타난 뒤에야 유유히 사라졌다. 피가 벽에 튄 흔적이 생생히 남아 있는 모습./사진=동물권행동 카라

창원에서 태어난 아기 고양이가 있었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돼 살아감이 버거웠다. 먹을 걸 찾아 홀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그러느라 마주한 건 두려운 것투성이였다. 쌩 달리는 차도, 성큼성큼 사람들의 모습도.

그러다 한 식당 앞에서 선한 사람을 만났다. 그 식당 사장님이었다. 그는 굶주린 아기 고양이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밥을 챙겨주고 또 추위를 피하게 해줄 아늑한 집도 만들어줬다. '두부'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두부야, 두부야"하고 이름을 자주 불러주며 길렀다.

길에서 태어나 창원 식당 사장님에게 돌봄을 받았던 고양이 두부. 1살에 동물학대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생전 모습./사진=동물권행동 카라

길에서 우연히 태어나 눈치만 보며 살던 아기 고양이는, 그리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다. 밥을 챙겨주는 고마운 이에겐 몸을 가만히 대어 비비었고, 경계를 덜고 다정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식당 손님들도 두부를 좋아했다. 간식을 챙겨주고, 쓰다듬어주고, 사진으로 담아갔다. 볕이 따스한 날이면 두부는 화분 위에 누워 장난을 치기도 했다.

두부 꼬리를 잡아들고 16번을 내리쳐 죽였다
고양이 두부가 살해당했을 당시 모습./사진=동물권행동 카라
올해 1월 26일 저녁이었다. 끔찍한 동물 학대 범죄가 벌어졌다.

가해자는 27살 송씨였다. CC(폐쇄회로)TV에 찍힌 그의 범죄는 잔혹했다. 고양이 두부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다가갔다. 그리고 고양이 꼬리를 잡아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아무 망설임도 없었다.

두부가 비명을 지르고 발버둥을 쳤다. 그는 어떤 동요도 없었다. 그리고 산 채로 공중에서 힘껏 휘둘러, 시멘트벽에 내리쳤다. 그 행동이 무려 16번이나 반복됐다. 최초로 목격한 이가 다가가자, 송씨는 범행을 멈추고 살해된 두부 사체를 벽 너머에 집어 던졌다. 이후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갔다.

두부는 범행 중간에 이미 온몸이 축 늘어졌다. 이미 사망했거나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송씨는 고양이를 같은 강도로, 동일한 속도로 계속, 시멘트벽에 내리쳤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이를 두고 '오버킬(overkill)'이라고 했다. 방어 능력을 상실한 피해자에게 감정을 주체 못하고 가해를 계속하는 것이고, 그건 분노의 가학적 감정 표출이라 했다.

두부는 머리가 완전히 함몰되어 숨졌다. 주변 건물 2층까지 두부의 피가 튀어 올라 있었다.

송씨는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고양이 울음소리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다. 카라는 "동물 학대 가해자의 전형적인 행위 정당화"라고 비판했다. 보통 사람은 누군가 시끄럽게 한다고 찾아가 살해하지 않는다고 했다. 뭣보다 송씨의 거주지가 두부가 있던 식당과 한참이나 떨어져 있다고 반박했다.

그렇게 죽이고, 20만 명 넘게 청원해도 '집행유예'
고양이 두부를 살해한 학대범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들./사진=동물권행동 카라
공분이 들끓었다. 강한 처벌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명 넘게 서명했다. 경찰은 동물보호법 위반과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 송치했으나, 검찰은 이중 '재물손괴'를 빼고 기소했다. 송씨가 고양이의 소유주가 없는 걸로 생각할 수 있단 이유였다. 검찰 구형은 징역 1년이었다.

1심 판결은 그마저도 나오지 않았다. 김민정 부장판사(창원지법 형사5단독)는 두부를 죽인 송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보호관찰 1년과 사회봉사 160시간 명령도 내렸다.

판결문에선 고양이를 잔인하게 죽인 사실도, 우발적 범행이 아니란 것도, 고양이를 돌보던 식당 주인이 큰 충격과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것도 모두 인정했다. 그런데도 '집행유예'에 그쳤다. 콘크리트 벽에 16번 내려쳐 죽인 건 유죄이지만, 형의 집행을 미뤄주었다. 왜였을까.

김 부장판사의 양형 이유는 이랬다. "송씨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재범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다. 언론 보도로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는 계기가 됐을 거라고 본다."

동물범죄 인식 정도에 따라, 판결 '제각각'
서울 경의선 책거리 근처 술집 주인이 기르던 고양이 자두와, 자두를 살해한 가해자(오른쪽)./사진=인스타그램, 뉴스1
왜 이런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는가. 두부 살해사건의 솜방망이 처벌은 복합적이지만, 두 가지가 크게 작용했단 분석이 나왔다.

첫 번째는 고양이 두부의 보호자가 명확하지 않다며 검찰이 '재물손괴죄'를 적용하지 않은 거다. 보호자가 오래 돌봤고 많은 이들이 예뻐했음에도.

비슷한 사건으로 고양이 '자두' 살해 사건이 있었다. 2019년 7월 13일, 당시 39살이었던 정씨가, 서울 마포구 경의선 책거리 근처 술집 주인이 기르던 고양이 꼬리를 잡아 바닥에 내리쳐 죽였다. 이때 유창훈 판사(서울서부지법 형사7단독)는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당시엔 '재물손괴죄'가 적용되었다.

쉽게 말해, 소유자가 있는 물건을 부수는 죄를 적용하는 것이고, 이는 고양이를 일종의 '물건'으로 간주하는 것.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며 추진되고 있는 민법개정안과는 모순된 거지만, 그나마라도 적용돼야 실형이라도 나오는 씁쓸한 현실이다. 최민경 카라 활동가"사건 하나하나엔 처벌을 위해 재물손괴죄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큰 차원에선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했다.

동물판 N번방이라 불렸던, '고어전문방'에서 고양이를 화살로 쏜 뒤 찍은 사진.

두 번째는 판사의 동물권 감수성이나 동물범죄를 바라보는 인식에 따라, 판결이 제각각인 문제다. 전진경 카라 대표는 8일 카라가 주최한 '양형기준 수립 촉구 국회 토론회'에서 사례 두 가지를 들었다. 고양이 등 야생동물을 학대하는 사진을 채팅방에 공유한 '고어전문방' 사건은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나왔다. 반면, 포항의 '폐양어장 고양이 학대 사건'징역 1년 4개월의 실형에 벌금 400만원이 선고됐다.

최근 실형 선고 사례가 늘고 있지만, 동물범죄의 대다수 처벌은 약한 편이다. 카라가 2013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동물보호법 위반자 처벌 관련 200개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82%(165명)가 벌금형이었다. 동물보호법 위반 최고형인 3년 징역형은 여태껏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최고형은 '아기고양이 홍시'를 살해한 피고인에 징역 2년 6개월이 선고된 거였다. 동물보호법이 있어도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는 건, 범죄 대상이 동물이란 인식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최소한의 처벌 위해 '양형 기준' 필요
고양이 두부가 살던 숨숨집, 그리고 집 앞에 놓인 두부를 추모하기 위한 국화 한 다발./사진=동물권행동 카라
이를 개선하기 위해, 동물대상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마련해야 한단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되었다.

양형 기준은, 법관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형량이 들쑥날쑥한 걸 막기 위해 지켜야 할 형량 범위를 정해둔 거다. 양형 기준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동물범죄에 대한 판사의 인식에 따라 처벌이 지나치게 낮게 나오는 걸 어느 정도는 방지할 수 있게 된다.

전진경 카라 대표는 앞서 언급한 '양형기준 마련 촉구 토론회'에서 "'100만원 벌금 나올 걸?', '어차피 집유(집행유예) 나올 거다' 등 동물범죄자 비아냥이 난무한다. 처벌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최소한 예방 장치인 동물범죄 양형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실효성을 잃지 않기 위해선, 세부 내용을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고 봤다.

동물범죄 양형 기준 마련을 위해선 동물범죄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과 관심이 중요하단 주장도 나왔다. 유정우 울산지방법원 판사 "현재 양형기준이 마련된 범죄들은, 발생 빈도가 높고 국민적 관심에 밀접한 범죄들로 볼 수 있다"며 "동물학대 범죄의 양형 기준이 생기면,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두부 살해사건, 검찰 '항소' 결정…재판 다시 시작
고양이 두부는 다신 돌아오지 못하게 됐다. 살아 있을 때의 모습./사진=동물권행동 카라
고작 1살밖에 안 된 고양이 두부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가해자의 죗값이 제대로 치러지지 않았다고 분개하고 있다. 카라가 1심 재판이 끝난 뒤 검찰 항소를 촉구하며 받은 탄원서는, 일주일도 안 돼 1만 명 넘게 참여했다.

카라 탄원서에 서명했단 고양이 집사 김모씨(22)는 "아무 죄 없는 고양이가 그렇게 아프게 고통 받으며 죽었는데, 집행유예 판결이 말이 되느냐""재판을 끝까지 지켜보며 엄벌을 촉구하겠다"고 분개했다.

검찰도 지난 20일 항소했다. 최민경 활동가는 "시민들 탄원서는 아직 제출하기도 전인데, 검찰에서 항소장을 냈다""새로 재판이 시작된다. 2심 재판부에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기 위해 탄원서를 쓸 계획"이라고 했다.

고양이 두부가 화분 위에서 장난치는 모습./사진=동물권행동 카라

에필로그(epilogue).

시멘트벽에 머리를 박아보았다.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아주 살짝 힘을 주었음에도.

두 번째는 강도가 더 약해졌다. 세 번째는 하는 둥 마는 둥 하게 되었다. 아픈 게 고통스럽고 힘겨웠으므로.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살살 힘을 빼고도, 16번을 박았을 땐 머리가 아파 한동안 깊게 울려 괴로웠다.

그러나 작은 고양이 두부는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그럴 수 없었다. 무자비하게 내리치는 가해자의 폭력 앞에서, 미약한 존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1번, 2번, 3번, 4번, 5번, 6번, 7번, 8번, 9번, 10번, 11번, 12번, 13번, 14번, 15번, 그리고 16번이나 단단한 벽에 내리쳐졌다. 그러고도 처벌은 유예되었다. 반성하는 초범이란 이유로 피고인은 집으로 당당히 돌아갔다.

하지만 고양이 두부는 다신 돌아올 수 없게 됐다. 화분 위에 누워 장난칠 수 없게 됐다. 돌아오는 봄볕을 쬘 수 없게 됐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없게 됐으며, 다정한 몸짓을 보여줄 수 없게 되었다.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한, 두 번째 재판이 다시 시작된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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